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해가스 누출로 직원 6명 쓰러져… 구조자까지 2차 피해
- 하청노동자 중태, 위험의 외주화 논란 재점화
- 법 준수만으론 한계, SIF 관점의 안전관리 필요성 부각
- 포스코, 연이은 중대재해로 안전 신뢰 회복 과제 직면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또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하며 안전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STS 4제강공장 옥외 작업장에서 배관 주변 슬러지 찌꺼기를 제거하던 중 유해가스를 흡입한 직원 6명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지난 5일 불산가스를 흡입해 노동자 1명이 숨진 사고 이후 불과 보름 만의 일이다.
연속된 사고로 인해 원청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 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경고음이 거세지자, 포스코는 사고 다음 날 포항제철소장을 보직 해임하며 즉각적인 책임 조치에 나섰다.
개방된 공간에서 발생한 이례적 질식사고
이번 사고는 배관 주변 슬러지를 진공 흡입차(버큠카)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고 지점은 외벽만 있고 천장이 없는 개방된 공간으로, 일반적인 밀폐공간과는 다른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대량의 유해가스가 순식간에 누출돼 근로자들이 일시에 쓰러진 것으로 추정된다. 가스의 종류와 발생 경로는 현재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개방된 야외에서 다수의 질식자가 발생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해가스는 옥외에서 빠르게 확산되지만, 이번 사고는 단시간 내 고농도 가스에 직접 노출된 상황으로 분석된다.
배관이나 하수구 슬러지 속에 갇혀 있던 가스가 청소작업 과정에서 압력 변화, 충격 등으로 한꺼번에 분출됐거나 설비 자체의 누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유해가스 감지 시스템 미작동, 비상 환기 절차 부재, 설비 노후화 등 포스코의 안전관리체계 전반에서 중대한 결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지적이다.
비상 대응 체계, 제대로 작동 했나… 구조대원도 2차 피해
피해자는 최초 작업자 3명과 구조 인원 3명 등 총 6명이다. 하청업체 직원 2명과 포스코 직원 1명은 심정지 또는 의식불명으로 발견됐으며, 포스코 직원 1명은 의식을 회복했지만 하청업체 소속 2명은 여전히 중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구조 활동 중 3명의 포스코 자체 소방대원도 보호장비 없이 현장에 진입해 유해가스를 흡입하며 2차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고 직후 위험 구역 통제, 가스 측정, 보호구 착용 등 기본적인 비상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노동계,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참사”… 하청노동자에 집중된 피해
이번 사고에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포함되어 있어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4조는 원청이 하청업체와 정기적인 안전보건 협의체를 구성해 위험 정보를 공유하고, 주 1회 이상 작업장을 순회 점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58조는 밀폐공간이나 폭발성 물질 취급 등 고위험 작업에 대해서는 도급을 제한하거나 원청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포스코지회는 “불과 보름 전 사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라며,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참사로, 포스코는 말로만 안전을 외치지 말고 실질적인 안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중태에 빠진 3명 중 2명이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하청 중심의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고에서도 반복됐다며, 원청인 포스크가 도급사업장에서 실질적인 안전보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고의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SIF 관점의 위험성평가와 안전관리로 전환 필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8조의2에 따르면 질식사고 예방을 위해 작업 전·중에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제38조는 유해가스가 발생할 수 있는 작업 시 충분한 환기와 배기장치의 가동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37조는 유해가스 노출 위험이 있는 작업과 구조 활동에서 송기마스크나 공기공급식 보호구 등의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일부 안전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와 같은 이례적인 유해가스 중독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알고 있는 관계 법령의 기본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중대재해를 완전히 관리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단순한 규정 준수에 머물지 않는 SIF(Serious Injury or Fatality, 중대재해 예방 중심 안전관리) 관점의 위험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하인리히 법칙 중심의 사고 빈도 관리에서 벗어나, 사망이나 중상을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 위험요인을 중심으로 한 SIF 관리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 OSHA와 영국 HSE, 호주 Safe Work 등은 SIF 관점의 위험성평가를 통해 잠재적 치명사고를 사전에 식별하고 관리한다. 미국의 다우케미컬과 듀폰, 독일의 지멘스 등은 ‘SIF Potential’을 별도로 평가해 생명과 직결되는 사고 위험을 우선 관리 대상으로 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SIF 기반 안전관리 체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사고 건수를 줄이는 수준의 관리에서 벗어나, 한 번의 사고로 생명을 잃는 중대재해를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실질적 예방 전략으로 평가된다.
포스코, 반복된 중대재해에 신뢰 회복 과제 직면
포스코는 올해 들어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잇따른 중대재해로 인해 안전관리 체계 전반이 도마에 올랐다. 포스코그룹은 글로벌 안전 컨설팅사와 협력해 안전 전문 자회사인 포스코세이프티솔루션을 설립하고, 그룹 차원의 특별진단 태스크포스를 운영 중이지만, 잇따른 사고로 이러한 조치가 현장에서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포스코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한편, 즉각적인 안전점검 강화 계획을 예고했다. 그러나 연속된 사고로 흔들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점검을 넘어 근본적인 작업 프로세스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스코가 향후 어떤 구조적 개선책을 마련해 실제 현장에 반영할지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