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위험 속에 반복되는 사고

사고와 사고 속에 잊혀지는 사람들

10월 15일 새벽, 밤샘 노동의 막바지 시간대에 20대 청년노동자가 교반기(배합기)에 끼어 사망했다. 그동안 노동자들에 대한 횡포로 인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던 SPC 그룹 계열의 제빵 회사라는 점에서 사회적 공분이 높았다. 더구나 사고 바로 다음날 노동자가 사망한 기계에 흰 천을 두른 채, 동료 노동자들의 충격과 정신적 트라우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재개해서 지탄받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규명과 대책이 제대로 논의되기도 전에 지난 30일 이태원에서 충격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154명의 젊은이들이 사망한 엄청난 재해로 인해서 어느 순간 제빵 노동자의 죽음과 기업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뭍혀 버린듯 하다.

 

하지만 이들 사건 사이에는 우리 사회가 다시 챙기고 새겨야할 공통적인 문제지점이 있다. '예견된 위험'에 대한 방치가 참사를 불러왔다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했던 SPL 공장에서도 유사한 사고와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시정되지 않았고, 덮개나 자동멈춤이 가능한 기본적 안전 장치도 없이 노동자들을 위험에 방치한 채로 일을 시켜왔던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통행로에서 154명의 시민들이 압사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역시 예견된 위험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그리고 당일에도 혼잡하고 밀집된 샛길에서 적절한 안내나 통제없이 이동하는 인파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관리되지 않았고,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

 

위험관리의 책임있는 주체가 중점을 둔 것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이 아니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SPL 노동자 사망에 있어서 책임있는 주체는 당연히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다. 이들이 관심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이 아니라 생산의 속도와 이윤을 위협하는 위험이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는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지만,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행정당국, 지자체, 경찰 당국에 있다. 이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지역 상권의 회복이나 고루한 기성세대들에게 방탕하게만 보이는 젊은이들이 벌일지도 모르는 범죄적 행위를 적발하는 '치안 유지'였던 모양이지만, 모든 것의 기본 전제가 시민의 안전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전 문제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중대하고 치명적인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십건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건의 징후들이 사전이 나타나며 그것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인명의 사상을 초래하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대한 재해 1건에 대해서 경미한 사고는 29건, 징후는 300건이 사전에 나타난다고 통계적으로 산출했던 사람의 이름을 붙여 '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한다.

 

노동자의 사망이나 시민들에게 발생한 참사나 모두 위험에 대한 징후와 작은 사건들을 사전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앞으로가 문제다. 먼저 예방을 위해 위험관리의 책임주체를 제대로 세워야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동안 중대산업재해나 시민재해에 있어서 예방관리의 책임있는 주체를 분명히 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중대 재해가 발생한 경우에 강력한 처벌을 내릴 것임을 천명하여 시민과 노동자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자는 법이었다.

 

SPL 산재와 달리 이태원 참사는 법으로 정한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ㆍ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한 법이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이번 참사에 관리책임의 주체가 없을 수는 없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시민의 안전에 대해서 예견하고 위험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관리조치가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마치 기업에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듯 시민의 안전 위해요소에 대해 사전에 위험의 성격과 그 결과의 크기를 예측하고 개선하고 관리하는 공공안전에 대한 위험성평가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SPL기업이 동료노동자들의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는 안중에 없이 생산을 재개했던 몰지각한 처사를 상기해보자.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는 그런 형편없는 대응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사고에서 생존한 사람들, 유가족, 구조에 참여했던 경찰, 소방공무원과 의료진, 일반 시민들 모두가 트라우마에 노출되었다.

 

세월호에서 그랬듯이 어쩌면 국민모두가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산재사망과 참사를 경험한 노동자들, 시민과 국민들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일터가, 이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나 자신이 그리고 가족과 아이들이 똑같은 사고나 참사로 숨지거나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예견이 가능해야 비로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충격에 빠진 유가족과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책임을 지게 만들고, 사고를 복기하여 사고와 재난 방지 프로토콜과 절차를 세워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지킬 수 있도록 공표하고 안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책임을 떠넘기고, 제물로 삼기 위해서 특정되지 않은 가해자를 찾는데 경찰력과 자원을 소진하는 것보다는 당장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 책임을 지는 모습이 온 사회를 휘감고 있는 불안과 울분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는 길일 것이다.

 

 

ⓒ류현철 센터장(일환경건강센터)
ⓒ류현철 센터장(일환경건강센터)

※ 류현철 센터장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일환경건강센터 센터장, 노동안전보건단체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의학기술이 진보하더라도 환자에게 직접 닿아 쓰일 수 있는 의료전달 체계가 제구실을 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이,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과 의식이 같이 진전해야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활동중이다.

 

그의 저서로는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공저), 《업무적합성 평가의 원칙과 실제》(공저), 번역한 책으로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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