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근로자 안전이 현재 중요한 변곡점에 놓여 있다. 수십 년간 교육, 안전 프로그램, 진단 등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산업에서 사고 발생률은 감소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안전관리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근본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렇게 정체된 상황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에이전틱 AI(Agentic AI)이다. 에이전틱 AI는 인간의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행동을 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여 보고하는 기존의 AI와 달리,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상황을 해석하며, 필요할 경우 즉각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자율성과 맥락 인식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에이전틱 AI의 등장은 산업 현장의 복잡한 위험과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사후 기록과 관찰 중심의 전통적 안전관리 체계를 사전 예측과 개입 중심으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다.
전통적 안전관리의 한계
현재까지의 산업안전 시스템은 철저히 사후적 접근에 머물러 왔다.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 체계는 과거의 잘못을 기록하고 개선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험을 예측하거나 즉시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많은 기업이 여전히 서류 점검표, 보고서, 검사 중심의 관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작업환경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러 설비가 동시에 작동하고 근로자는 기계적, 화학적, 인적 요인이 얽힌 다층적 위험 속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한 쪽에서는 기계 진동이 높아지고 다른 구역에서는 공기질이 악화될 수 있다. 전통적 시스템은 각 데이터를 따로 기록할 뿐, 이 두 신호가 결합하여 잠재적 재해로 발전할 가능성까지는 감지하지 못한다.
이러한 맹점이 바로 정체된 안전의 원인이다. 반복되는 사고는 단순히 근로자의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 위험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에이전틱 AI의 등장과 변화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에이전틱 AI이다. 에이전틱 AI는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환경을 해석하며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자율적인 인공지능이다. 즉 인간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동적 시스템이다.
기존의 자동화 기술이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수준이었다면 에이전틱 AI는 맥락을 이해(Context Awareness)하고 우선순위를 스스로 결정(Decision Autonomy)하며, 즉각적 조치를 제안(Action Guidance)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비 점검 중 기계의 이상 진동이 감지되고, 동시에 공기 중의 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했을 때 기존 시스템이라면 이 두 데이터를 별개로 기록하지만, 에이전틱 AI는 이를 ‘복합 위험’으로 인식하고 즉시 관리감독자에게 경고를 전송한다.
또한 영국 회계 기업 PwC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경영진의 79%가 이미 에이전틱 AI를 일부 도입했으며, 88%가 향후 관련 예산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유행이 아니라 안전관리의 패러다임이 기록 중심에서 행동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에이전틱 AI의 실제 적용과 현장 효과
에이전틱 AI의 가장 큰 강점은 현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즉시 대응 행동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실제 안전관리에서 그 효용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1. 미보고 위험의 해소
많은 근로자가 시간 부족이나 조직 문화에 의해 위험을 보고하지 못한다. 에이전틱 AI는 근로자의 착용형 기기, 환경센서, 점검 기록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위험 패턴을 스스로 감지한다. 소음, 열, 진동, 근골격계 부담 등 복합적인 데이터를 결합하여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즉시 감독자에게 경고하고 대응 절차를 안내한다.
2. 의사결정 과부하의 완화
현장의 안전관리자는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즉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에이전틱 AI는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정리하여 어떤 위험이 더 시급한지를 알려준다. 복합 위험이 발생하면 단일 위험보다 우선순위를 높게 설정하여 즉시 개입을 권고한다. 이는 관리자의 판단을 돕는 동시에 사고 발생 직전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기능이다.
3. 예측·예방 중심의 안전관리 전환
에이전틱 AI는 단기 경고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사고 데이터와 현재의 센서 신호를 결합하여 위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한다. 로그 데이터, 유지보수 이력, 사고 사례 등을 종합 분석하여 설비 이상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실제 고장이 일어나기 전에 점검을 지시한다. 이는 기존의 사고 후 정비를 사고 전 예방으로 바꾸는 핵심 역할이다.
4. 근로자 개인 맞춤 지원
착용형 기기와 연결된 에이전틱 AI는 근로자의 피로도, 자세 변화, 소음 노출량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위험 수치가 임계치에 다다르면 즉시 경고를 보낸다. 이러한 즉각적 피드백은 근로자가 스스로 위험을 교정하고 더 안전한 작업 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미 제조 및 건설 등 고위험 산업에서 시범적으로 도입되고 있으며, 초기 사례에서는 사고율 감소와 근로자 피로도 완화 효과도 보고되고 있다.
국내 적용과 과제
한국 역시 산업재해 사망률이 OECD 평균보다 높고, 중소·하청·외국인 근로자 중심의 사고가 여전히 많다. 따라서 에이전틱 AI의 도입은 기술적 혁신이자 구조적 개선을 위한 기회로 평가된다. 다만 몇 가지 현실적 과제가 존재한다.
▶ 데이터 인프라 부족: 센서, 점검기록, 작업일지 등 현장 데이터의 표준화가 미비하여 AI가 학습하기 어렵다.
▶ 근로자 신뢰 문제: 일부 근로자는 AI를 감시 장치로 인식할 수 있다. 도입 과정에서의 투명한 정보 공유와 참여적 설계가 필수적이다.
▶ 인간 감독 체계 유지: AI가 판단을 내리더라도 최종 결정은 인간이 내려야 한다. 현장의 경험과 맥락적 판단을 보완하는 도구로 활용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 법·윤리적 책임 정립: AI가 내린 판단으로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기업·근로자가 함께 참여하는 AI 기반 안전관리 거버넌스 구축이 요구된다.
에이전틱 AI의 등장은 산업안전의 중심축을 사후 관리에서 선제적 대응으로 옮기고 있다.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근로자의 생명과 직결된 의사결정 구조가 바뀌는 변화이다. 모든 위험을 AI가 대신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과 AI의 판단이 결합된다면 산업안전의 다음 10년은 지금보다 훨씬 예측 가능하고 지속가능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결국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더 멀리 보고, 더 빠르게 판단하며, 더 정확하게 개입할 수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에이전틱 AI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