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선택이 바뀌어야 현장의 안전도 달라진다 (출처 : ImageFX)
ⓒ리더의 선택이 바뀌어야 현장의 안전도 달라진다 (출처 : ImageFX)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현장에서 ‘오늘만 넘기자’는 말이 나오면 이미 안전은 협상의 대상이 된다. 누구나 안전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리더의 일정표와 회의 순서, 질문 방식과 승인 기준이 바뀌지 않으면 현장은 금세 예전의 리듬으로 돌아간다.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리더의 작은 선택이 어떻게 중대사고 가능성을 바꾸는가 하는 점이다.

 

그 시작은 의사결정의 질문에서 드러난다. 생산, 품질, 비용, 납기와 안전은 한 줄로 나열할 수 없는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늘 순서가 정해진다. ‘오늘 현장에서 보인 중대사고 전조는 무엇이었나, 그 전조가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무엇을 멈추고 어떤 조치를 했나’라면 의제는 그 순간 재배치된다. 안전이 먼저 다뤄지는 순간, 그다음에 나오는 생산과 납기도 같은 틀 안에서 조정된다. 반대로 안전이 맨 끝으로 밀리면 이미 결정된 사안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해진다. 작은 질문 하나가 결국은 의사결정의 질서를 바꾸는 셈이다.

 

리더의 시간표 또한 조직의 관심사를 비추는 거울이다. 보고서를 읽는 세 시간보다 현장에서 보낸 30분이 더 큰 힘을 가진다. 얼마나 자주 현장을 방문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무엇을 묻고 어떻게 듣느냐이다. 단순히 보호구 착용을 확인하는 순찰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설비에서 가장 치명적인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최근 아찔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그때 멈출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묻는다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리더가 답을 요구하기보다 진심으로 들으려 할 때,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그 이야기 속에서 사고의 전조를 끊을 단서가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작업중지권이다. 바람이 세고 시야가 좋지 않거나, 교대 인력이 미숙련자라면 ‘잠깐이면 괜찮다’는 말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 리더는 이런 상황에서 조건이 맞지 않으면 멈추고, 작업중지를 요청한 사람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작업중지권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리더십의 약속이다. 이 원칙이 실제로 지켜진 사례가 한 번만 공유되어도 팀의 공기는 달라진다. 안전을 이유로 멈췄던 결정이 일정 지연으로 이어졌을 때, 리더가 직접 앞에 서서 고객과 상층부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그날 이후 현장의 판단 기준은 달라지게 된다.

 

리더가 작업중지권을 지켜주는 순간, 현장은 안전을 선택한다 (출처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리더가 작업중지권을 지켜주는 순간, 현장은 안전을 선택한다 (출처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와 함께 보상의 방향도 조정되어야 한다. 겉으로는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평가는 생산량과 납기 준수에만 매달리면 사람들은 결국 성과가 전부라는 메시지를 읽어낸다. 이 모순을 풀려면 보상과 인정의 순간을 바꿔야 한다. 납기를 맞춘 팀만 칭찬하는 대신, 위험을 발견해 작업을 중단하고 안전한 대안을 찾아 일정과 품질을 함께 지켜낸 팀을 공개적으로 치하해야 한다. ‘무사고 일수’를 축하하는 대신 ‘전조를 끊어낸 사례’를 축하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안전은 숫자가 아니라 자부심으로 올라선다.

 

회의의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하루 혹은 주간 운영회의의 첫 10분을 SIF 전조 논의에 고정하는 것이다. 보고는 간단히 하되, 결정은 무겁게 다뤄야 한다. 어제와 오늘 어떤 전조가 있었는지, 지금 막아야 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확인하고, 다음 회의에서 이행 여부를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한다. 말과 결정, 실행과 검증이 하나의 고리로 이어질 때, 안전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결코 흩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데이터 관리도 필요하다. 지표가 많다고 안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숫자에 묻혀 길을 잃는다. 리더는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지표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리더의 현장 안전대화 횟수, 전조 식별과 제거율, 변경관리 사전평가율 같은 항목이 그렇다. 그 흐름을 주 단위로 점검하고 늘 설명과 함께 다뤄야 한다. 왜 줄었는가, 왜 늘었는가를 묻지 않는 숫자는 쉽게 장식품이 되는 까닭에, 데이터는 성적표가 아니라 대화를 촉발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중대사고는 한 부서 안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공정 변경은 기술 부서의 언어로, 납기 조정은 영업의 언어로, 작업 허가와 교육은 안전의 언어로 나뉘어 버린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이 언어들을 번역해 같은 그림을 보게 하는 것이다. 설비 변경을 논의할 때 안전이 반드시 테이블 안에 있고, 납기를 논의할 때 기술과 안전이 함께 들어와야 한다. “각자 잘하자”, “안전하게 하세요”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같이 결정하고 같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고 조사 역시 과거를 단죄하는 문서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실패와 중단의 경험을 미래를 바꾸는 학습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누가 틀렸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를 그 선택으로 이끌었는지를 묻는 대화가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리더가 방어가 아닌 호기심으로 앉아 있다면, 다음 신고는 더 빨리 올라오고, 다음 작업중지는 덜 망설여진다. 학습은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의 공기로 퍼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더 자신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말과 글로만 안전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 리더가 현장에서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하고, 바쁜 날에도 작업 중지의 기준을 지키며, 일정 손실을 감수하고 안전한 대안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교육은 이미 절반은 끝난다. 특히 에너지 격리, 밀폐공간, 고소, 중량물 운반처럼 치명적 사고와 직결되는 작업 앞에서 보이는 리더의 태도는 그대로 조직의 표준이 된다.

 

ⓒ리더의 태도는 곧 현장의 안전 기준이 된다 (출처 : 픽사베이)
ⓒ리더의 태도는 곧 현장의 안전 기준이 된다 (출처 : 픽사베이)

결국 리더십의 변화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질문을 바꾸고, 시간을 재배치하며, 안전하지 않은 순간들의 작업 중지를 지지하고, 보상과 회의 구조를 조정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과 부서 간 경계를 바꾸며, 학습의 공기를 새롭게 하는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다. 이 선택들이 일관되게 이어질 때, 안전은 “해야 하는 일”에서 “우리다운 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중대사고의 확률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다음 회에서는 전조를 읽는 기술로 넘어간다. 즉 잠재적 중대사고(PSIF, Potential Serious Injury & Fatality)와 전조(Precursor)를 어떻게 팀의 언어로 만들고, 무엇부터 끊을지 우선순위를 실제 현장의 흐름에 맞춰 풀어보겠다.

 

이종현 대표 ⓒ세이프티온솔루션
이종현 대표 ⓒ세이프티온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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