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 건강 이상에도 산재 인정…“근로자 보호 취지 강화”
- 산업보건관리자, 고위험 근로자 맞춤 관리 중요성 커져

ⓒ이미지-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생성 책임자: 김희경), Gam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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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급성 심장질환 등 개인 건강 문제가 운전 중 사고로 이어졌더라도 퇴근길 교통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돌발적 건강 이상이나 운전자 과실이 있으면 출퇴근 사고가 산재로 인정되기 어려웠지만, 이번 판결로 출퇴근 재해 보상 범위가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최근 소방설비 배관공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차량 추락사고 사망…공단 “급성심장병 가능성” 주장했지만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9월 전남 여수의 한 공사 현장에서 근무를 마친 뒤 차량을 운전해 귀가하던 중, 도로 경계석을 넘어 6m 아래 하천으로 추락했다. 사고 발생 이틀 뒤 ㄱ씨는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A씨의 사망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차량 사고 전 급성심장병으로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부검 결과 A씨의 관상동맥에서 중등도 동맥경화 소견이 확인된 점이 근거였다.

 

 

왜 그간 출퇴근 사고는 산재 인정이 까다로웠나

과거에는 출퇴근 중 발생한 교통사고가 사업주의 관리·감독 범위를 벗어난 사적 활동으로 간주돼 산재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근로자의 개인 건강 이상이나 운전 부주의 등이 사고 원인으로 의심될 경우, 업무상 재해와 직접적 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상이 거부되기도 했다.

 

2018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으로 출퇴근 재해가 원칙적으로 산재로 인정되도록 제도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일부 사례에서는 개인 질환 등이 산재 여부 판단에 쟁점이 되어 왔다.

 

 

법원 “출퇴근 재해는 근로자 생계 보호 취지…심장병도 배제 사유 아냐”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A씨의 사망 원인을 심장병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부검 결과는 ‘사인 불명’에 가깝고,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던 A씨가 운전을 시작한 지 3분도 채 안 돼 심각한 심장병이 발병했다고 보기는 부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설령 A씨가 급성심장병으로 숨졌다고 하더라도, 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출퇴근 재해 규정을 둔 취지는 근로자와 그 유가족의 생계와 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근로자의 건강 문제가 사고 발생에 일부 영향을 줬다고 해서 업무상 재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에서 차량이 하천으로 추락해 발생한 사고는 출퇴근 운전에 통상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은 노동자의 고의, 자해행위, 범죄행위로 인한 사망만을 업무상 재해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건강상 문제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출퇴근 재해에서 제외하는 것은 이를 고의나 범죄행위와 같은 사유로 평가하는 것과 다름없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고위험 근로자 관리, 현장 산업보건관리자 역할 더 중요해져

이번 판결은 돌발적인 건강 이상이 있어도 출퇴근 사고가 산재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는 고위험 근로자에 대한 건강관리 체계를 더욱 촘촘히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보건 전문가들은 근로자의 급성질환 발생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정기 건강검진과 특수검진 결과를 기반으로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개인별 건강 정보를 최신 상태로 관리할 것을 권고한다. 특히 심혈관 질환이나 고혈압 등 돌발성 질환이 의심되는 근로자에게는 무리한 야간근무나 장시간 운전 업무를 최소화하고, 필요에 따라 근무 시간과 방식에 대한 맞춤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근로자가 스스로 이상 징후를 자각하고 즉시 보고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교육에 건강관리 내용을 포함하고, 현장 관리자와 긴급 상황 대응 프로토콜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 근로자에 대한 응급조치 교육과 출퇴근 시 교통안전 수칙 안내 등도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근로자의 건강정보와 고위험군 관리 내용, 조치 결과 등은 산재 분쟁이 발생할 경우 중요한 증빙자료가 되는 만큼, 모든 기록은 체계적으로 문서화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보고 등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근로자의 건강 이상으로 인한 사고도 결국 사업주와 관리자의 책임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의미”라며, “산업보건관리자가 고위험군의 위험도를 줄이고 사고를 예방하는 관리 시스템을 현장에 정착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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