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근로자가 하루 8시간 이상 소음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청력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는 일상적으로 85dB 이상의 소음이 발생하며 이러한 환경은 장기적으로 난청 위험을 높인다. 이에 따라 조직과 관련 기관은 청력보존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본 기사에서는 소음성 난청의 국내외 현황을 짚어보고 한국 기업과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관리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국제 소음성 난청 위험과 통계
소음성 난청(Noise-Induced Hearing Loss, NIHL)은 전세계적으로 노인성 난청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감각신경성 난청 원인으로 보고된다. 세계보건기구 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5%, 즉 4억 명 이상이 소음성 난청을 포함한 청각손실을 겪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청각 장애를 넘어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수반하는 주요 공중보건 문제로 분류된다.
소음성 난청의 발병 원인은 복합적이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상호작용하며 특히 직업성 요인이 크다. 장기간 85dB 이상의 소음에 노출되면 청각세포가 손상되어 비가역적 청력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2019년 세계질병부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20.3%가 어떤 형태로든 청각손실을 겪고 있으며 이 중 약 16%는 직업성 소음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역적 편차가 뚜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서태평양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부담이 관찰되며 이는 산업구조와 규제 및 보호체계의 차이를 반영한다. 반면 선진국은 작업장 소음관리가 강화되었음에도 비직업적 소음 노출이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다. 여가성 고음량 청취 습관이 청소년의 조기 청력저하 신호를 낳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 및 지역사회 차원의 청각보전 교육이 요구된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2019년 기준 3,440만 명 이상이 소음 관련 장애성 청각손실을 겪고 연 1,850억 유로(약 312조 원) 규모의 삶의 질 손실 및 생산성 감소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에서는 2000년대 초 이미 약 18만 명이 직업성 소음으로 심각한 청각문제를 호소했으며 현재도 매년 1만 1천 명 이상의 근로자가 영향권에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의 2024년 분석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의 약 25%가 유해한 수준의 소음에 노출되고 있으며 이중 14%(약 2,200만 명)은 최근 1년 내에도 그러한 환경에서 근무한 것으로 보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음 노출 근로자의 53%가 귀마개 등 청력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이처럼 소음성 난청은 후진국의 직업병이 아니라 전 세계가 동시에 풀어나가야 할 산업안전 및 공중보건 이슈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소음성 난청을 가장 흔한 직업성 질환 중 하나로 분류하며 예방 가능함에도 관리 사각지대가 지속됨을 경고한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의 2021년 공동분석은 성인 장애성 청격손실 중 약 16%가 직업성 소음에 기인함을 제시한다.
국내 실태 및 대응
한국에서도 소음성 난청은 가장 오래된 직업병 중 하나로 꼽히지만 여전히 개선 속도는 더디다. 국민건강영양조사의 2010-2012년 자료에 따르면, 국내 성인 인구의 약 20.5%가 경도 청각손실, 9.2%가 중등도 이상 청각손실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력손실은 단순히 고령층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조, 건설, 운송 등 산업 현장에서의 지속적인 고소음 노출은 20-40대 근로자에게서도 조기 청력저하를 유발하며, 그 비율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의 약 25-30%가 하루 8시간 기준 90dB 허용기준을 초과하는 소음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금속가공, 조선, 자동차부품 제조업에서 초과 비율이 가장 높다. 이러한 업종에서는 단기간 강한 소음뿐 아니라 지속적이고 누적되는 노출이 청력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장 근로자의 청력 보호구 착용률은 50%를 밑돌며 실제로는 귀마개 착용이 불편하거나 업무상 방해된다는 이유로 미착용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연감에 따르면 소음 측정, 정기검사, 보호구 교육 등 청력보존 프로그램을 전면 시행 중인 사업장은 전체의 43.7%에 불과하며, 중소기업의 이행률은 3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격차는 곧 제도는 존재하나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청력검사 결과가 사업장 위험관리와 연계되지 못하고 단순한 건강기록으로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청력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까지 평균 1년 이상 소요되어 조기 치료와 보상이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정책 및 제도 대응안: ‘측정’에서 ‘보존’으로
청력보호 정책은 단순한 소음측정 중심에서 벗어나 근로생애 전주기적 청력보존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1. 청력보전 프로그램의 전면화
현재 대규모 제조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청력보전 프로그램을 모든 산업 분야와 중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해야 한다. 특히 소음이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운송 및 서비스업에서도 청력 보전이 필수적이다.
사업장 자율형 청력보전 프로그램 인증제도를 도입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예방 활동을 시행하는 사업장에 보험료 감면, 인증마크, 포상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청력보존 프로그램의 효과를 평가하는 표준지표를 마련하여 근로자 청력검사 결과와 소음측정 데이터를 연동하여 관리하도록 한다.
2. 현장 중심 지원 인프라 구축
소음 관리의 사각지대는 측정 장비와 인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소규모, 비정규 고용 사업장을 위한 공공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 이동식 소음측정 서비스와 무료 청력검사 지원을 운영하여 현장 접근성을 높인다.
▶ 소음지도를 지역 단위로 구축하여 산업단지, 건설현장, 항만 등 고위험 구역을 상시 모니터링한다.
3. 근로자 중심의 실질적 보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로자 본인이 소음의 위험성과 보호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는 직무별 맞춤형 교육 및 적합한 보호구 보급에 집중해야 한다.
▶ 단순한 귀마개 보급이 아닌 개인 및 노출특성에 따른 맞춤형 보호구 적합성 테스트를 의무화한다.
▶ 청력저하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정기검사에서 이상이 감지되면 근로자, 관리자, 산업보건의가 동시에 알림을 받도록 한다.
▶ 비직업성(여가) 소음 노출 교육을 병행하여 근로자의 전반적 청각 인식을 높인다.
4. 산업 및 지역 연계형 거버넌스
국가 차원의 통계 관리뿐만 아니라 지역과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거버넌스 체계도 필요하다.
▶ 지방고용노동청-지자체-공단-산업계 협의체를 구성하여 소음 저감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산업별 위험군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 지역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저소음 산업단지 시범사업을 추진하여 방음 및 흡음 설비 개선과 근로자 교육을 실시한다.
▶ 국가 청력보전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산업별, 지역별 청력손실 발생률을 장기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한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소음 수치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측정-예방-보존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청력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려운 감각이기 때문에 예방 중심의 관리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매년 수천 명의 근로자가 잃어버린 청력을 되돌릴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소음성 난청은 예방 가능한 직업병이다. 하지만 제도와 기준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예방의 의미는 사라진다. 청력보전은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모든 현장에서 약속된 보호조치가 실제로 이행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