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얼마 전에 다녀온 지하 터널 공사 현장 견학에서 공기 지연 소식을 접했다. 현장 관계자는 터널 개통이 당초 예정일보다 늦어진다고 밝혔다.
공사 구간의 암반층은 인접한 공동주택으로 인한 민원 때문에 발파공법 대신 장비로 굴착하고 있다. 암반층 일부는 예상치 못한 경암(硬巖) 으로, 이 구간이 전체 공기 지연의 주범이다.
‘파레토 원칙’이 이 현장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전체 작업량의 20%에 불과한 이 경암 구간이 공정 시간의 80%를 점유한다.
그렇다면 설계 단계의 지반 조사에서 이와 같은 경암의 출현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현장 관계자는 지반 조사 결과에 따라 지층의 ‘평균 암 강도’를 설계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설계 도서 확인 없이는 단언할 수 없으나,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평균의 함정(The Fallacy of Averages)’ 에 사로잡힌 것이다. 암반 굴착 시 ‘평균 암 강도’를 적용해 1일 작업량을 산정하고, 이를 토대로 공사 기간 및 장비 소모품까지 예측했다.
그러나 평균값은 전체 현장을 결코 정확하게 대변할 수 없다. 이 현장처럼 고강도 암반 구간이 과소평가될 경우, 이는 곧 공정 전체에 영향을 미쳐 치명적인 의사결정 오류를 초래한다.
설계자들은 평균값을 선호한다. 이는 설계의 단순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요소에 평균값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반 조사가 지하 지층을 완벽하게 밝혀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시추 간격을 좁혀도 지층이 급변하는 지역에서는 불확실성이 남는다. 이 현장 또한 지층의 급격한 변화가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확률적 접근을 통해 이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방법론이다.
지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고강도 암반의 위치와 물량을 ‘확률적으로 추정(Probabilistic Estimation)’ 해야 한다. 이 추정 결과를 굴착 작업 시간과 장비 소모품량 예측에 반영해야 한다. 나아가 시공 단계에서 실제 물량과 위치에 따라 유연하게 공정 계획을 조정해야 한다.
‘평균의 함정’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다음 사례를 통해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 평균주의를 비판한 토드 로즈 하버드대학 교수의 저서 《평균의 종말(The End of Average)》은 흥미로운 일화로 시작한다. 그는 오늘날 자동차 실내 디자인의 혁신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전투기 조종석 디자인의 혁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미 공군은 조종 정밀도가 낮은 전투기의 문제점을 기계적 결함으로 판단하고 수차례 수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새로 부임한 공군 책임자는 문제의 원인이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디자인의 관점 자체에 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는 평균 신체를 기준으로 설계된 조종석이 문제의 핵심일 수 있다는 통찰에 이른다. 이 책임자는 조종석 디자인 기준이 된 미 공군 조종사의 평균 신체 항목(시력, 신장, 팔 길이, 다리 길이 등)을 전수 조사했고, 경악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평균 조종사 신체’에 모든 항목이 부합하는 실제 조종사는 미 공군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후 놀라운 명령을 전투기 설계 지침으로 하달했다.
“평균이라는 실체는 없다. 평균은 가상(Virtual)일 뿐이다. 가상에 의지한 설계 대신 모든 조종사의 개별 신체에 맞는 ‘맞춤형(Customized)’ 설계를 진행하라!”
그 결과는 놀라웠다. 전투기 설계자들은 처음에는 개별 조종사에 맞춘 설계가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사고의 프레임을 전환하자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수립되었고, 이 과정에서 조직적 학습(Organizational Learning) 이 일어났다.
그 혁신의 산물이 바로 ‘움직이는 조종석(Adjustable Cockpit)’ 이다. 개별 조종사가 자신의 신체에 맞게 좌석과 실내 구성을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혁신적인 디자인은 오늘날 현대 자동차 좌석 및 실내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되는 표준이 되었다.
이종탁의 생각정원: http://blog.naver.com/avt17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