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 하청노동자 사망…중대재해처벌법, 현장에선 왜 작동하지 않았나

ⓒ사진은 김씨가 작업 중이던 기계의 모습./출처- 사망사고 대책위
ⓒ사진은 김씨가 작업 중이던 기계의 모습./출처- 사망사고 대책위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0대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어둡고 위험한 현장에서 홀로 일하다 벌어진 죽음이었다. 그 비극 이후 법이 바뀌고 사회는 안전을 외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같은 발전소에서 또다시 혼자 작업 중이던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법은 존재했지만, 그 법이 작동할 구조는 여전히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번 사고는 반복되는 사고 앞에서 언제까지 표면적인 대책만 반복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다시금 묻고 있다.

 

 

태안화력에서 또 한 번 발생한 하청노동자 사망 사고

지난 2일 오후 2시 46분경, 충남 태안군 원북면의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종합정비동에서 하청업체 소속 50대 노동자 김충현 씨가 선반기계에 옷이 감기며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그는 혼자 작업 중이었으며, 기계 소음이 이상하다는 동료와 관리자의 직감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김 씨는 한국서부발전이 발주한 정비사업을 맡은 재하청업체 소속으로, 10년 가까이 이 현장에서 근무하며 짧은 단위로 계약을 반복해왔던 숙련된 작업자였다.

 

 

익숙함 속에서 나타난 시스템의 취약성

이번 사고의 작업환경은 피해자에게 낯설지 않았다. 수년간 반복적으로 수행해온 작업이며, 사용하는 기계 또한 오랜 기간 다뤄온 장비였다. 그러나 바로 그 익숙함이 이번 사고의 위험을 감추는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스템은 일정한 성공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지만, 작은 불안정성이 누적될 경우 어느 순간 그것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특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처럼 반복되던 일상 중에 갑작스러운 끼임 사고가 발생한 것은, 그 일상이 이미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고 직후 대부분의 논의는 언제나처럼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향한다. 작업자가 규정을 위반했는지,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왜 이번엔 그 시스템이 실패했는가’라는 질문 없이,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는 없다. 사고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그동안 작동해온 체계가 특정 조건 아래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반복되는 비극,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 현장

이 사고가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같은 장소에서 유사한 사고가 이미 발생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같은 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은 전면 개정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됐다.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제도적 변화는 법률상의 책임 구조를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그 변화가 현장까지 이어지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비정규직 중심의 하청 구조는 유지됐고, 단기 재계약은 작업자의 안정성을 해치는 주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인 1조 근무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위험 작업에 대한 사전 통제나 비상정지 체계 역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법은 있었지만, 그것이 운영되는 방식까지 달라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현장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의 중요성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책임자가 누구인지 묻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바로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로 이번 사고 역시 법적 적용 여부를 두고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그러나 단지 처벌만으로는 다음 사고를 막을 수 없다. 무엇이 작동하지 않았는지, 왜 시스템은 그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성찰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법은 현실에서 실효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실제 법령은 단순히 안전장비의 설치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 전반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을 규정하고 있다. 예산 편성과 인력 배치, 위험요인 개선 등의 항목은 현장 운영체계 속에서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그러한 체계가 서류에만 존재하고, 실제 작업 흐름 속에는 자리 잡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작업 흐름 자체를 바꾸는 실천이 필요하다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는 단속이나 처벌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작업을 설계하고 조직하는 방식 자체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2인 1조 근무는 단순한 인원 배치가 아니라, 위험 상황에서 서로를 보호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자리 잡아야 한다. 기계의 안전센서나 비상정지장치는 설치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제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작업자에게 그 기능이 충분히 교육돼야 한다.

 

또한 현장의 위험요인을 사후에 점검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업자 스스로가 위험을 감지하고 보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하청노동자는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위험에 먼저 노출되는 감지자이며, 그들의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반복되는 사고, 헛되이 흘러가는 죽음

안전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안전 투자가 경시되지만, 사고가 터지고 누군가 다치거나 죽은 뒤에야 비로소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는 그 피를 반복해서 흘려보내고 있다. 매번 사고가 나고 나서야 대책이 쏟아지지만, 그것은 일시적 조치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사고가 일어난 뒤에야 대책을 내놓는 방식을 반복할 것인지에 대해 이제는 그 질문을 피해갈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책임을 선언한 법이다. 그러나 선언은 시작일 뿐이다. 재해 예방은 선언이나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와 문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법은 아무리 정교해도 사고를 막지 못한다.

 

법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장의 안전문화, 근로자의 인식, 그리고 시스템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야만, 그 구조는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 그것은 구조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설계된 작업 흐름, 위험을 감지하고 피드백하는 운영 방식, 일상의 성공을 학습하고 실패를 분석하는 문화가 구축될 때에야 비로소 안전은 현장의 일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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