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사이렌/출처-고용노동부
​ⓒ중대재해사이렌/출처-고용노동부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지난 5월 16일 오후 6시 3분경, 광주 서구 기아차 광주공장의 차량 검사라인에서 40대 근로자 A씨가 자동으로 이동하는 컨베이어 설비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정비·검사 작업 중 설비가 완전히 정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는 오후 6시 6분경 “직원이 기계에 끼었다”는 내용으로 경찰에 접수됐으며, 현장 의료진이 즉시 A씨를 발견해 응급조치를 시도했으나 A씨는 목 부위를 크게 다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결국 숨졌다.

 

사고 현장은 차량이 자동으로 이동하는 컨베이어 검사 라인으로, 1인이 전담하는 공정 특성상 즉각적인 동료 대응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화 설비 끼임 사고, 제조업 사망사고의 주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6~2019년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는 총 272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벨트컨베이어, 천장크레인, 지게차 등 자동화된 설비에서 사고가 집중됐고, 특히 벨트컨베이어는 단일 기인물 중 가장 많은 18건의 사망사고를 기록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보고서-방호설비 설치대상에서의 사고​ⓒ산업안전보건공단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보고서-방호설비 관련 사망재해
​ⓒ산업안전보건공단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보고서-방호설비 설치대상에서의 사고​ⓒ산업안전보건공단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보고서-방호설비 관련 사망재해

보고서는 이들 사고가 단순한 설비 문제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기계가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정비·점검에 들어가고, 방호장치가 없거나 무력화되며, 위험작업 감시자가 배치되지 않는 관리구조가 반복된 결과라는 것이다.

 

 

방호장치, 설치만으로는 부족… 절차 없는 운영이 문제

연구결과에 따르면, 방호설비 설치 대상이었던 사고 132건 중 115건은 미설치, 18건은 오설치였으며, 설치된 경우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작업 편의성 이유로 해체되는 경우가 다수였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보고서-방호설비 설치대상에서의 사고ⓒ산업안전보건공단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보고서-기인물별 사망재해자수
 ​ⓒ산업안전보건공단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보고서-방호설비 설치대상에서의 사고ⓒ산업안전보건공단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보고서-기인물별 사망재해자수

또한, 전체 끼임 사망사고 중 절반가량은 기계 설비의 설치·보전작업 중 발생했으며, 직선운동 중인 설비 기계 사이에 끼임이 주된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LOTO(Lockout-Tagout, 에너지 차단 및 표지설치)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감시자가 배치되지 않은 데 따른 문제로 분석됐다.

 

 

절차 기반 안전 시스템과 정기 감사의 중요성

대기업의 경우, 정부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리스크를 찾아내고 관리할 수 있는 자율 안전관리 시스템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자동화 설비를 운영하는 기업일수록 다음과 같은 3단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첫째, 표준운영절차(SOP) 강화와 문서화
정비·점검 작업의 표준운영절차(SOP)를 설비별·작업유형별로 상세히 매뉴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매뉴얼은 텍스트만으로 끝나지 않고, QR코드나 현장 게시물 형태로 작업자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현장에 배포해야 한다. 외주 인력도 동일한 SOP를 따라야 하며, 사전 교육과 정기 재훈련이 필수다.

 

둘째, 에너지 차단(Lockout-Tagout, LOTO) 실효성 강화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정비나 청소 전에 LOTO 절차와 이중 점검 체계를 반드시 거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누군가 멈췄다고 했으니 괜찮겠지”라는 관행이 사고로 이어진다. 따라서 현장 관리자나 감시자가 직접 설비 정지 상태를 재확인한 뒤 작업을 시작하도록 절차를 보완해야 한다.

 

셋째, 감시자 배치와 정기 감사 시스템 도입
정비·보전 중엔 반드시 감시자를 지정해 작업자 안전을 감독해야 하며, 외주 작업에도 동일한 절차가 적용돼야 한다. 기업은 LOTO 이행 실태를 반기·분기 단위로 감사하고, 개선사항을 SOP에 반영해야 한다.

 

 

국내외 모범 사례 : 전자 SOP(e-SOP)로 실시간 관리

NTT DATA Taiwan 등 일부 글로벌 기업은 전자표준운영절차(e-SOP) 시스템을 도입해 작업자의 절차 이탈을 실시간으로 방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작업자가 위험 요소를 시각적으로 인식하도록 돕고, LOTO 이행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SOP가 바뀌면 자동 업데이트한다. 또한 작업 중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 반복되는 리스크를 사전에 찾아내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 

 

국내에서는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중소 제조업체의 이러한 어려움을 덜기 위해 '기계 방호장치 무상 지원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 사업은 방호장치 설치부터 기술 자문까지 포괄적으로 지원하며,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한 일부 사업장에서는 끼임 사고 발생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설비가 아니라 절차가 안전을 만든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관리다. 장비보다 앞서야 하는 건 절차이며, 장비를 멈추는 것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다. 기계는 결국 사람이 돌보고, 사람이 멈춰야 안전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작업 현장은 여전히 "설비가 돌아가는 동안" 점검이 이루어지는 불완전한 구조 위에 놓여 있다.

 

기계가 멈추지 않는 한, 사람은 언제든지 위험에 노출된다. 반복되는 끼임 사고는 낯선 재해가 아니다. 제대로 멈추지 않은 설비, 지켜보지 않은 절차가 만든 예고된 사고일 뿐이다.

 

 

※ 이 기사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제조업 끼임 사망사고 감축 및 사업장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2020) 등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