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예고된 인재, 불법파견·안전의무 소홀 중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최고 형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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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지난해 6월 경기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대표이사와 총괄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선고된 형량 중 가장 무거운 실형이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는 23일 박순관 대표이사와 박중언 총괄본부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파견근로자보호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를 인정하고 이같이 판결했다. 아리셀 법인에는 벌금 8억 원, 불법 파견업체 두 곳에는 각 3천만 원의 벌금이 선고됐으며, 관련 임직원 4명도 징역·금고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재판부 “예고된 인재… 이윤 앞세운 구조적 문제”

재판부는 이번 화재를 “예측 불가능한 불운이 아니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예고된 인재”라고 규정했다. 판결문에서는 “생산량 증대와 납기 준수를 위해 노동자의 안전을 방치한 채 이윤 극대화만을 앞세웠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리셀이 군납 전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 파견근로자 300여 명을 직접 생산 공정에 투입한 사실을 중대한 위반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 공정에 파견을 금지하는데, 이는 안전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며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위반한 결과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만큼 더 엄중히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피 불가능 구조, 교육 무력화도 지적

법원은 피해가 확대된 원인으로 공장 내 비상구 위치와 안전교육 문제를 함께 지적했다. 판결문은 “비상구가 보안구역 안에 있어 파견근로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고, 잦은 인력 교체와 언어 문제로 소방·안전 교육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피해자들이 신속히 대피하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적시됐다.

 

또한 아리셀 공장에서 과거 네 차례 발생한 유사 화재·폭발 사고 이력도 언급됐다. 재판부는 “사고 원인이 달랐더라도 이는 다양한 원인으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번 참사 역시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경영총괄책임자 인정과 합의의 제한적 반영

대표이사 측은 “실질적 경영 책임은 아들에게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표이사가 주간보고와 업무 지시를 통해 경영 전반을 지휘해 왔다는 점을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총괄책임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

 

또 피고인들이 일부 유족과 합의한 사실은 감형 사유로 참작됐으나, 재판부는 그 효과를 제한적으로만 반영했다. 재판부는 “다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가벼운 형이 반복되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며 “엄정한 처벌로 일반예방 효과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의 생명은 지위 고하와 무관하게 존엄”

선고 과정에서 재판부는 피해 상황의 참혹함도 언급했다. “피해자의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수습조차 어려웠고, 유족의 정신적 고통이 극심하다”며 “사람의 생명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존엄하고 보호받아야 하며,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될 수 없다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최고 형량 기록… 항소심으로 이어져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무거운 형량으로, 종전 최고형인 징역 2년을 크게 넘어섰다. 다만 이번 선고는 1심으로, 피고인 측은 항소 의사를 밝혀 사건은 항소심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23명의 사망자를 낸 화재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박순관 대표는 판결 선고 이틀 만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반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박중언 총괄본부장을 비롯해, 유죄가 선고된 아리셀 상무 홍모 씨와 파견업체 한신다이아 대표 정모 씨 등 나머지 5명은 현재까지 항소하지 않았다. 검찰 역시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형사사건의 경우 판결에 불복하려면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해야 한다. 따라서 항소하지 않은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이번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검토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사건별 양형기준 마련에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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