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

 1972년 1월 24일. 괌에서 57세의 어느 남성이 마을에서 새우를 훔쳐 먹다가 차모로족 주민들에게 발견되었다. 경찰이 이 남성의 신원을 확인해 보니 1944년 2차 대전 당시 괌에 배치되었던 일본군 요코이 쇼이치였다. 전쟁이 끝난지 한참이 지난 뒤였지만 28년 동안이나 땅굴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발견된 것이다.

 

1915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그는 1944년에 괌에 배치되었다. 그후 미군이 괌을 점령하게 되면서 일본군은 2만명이나 전사했고, 남은 대다수의 일본군은 보급이 끊겨 밀림과 바위굴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어, 결국 살아남은 100여 명은 항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요코이 쇼이치는 동료 2명과 함께 괌의 깊은 대나무 숲속으로 도망쳐 땅굴을 만들어 몸을 숨기고, 물고기, 개구리,쥐, 과일 등으로 목숨을 연명해 나갔다. 입고 있던 군복이 모두 헤어져 버리자 나무껍질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었다. 

괌은 열대우림 기후여서 춥지는 않았지만 먹을 것이 부족했고 결국 다른 동료 2명은 8년 만에 목숨을 잃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전쟁은 끝이 났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7년 후에 우연히 미군의 전단을 발견하면서 일본이 전재에서 패해 항복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항복은 곧 치욕이었으므로 치욕을 당하느니 동굴에 계속 남아 살기로 한다. 그가 발견되었을 때 그는 수십년동안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는 법을 잊은지 오래였고, 좁은 토굴에서 오랫동안 숨어살은 탓에 똑바로 서지도 걷지도 못했다.

 

3개월간 치료를 받자 요코이는 언어능력을 회복했다. 일본에 돌아온 그는 고향에 잘 정착하여 전국을 돌며 강연도 하고, 토기를 구워 생활하다가 1997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을 마치 로빈스 크루소의 삶과 같았다. 그는 꼼꼼하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수십 년동안 밀립에서 고독과 싸워 이겨냈던 것도 그의 성격 덕분이었다. 혼자살면서도 그의 생활에는 규칙성이 있었고, 앞으로의 일들을 계획적으로 수행했다. 그가 수십년 동안의 고독을 견뎌낸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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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못 견뎌 한다. 1950년대 캐나다 맥길대학에서는 한 가지 특이한 실험을 했다. 성인 남성을 한번에 한 명씩 방음된 작은 방에 있는 침대에 눕히고, 시각을 차단하는 특별한 안경을 쓰게 하고, 귀에는 한가지 주파수의 소리만 나오는 백색소음 귀마개를 씌웠다. 그리고 손도 통모양의 케이스로 덮어 인간의 감각을 차단했다.

이들은 가능한 한 오래동안 실내에 머물게 했지만 아무리 강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도 3일이 한계였다. 좁은 방에서 감각이 차단된 이들은 입실후 바로 주의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며 감정도 격하게 요동쳤고, 곧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곧 환상과 환청이 몰려왔다. 

이후에도 이와 같은 실험은 세계 각국에서 행해졌는데, 일본 나고야 대학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했다. 지름이 2.3m 높이가 3.3m인 방에는 안락의자, 책상, 수도꼭지, 변기가 놓여있고, 실내의 조명은 40lux, 온도는 24℃로 유지한다.

이 방안에서 한 명이 3일 동안 지내게 했다. 이 사람에게는 방속에 갇힌 자신의 감정을 기록한 종이를 제출할때 마다 벽에 난 구멍을 통해 먹을 것이 전달된다. 방에 있는 사람의 음성은 외부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지만, 외부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이들은 처음에는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곧 피해망상이나, 환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러한 환경에 저항할 의욕이 사라지자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3일이 지나자 심한 허탈감에 빠졌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전반적으로 차분해지기 시작하여 이들보다 더 오래버틸 수가 있었다. 

2006년 영국의 방송사인 BBC도  완전한 감각 박탈이 인간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가지 실험을 한다. 건강한 자원자를 모집한 후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독방에서 48시간을 지내도록 한 것이다.

이들은 독방에서 지내는 동안 끊임없는 환각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알수없는 불안감이 물 밀듯이 엄습해왔다. 48시간이 지난 후에 이들의 기억력이나 계산 능력 등을 점검했을 때, 이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했으며 피암시성이 높아져서 연구진들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캐나다,일본, 영국 등에서 이들에게 한 실험은 일종의 감각박탈 실험이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의 뇌는 아무런 감각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극도로 못견뎌 한다. 생후 6개월 이내의 영아에게 외부에서 아무런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이들의 뇌는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 것과 같다.

 

193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인 볼프강 메츠거(Wolfgang Metzger)는 인간에게서 시각 자극을 박탈했을 때 환각을 보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라고 이름 붙였다. 간츠펠트(ganzfeld)라는 독일어는 한국말로는 전체시야(total field)정도로 해석된다. 간츠펠트 효과는 인간의 뇌에 가해지는 아무런 자극이 없을 때에는 뇌는 무언가 대체할 자극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시각과 청각을 차단하여 어떠한 자극도 입력되지 않도록 하면, 뇌는 거짓 신호를 만들어내서라도 절대적인 감각 박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환각과 환청이다. 이러한 감각박탈로 인한 이상현상은 독방에 감금되어 있는 죄수, 광산 붕괴사고로 수십 일동안이나 매몰된 광부나, 온통 하얀 눈밖에 안 보이는 남극에서 몇 달을 보내야 하는 연구원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대사회에서의 인간들은 손만 뻗으면 쉽사리 닿는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기기 덕분에 감각박탈에 놓일 상황은 거의 없고 오히려 감각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 놓여있다가 갑자기 이러한 기기들이 주변에서 없어진다고 치자. 그러면 마치 감각 박탈 상태에 놓인 것처럼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에 지쳐버리게 된다. 

예로부터 무료함은 인간의 마음을 갉아먹는 어두운 힘으로 묘사되어 왔다. 노인들의 4대 고통은 생활고, 질병고, 고독고, 무위고이다. 이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 무위고이다. 중세시대 교부들은 무기력과 나태 등과 같은 것을 아케디아(acedia)라고 하여, 인간의 마음을 점령하여 생동감을 말려버리고, 소멸시키는 악마라고 죄악시하였다. 이러한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은 더욱 자극적인 감각을 추구하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금 무기력에 빠져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것이 인류가 진화해온 생존방식이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의 딜레마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추운 겨울 어느날, 서로의 온기를 위해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있었다. 하지만 고슴도치들이 모일 수록 그들의 바늘이 서로를 찌르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추위는 고슴도치들을 다시 모이게끔 하였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수의 모임과 헤어짐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다른 고슴도치와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이와 같이 인간 사회의 필요로 인하여 인간이라는 고슴도치들이 모이게 되었지만, 그들은 인간의 가시투성이의 본성으로 서로를 상처 입힐 뿐이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서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예의를 발견하였으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서로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거칠게 말해지곤 하였다. 이 방법을 통해 서로의 온기는 적당히 만족되었으며, 또한 인간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릴 일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남을 찌를 수도, 자신을 찌를 수도 없었던 사람은 자신만의 온기로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살고 있지만 때로는 그 관계들로 인해 숨막혀 하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너무 고립되는 것도 문제이다.

 

2009년 7월 21일 밤 11시 35분쯤 남극 세종기지에서 이해할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종기지의 총무 박모(46)씨가 주방장 A(38)씨를 식당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 것이다. 박씨는 A씨를 밀쳐 쓰러뜨린 뒤 의자와 식당 집기를 집어던졌고, 주먹과 발로 A씨를 난타했다. 박씨는 옆에서 말리는 김씨를 업어치기로 메다꽂고, 양주를 담는 얼음통으로 A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반항도 못하고 계속 맞기만 하던 A씨는 박씨가 소화기를 집어들자 식당 밖으로 도망쳤고, 박씨는 웃통을 벗어던진 채 A씨를 쫓아 식당을 뛰쳐나갔다. 살해 위협에 시달린 A씨는 추위에 떨면서 새벽 4시까지 창고에 숨어 있어야 했다. 

문명과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남극, 그와 같은 곳에서 이들이 견뎌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우리가 상상을 못할 정도이다. 장기간 고립된 상황에 따른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스트레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극저온의 날씨와 몇날 며칠이고 밤만 계속되는 나날들, 그렇게 고립된 기지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생활을 하다보면 그들은 극단적인 감각박탈과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그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심리적 고립감, 불안감 등으로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리고 때로는 정서 장애나 간혹 이상 행동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1984년 아르헨티나 기지에서는 기지 대장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신의 기지에 불을 지르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복잡한 문명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기에 매우 지치고 피곤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가 그리 인기를 끄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각의 박탈 속에서는 더더욱 살수 없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대인관계가 축소되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코로나 전에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수 많은 관계와 집단 속에서 생활했지만 이들과 맺고 있는 관계와 환경에 대해 고마움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이 모든 상황들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제조업에서도 일고 있다. 최근에는 제조업은 점점 스마트 팩토리화되어 가고 있어서 공장에서도 단독작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대 근무자가 심야에 혼자서 기계의 점검이나 감시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 이때 이들은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나 고독감에 싸이게 된다. 건설업에 있어서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하루종일 높은 타워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서 혼자서 일을 해야만 한다.

 

이처럼 사회적 접촉이 단절되어, 인간관계의 소통이 어려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에 노출되기 쉽다. 이제 우리는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여러가지 안전사고들과 더불어 이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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