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지성의 힘

 

한 개인의 힘과 능력은 미약하나 여럿이 모이면 힘과 능력은 배가된다. 개미 한마리는 매우 미미한 존재이나 이들이 모여 군집을 이루면 거대한 힘이 생긴다. 오늘날의 인류의 문명도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산물이라 할수 있다. 집단 지성이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진 집단이 소수의 전문가의 결정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 교수가 구슬이 가득찬 유리병을 들고 학생들앞에 서서 구슬의 갯수를 추측해 보라고 물었다. 그 결과 개인이 제출한 숫자 중에 실제 구슬의 갯수에 근접한 수는 없었지만 이들이 제출한 수의 평균을 내어보니 실제 구슬의 갯수에 근접했다.

찰스 다윈의 사촌동생이었던 프랜시스 골턴은 절대적 합리성의 신봉주의자였다. 골턴의 나이 85세때 대중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려 참석했던 행사에서 그는 그의 신념을 버리는 일이 생긴다. 그 행사는 소 한마리의 무게를 맞히는 전문가와 일반 대중간의 대결이었다 전문가 5명이 선택한 소의 평균 무게는 510kg이었다. 반면 일반인 800명이 선택한 소의 평균무게는 540kg이었다. 실제 소의 무게를 재어보았다. 543kg이었다. 골턴은 경악했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오차로 맞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집단지성을 이용하여 파산에 몰린 한 금광회사가 회생한 사례도 있다. 세계 3대 금광회사인 캐나다의 골드코프는 한 때 심각한 파산위기에 직면했다. 더 이상 금을 채굴할 곳은 없어지고, 부채는 계속 증가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직원들의 파업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골드코프의 CEO 맥위엔 골드코프는 모험을 단행했다.
회사가 갖고 있던 지적자산과 각종 지질 데이터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며, 개발가능성이 있는 금광과 탐사방법을 제안하는 사람에게 57만달러를 지급한다고 공표했다. 약 50개국에서 10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이벤트에 참가했고 골드코프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110개의 금광후보지를 찾아냈다. 그리고 거기서 220톤이 넘는 금을 채굴했다. 30억달러(3조3500억원)에 달하는 양이었다.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가 서로 공유되고 집단지성도 더 확대되고 있지만 집단지성이 항상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 상황에서는 한 개인보다 더 좋지 못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집단 사고(groupthink)라고 한다.

 

챌린저 폭발사건

1986년 1월 28일 전세계를 경악케 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NASA에서 쏘아올린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후에 폭발하면서 7명의 우주인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사고원인은 고무 재질의 고체연료 로켓 오링(O-ring)의 결함이었다. 낮은 기온에 오링이 탄력을 잃고 타버리면서 가스가 새어 나와 연결 부위가 파손됐고 결국 챌린저호가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사고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기상청은 발사 당일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예보를 접한 NASA의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모턴 티오콜사에 추진로켓의 위험성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모턴 티오콜사는 추운 날씨가 고체추진 로켓의 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예전의 우주왕복선들은 모두 섭씨 12℃ 이상에서 발사되었기 때문에 영하의 날씨가 고체추진로켓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데이타가 부족했다. 이에 대해 모턴 티오콜사는 정확한 데이타를 제공하지 못하지만 추운 날씨에 고무링이 딱딱해져서 가스 분출을 막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고민 끝에 모턴 티오콜사는 발사를 권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NASA측에 전달했다. 

발사를 강행하고 싶었던 NASA는 모턴 티오콜사에게 더 정확한 데이타를 요구했다. 당시 NASA는 벌써 수차례 발사가 연기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챌린저호의 처음 발사일은 1월 22일 이었다. 그러나 다른 발사로 인해 24일로 연기되었다. 24일이 되자 대서양 비상착륙 지점의 기상문제가 대두되어 발사는 또 다시 늦춰졌다. 27일에는 챌린저호 본체의 추가정비가 필요하여 다시 28일로 미루어졌다. 28일은 거의 확정적으로 대통령 연설을 비롯하여 여러 정치인들의 챌린저호 발사에 대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NASA는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후에 입지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정부의 예산은 줄어들었고 이 거대한 조직을 이끌고 갈 명분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NASA의 간부들은 기술력보다 정치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당시 NASA에서 로켓 추진체를 담당했던 래리 뮬로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에도 발사하지 못한다면 4월에나 하자는 말인가요? 무슨 발사 바로 전날의 최종회의가 다음 발사 시기를 정하는 날입니까? 1차 고무링이 문제라면 2차 고무링이 작동할 겁니다. 

당시 모턴 티오콜 사의 고체추진로켓 프로젝트 팀장이었던 앨런 맥도널드는 다음과 같이 그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보통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면 NASA에서 안전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반박했는데 이때는 반대였어요, 우리 제품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NASA측에서는 모턴 티오콜사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수많은 생명과 막대한 예산을 두고 할 질문이 아니었다.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었다. NASA에서는 이렇게 물을 것이 아니라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할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어야만 했다. 잘못된 질문에 답을 찾으려 애쓸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졌어야만 했다. 모턴 티오콜은 NASA를 설득시키지 못했고 앨런 맥도널드는 로켓 추진체가 안전하다는 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해 그 대신 부사장인 조 칼민스터가 서명했다. 

 

피그만 작전

이보다 앞선 1961년 4월, 피그만(The Bay of Pigs)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는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된지 3개월도 안되는 시점이었다. 미 정부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훈련받은 15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을 쿠바 남부 피그만에 침투시켰다. 이 작전을 기획했던 CIA는 이들이 쿠바에 상륙하기만 하면 카스트로 반대파들이 봉기를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케네디는 전임자였던 아이젠하워가 기획한 피그만 작전을 비판적 사고없이 그대로 실행했다.

하지만 이 작전은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작전이었다. 쿠바를 전복시키기 위한 1500명이나 되는 군인들을 소련과 쿠바 모르게 훈련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어서 소련의 첩보망에 걸려 들었다. 쿠바의 상륙지점도 말도 안되는 곳이었다. 그곳은 늪 지대여서 이동하기 힘든 곳이었으나 CIA는 50년 전 지도를 보고 침투계획을 짠 것이다. 원래 상륙지점은 미국 본토에서 가까운 트리니다드였지만 작전 실패시 미국이 배후로 지목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미 정부는 이 군인들을 니콰라과에서 출발한 쿠바 망명세력으로 위장했고 피그만을 상륙지점으로 잡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침투 사흘만에 침투시킨 1500명중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1000여명이 생포되었다. 부패했던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고 쿠바를 장악했던 카스트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이 기대했던 민중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피그만 사건을 구실로 수백명의 반대파를 잡아들이고 숙청했다. 카스트로 정권은 피그만 작전 덕분에 더욱 견고해 졌다. 카스트로는 케네디에게 "당신이 상륙작전을 시도한 덕분에 우리의 혁명이 굳건해져 고맙다"는 전문을 보냈다. 케네디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해야만 했다. 이후 카스트로는 1961년 12월 몸값으로 5300만 달러는 받은 뒤에 사로잡은 포로 1113명을 풀어 주었다. 이후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1년 뒤인 1962년 10월 피그만 사건으로 인해 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다. 이 일에 자극을 받은 소련의 흐루시초프는 소련의 SS-4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MRBM)기지를 미국의 턱 밑인 쿠바에 건설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소련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해 전 세계가 제 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걱정했다. 피그만 사건 이후 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동생이었던 당시 법무부장관 로버트 케네디에게 모든 사람이 찬성해도 너는 무조건 반대의 입장에서 반대를 주장하라고 하며 그를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의 역할을 맡도록 했다.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는 조직에서는 집단사고로 인한 폐해가 크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다. 악마의 대변인은 카톨릭 교회에서 유래되었다. 카톨릭에서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와 신앙의 표본이 되고 덕행을 행하여 모범적 삶을 살았던 신앙의 증거자를 뽑아 성인으로 추대한다. 한 인물을 성인으로 인정할 때 그의 업적과 순교가 과연 성인의 지위에 합당한지를 검증하기 위해 반대증거를 모아 제시하는 사람을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라 한다. 카톨릭은 엄숙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으로 구성원의 반대표명이 어려워져 부적합한 인물이 성인으로 추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제도를 폐지하였고 그 결과 그의 재임기간 동안 1338명의 복자와 482명의 성인이 배출되었다. 이는 그보다 앞서 재임한 263명의 교황이 임명한 복자와 성인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였다.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어떻게 예방하나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링컨은 집권후 내각을 반대파 위주로 구성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링컨은 그를 얼간이라 부르며 불쌍한 바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에드윈 스탠튼을 내각의 전쟁장관에 임명했고 경선 과정에서 혈투를 벌인 윌리엄 시워드와 새먼 체이스에게는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을 맡겼다. 그러한 이유는 자신의 실수 가능성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링컨은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미리 발생가능한 의견충돌을 내다보고 자신의 판단에 오류는 없는지 수시로 확인해야만 했다. 그의 바다와 같은 포용력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미국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수 차례의 헛발질로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경험한 결과,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냉전이 한창이어었던 시절인 2000년에 미정부는 레드팀(Red Team)을 조직했다. 레드팀이란 미군이 모의 군사훈련을 할때 아군을 블루팀, 적군을 레드팀으로 이름 붙여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레드팀은 악마의 대변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레드팀의 기능은 시뮬레이션, 취약점 파악, 대체 분석 등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1. 시뮬레이션
- 계획을 세우기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선택가능한 모든 경우의수를 고려하여 시나리오를 구성
- 각 시나리오에 부응하는 해결책을 제시 
2. 취약점 파악
- 완벽해 보일수 있는 전략이 경쟁자 입장에서도 철저한지 그 취약한 부분을 공격하면서 검증함
- 즉 경쟁자 입장에서 기존 전략의 약점을 찾아내어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냄
3. 대체분석
- 조직내 관습적이고 주류적인 관점에서 벗어난 시각을 통해 기존에 세워진 가설을 분석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는 사람들이 집단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전혀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말도 안되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사람들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집단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 발생하기 쉽다.

어리석은 집단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집단을 이끌 때, 구성원들의 사회적 배경과 관점이 동일할 때, 시간의 압박이 심할 때,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충분한 토의가 이루어질 수 없을 때이다. 이러한 때에는 집단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 코넬대학의 국가사회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53%는 자신의 생각이나 문제점을 상사에게 절대 이야기 하지 않으며 응답자의 41%는 그것을 시간낭비라고 여긴다. 응답자의 31%는 그렇게 했다가는 자신이 당하는 불이익을 걱정한다고 한다. 조직의 CEO는 자신이 경청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반대의견을 말하는 순간 그는 이단아가 되어 버리고 만다.

조직내부에는 항상 브레이크가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가 없는 집단은 개인보다 더 극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이러한 의사결정이 위험한 이유는 자신의 결정이 틀린줄 모르고 행하기 때문에 파국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집단 속에서 전염되듯이 생각도 집단속에서는 전염된다. 이러한 사고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 리더는 반대편의 의견을 수용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사고를 검열하는 대안적 사고가 중요하다.

 

리스크랩연구소 홈페이지링크:
http://www.risklab.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