안전을 최우선에 놓지 못하는 이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 자전거를 탈 때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안전모와 무릎보호대를 챙겨주었는데 조금 실력이 붙으니 덥고 불편하다고 잘 하지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 보호장구를 했으면 하지만, 안전을 업으로 삼는 나조차도 언제부터는 귀찮아서 챙겨주는 걸 그만두었다.

 

 우리가 안전을 최우선에 놓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안전이 생활 속에서 습관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상사고」라는 책을 쓴 찰스페로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안전이 생활화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다. 재해방지를 위해 투자하는 자원이 빛을 발할 경우보다는 그 자원을 다른 곳에 투입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용성이 훨씬 크고 피부에 와 닿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또한 이렇게 집행되기 쉽다.

 정치인들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은 안전 인프라에 투자하기보다, 눈에 잘 띄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다음 선거에서 국민들의 표를 얻기도 쉽다고 생각한다. 시민 스스로가 안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에 요구하기 전에는 안전에 투자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의식은 일종의 사회문화로써 사회 체계 및 국민의 의식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크고 작은 무수한 사고를 겪었지만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이 없는 것처럼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 되어 왔다. 70년대 남영호 사고부터 시작하여 90년대 서해 페리호, 결국은 2000년대 세월호 사고까지 모두가 같은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였다.

 

우리는 왜 사고로부터의 학습에

실패하는 것일까

 찰스페로(Charles Perrow)는 그 원인을 리더십, 관료주의, 정치적인 문제 등에서 찾는다. 물론 그가 지적한 것도 타당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학습방식의 문제점이 있다.
하버드대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가 제시한 조직학습이론(Organizational Learning Theory)에 의하면 조직학습의 성패는 이중순환학습(double-loop learning)에 있다.

 단일순환학습(single-loop learning)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기존 규범안에서 오류를 확인하고 행동을 수정해 가는 활동인 반면, 이중순환학습은 문제 발생 시 현재의 규범을 결정짓고 있는 기본전제와 가정 그 자체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 궤도를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단일순환학습이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해오면서 일을 좀 더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면, 이중순환학습은 기존 행동을 지배하는 여러 가정들과 이론 자체에 의문을 갖고 근본적으로 조직의 질적 변화를 유도하는게 목적이다.

 

 이는 피터 생게(Peter Senge)의 학습하는 조직과도 연결되어 있다. 피터 생게의 학습하는 조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조직은 지속적인 새로운 학습덕분에 새롭고 발전적인 사고패턴이 촉진되며, 조직내 모든 단계에서 끊임없이 학습이 일어나 조직의 전체 성장을 이끌어낸다.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들은 우리사회의 과거로부터의 학습에 문제점이 있었음을 입증한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이 희생양 찾기이다. 시스템이 잘못되었지만 그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한 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방식이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데, 기존의 체계와 기득권층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 채 피상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 희생양 찾기이다.

 
1993년 10월 10일 위도에서 출발한 서해페리호가 침몰하여 292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하였다. 당시 위도는 낚시명소로 유명해지면서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관광객과 위도 주민들은 운항 횟수를 증편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보조금 받는 영세업체라며 증편 허가를 거부했다. 결국 주말만이라도 증편해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되었다.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 출항 당시 14m/s에 이르는 강한 북서풍 때문에 파도가 3m에 이르는 등 기상상황이 좋지 않아 선장은 배를 띄울 수 없다고 했지만, 사고 당일 기상청에서는 '파도가 높고 강풍이 불며 돌풍이 예상되므로 항해 선박의 주의를 요한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 결과 배는 출항한지 얼마되지 않아 침몰했고, 362명중 292명이 사망했다. 당시 서해 페리호 사고는 황색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선장이 혼자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나자, 언론은 진위여부도 확인하지도 않고 선장의 도피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검찰, 경찰도 이 오보를 믿고 수사대를 급파, 전경 3개 중대를 동원하여 위도와 식도 일대를 수색하는 한편, 과실치사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다. 

 

ⓒ그림-  당시 언론보도
ⓒ그림-  당시 언론보도

 기자들이 도주했다고 보도한 선장은 사고 발생 5일 후에 무선통신실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날 선장과 함께 도피 의혹을 받고 있던 갑판장과 기관장 역시 사망이 확인되었다. 한편 선장의 발견 위치가 통신실인 점으로 미루어 선장이 구조 요청을 시도하려는 찰나에 배가 전복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그동안 상처입은 유가족들에게는 보상해 줄 방법이 이미 없었다. 


 책임전가의 전형이 처벌과 일벌백계이다.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은 오늘날의 사고는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라고 하였다. 조직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데 담당자만 처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현대사회의 모든 사고는 조직사고(Organizational accident)이다.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자질문제가 지탄을 받았지만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단지 선장과 승무원들의 잘못으로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이들의 잘못도 크지만 더 큰 부조리는 사회시스템의 문제이다. 유병언 일가의 부적절한 선박개조, 이를 눈감아준 고위 공무원, 민관유착비리를 저지른 해운조합, 신속한 구조활동을 벌이지 못한 해경 등 관피아 문제가 사고의 핵심이었다.

 

 

사회가 바뀌면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보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 찾기는 절대 같은 사고의 재발방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앞으로도 같은 유형의 사고가 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30년전, 20년전 동일한 유형의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여 개선치 않은 결과이다.
 사회가 바뀌면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조직은 커지고 사회는 점점 고도화되어 가는데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30년전 의 낡은 사고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몸집이 커지면 옷도 바꿔입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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