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건설보건학회, 첫 토크 콘서트 개최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대한건설보건학회와 안전보건공단이 공동 주최한 '건설현장 화학물질 안전관리 토크 콘서트'가 지난 17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기동부지사에서 개최되었다. 건설현장의 화학물질 관리 제도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행사는 대한건설보건학회가 처음으로 도입한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발표와 토론을 병행하며 실무자와 전문가들이 화학물질 관리의 현실을 심도 깊게 논의하는 소통의 장으로 진행됐다.
대한건설보건학회 백은미 회장은 인사말에서 "화학물질 관리는 건설현장에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현장의 실무자들이 겪는 다양한 애로사항을 솔직히 풀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제안까지 이어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회는 앞으로도 실무자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듣고, 제도 개선에 기여하는 플랫폼이 되겠다"고 밝혔다.
건설업 화학물질 관리, 이제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날 행사에 첫 발표자로 나선 최성필 사무관(고용노동부 산업보건기준과)은 국내 유통되는 화학물질 수가 3만 3천여 종에 달하는 반면, 별도로 관리되는 물질은 약 800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관리 체계는 대부분 사고 이후의 사후 대응에 집중돼 있으며, 이에 따라 사전 예방 중심의 포괄적 관리 체계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건설업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공정 변화가 빈번하고 작업 기간이 짧은 특성상, 고정된 기준만으로는 적절한 관리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최 사무관은 "건설현장은 제조업과는 달리 유연한 노출 평가와 맞춤형 관리 체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직업병 통계 수치를 제시하며, 화학물질로 인한 질환 발생 비율이 10년 새 3배 이상 증가한 점을 강조하면서, "제도 혁신 없이는 건설업의 건강 리스크를 줄이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건설현장, 종합적 노출 평가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두번째 발표자인 김현수 이사(건설화학안전협회)는 건설현장의 화학물질 관리 문제를 짚으며, 현재의 단순한 작업환경 측정 방식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건설업은 다양한 작업 공정과 화학물질 사용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기존 관리 방식만으로는 노출 위험을 충분히 통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김현수 이사는 "이제는 단순 수치 기록을 넘어, 노출 경로, 사용량, 공정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종합적 노출평가를 통해 위험성이 낮은 물질과 높은 물질을 구분 관리하고, 관리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2020년 이후 포괄적 작업환경평가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의 사고 감소 사례를 언급하며, "건설업도 제조업 이상의 체계적 화학물질 관리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강조했다.
건설현장 위험성 평가, 보건관리자 역할을 강화해야
세번째 발표자인 이병열 부장(안전보건공단 건설보건부)은 이병열 부장은 건설현장에서 보건관리자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문제를 지적했다. 현장 위험성 평가가 대부분 안전관리자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보건관리자는 서류상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보건관리자가 보건실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공정 이해를 바탕으로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량물 취급, 계절성 위험, 반복 작업 등 건설현장 특유의 건강 리스크를 구체적으로 짚으며, 보건관리자가 위험성 평가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부장은 과거 제조업에서 안전관리자가 현장 중심으로 역할을 확대한 사례를 들며, "보건관리자 역시 현장을 기반으로 역량을 키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단발성 관리에서 벗어나, 건설현장 중심의 화학물질 제도로
토크 콘서트의 핵심 세션인 자유 토론 시간에는, 건설현장 실무자들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와 제도적 한계를 솔직하게 쏟아냈다. 특히 단발성 관리에 머물고 있는 기존 체계의 한계를 넘어, 건설현장 실정을 반영한 화학물질 관리 체계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요구가 강하게 제기됐다.
특수건강진단 제도의 비현실성
먼저 실무자들은 특수건강진단 제도의 비현실성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일년에 한두 번, 극히 소량 사용되는 화학물질에도 특수건강진단을 의무화하는 현행 기준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건관리자인 한 참석자는 "사용 빈도가 낮은 물질까지 일률적으로 특검을 받게 하면 오히려 형식적인 관리로 흐를 수 있다"며, "노출량과 사용 빈도를 기준으로 진단 주기를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다른 참석자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도 "과도한 규제는 현장 관리자가 물질 사용 기록을 숨기도록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보다 투명하고 실질적인 화학물질 관리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최성필 사무관은 "전문가와 실무자의 의견을 반영해, 특수건강진단 제도를 현실성 있게 개선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건설업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건강검진 기준
참석자들은 단기 근로자 비율이 높은 건설현장의 특성상, 배치 전 검진이나 주기적 사후관리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외선, 소음, 분진 등 유해 인자별로 검진 주기가 다르지만, 이를 모두 관리하는 것은 현장의 여건상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자외선은 6개월, 소음은 1년 주기로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근로자가 짧게 근무하는 현장에서는 일일이 맞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장의 생생한 어려움이 공유됐다.
이에 대해 최 사무관은 "건설현장의 단기성, 공정 변동성을 반영해 검진 주기 조정이나 적용 기준을 유연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SDS(물질안전보건자료) 확보 문제의 애로사항
참석자들은 "소규모 유통처나 하도급업체를 통해 화학물질을 구매할 경우, MSDS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아예 요청 자체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구매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MSDS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해외 수입 제품의 경우 한글 MSDS조차 갖추지 않은 사례도 있다"고 구체적인 현장 사례를 공유했다.
현장에서 보건관리를 담당하는 많은 실무자들은 이로 인해 물질 유해성 평가와 대응 조치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업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최성필 사무관은 이에 대해 "MSDS 제공 의무를 수입사와 제조사뿐만 아니라 유통 단계까지 강화하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토론은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건설현장의 복잡성과 현실을 고용노동부 관계자와 직접 논의하는 실질적 소통의 장이 됐다. 현장의 실무자들은 평소 수면 아래 있던 애로사항을 구체적으로 제기하며, 기존 관리 체계의 한계와 진정한 현장 중심 화학물질 관리 체계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대한건설보건학회 토크 콘서트는 단순한 발표를 넘어, 건설업 현장 특수성을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를 생생하게 드러낸 자리였다. 발표자들과 실무자들은 화학물질 관리 제도를 현장 실정에 맞게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제조업과 달리 단기성, 복합성 공정이 빈번한 건설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노출 위험성 평가를 기반으로 한 종합적 관리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했다.
대한건설보건학회는 이번 토크 콘서트를 시작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 개선과 실질적 변화로 연결하는 지속적인 플랫폼 역할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장의 작은 외침이 제도 변화의 큰 물결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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