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지난 7월 6일, 인천 계양구의 한 맨홀에서 발생한 중대사고로 50대 작업자 1명이 질식으로 사망하고, 구조에 나선 동료 1명도 의식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 사고는 독성가스 흡입, 단독 진입, 다단계 하청 구조 등 반복되어 온 맨홀 사고의 전형적 구조를 모두 드러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 고에서는 그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각 주체가 실행 가능한 대응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다시 발생한 맨홀 내부 질식 사고는 우리 사회 산업안전 시스템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다. 오·폐수 관로 점검 작업 중 한 명이 맨홀에 진입한 직후 의식을 잃었고, 동료마저 희생됐다. 이는 법과 지침이 있음에도 되풀이되는 전형적인 '밀폐공간 질식사고'다.
왜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는가.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제는 그 구조적 원인과 예방 대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계양구 맨홀 사고의 구조적 문제
인천 계양구 맨홀 사고는 기본수칙 미준수, 위험 인식 부족, 장비 미사용, 감독 부실이 중첩된 사례다. 실현 가능한 대책 중심의 현장 대응체계 강화 없이는 유사 사고를 막기 어렵다.
첫째, 절차 미준수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밀폐공간 작업은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 측정, 환기, 감시자 배치 등 복수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늘 해오던 일"이라는 안일한 인식, 공사기한 압박, 인력 부족 등으로 절차가 생략되고, 단독작업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둘째, 다단계 하청 구조는 관리 사각을 만든다. 맨홀 작업 대부분이 하청 또는 재하청 구조로 진행되면서 안전관리 책임이 분산되고, 실질적인 통제는 이뤄지지 않는다. 원청은 형식적인 서류로 책임을 피하고, 하청은 비용과 인력 부족으로 안전조치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낸다.
셋째, 교육은 형식적이고, 안전관리비는 왜곡된다. 현장 교육은 위험을 체감하기 어려운 형식적 내용에 그치며, 안전관리비도 실제 안전 조치보다는 행정서류 작성 등 본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전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
정부는 제도 마련에 그치지 않고, 실행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률은 이미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그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고위험 작업에는 디지털 기반의 사전통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며, 모든 밀폐공간 진입 시 QR코드를 기반으로 한 체크리스트 점검과 관리자 승인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승인 없이 진입이 불가능하도록 자동 잠금(Lockout) 기능을 적용하고, 작업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기록하는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감독기관 또한 사고 이후의 조사에 머물지 말고, 사전 예방 중심의 현장 점검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지자체는 공공 발주 공사의 특성상 더 무거운 책임을 지닌다. 하수도, 전기, 통신 등 지자체 주도의 맨홀 작업은 계약 단계부터 안전계획서의 실효성과 예산 배분의 타당성을 철저히 검토해야 하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조항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계약 위반 시 발주 자격을 박탈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적용하고, 불시 현장 점검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안전 수칙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감시자 배치와 비상 대응 장비 구비 여부를 실질적으로 점검하고, 표준 안전 매뉴얼의 적용과 점검 기록의 보관 및 공개까지 포함하는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사업주 역시 현장에서 실질적인 안전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감시자 제도를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교육과 권한을 부여하고, 현장의 반장이나 팀장을 1차 안전책임자로 지정해 절차 위반 시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작업 전 절차 누락이 있을 경우 작업 자체가 시작되지 않도록 하는 ‘STOP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알림 시스템과 연계해 위험요소를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산소측정기, 호흡보호구, 비상 통신기기 등 필수 장비를 지급하고,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전형 안전 훈련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근로자에게는 무엇보다 위험 감지와 작업중지권의 실질적인 보장이 중요하다. 작업자는 맨홀에 진입하기 전 산소 및 가스 농도를 확인하고, 이상 징후가 있으면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보고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위축 없이 실행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을 법적·제도적으로 보호하고, 누구나 위험을 감지했을 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현장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더불어 근로자 스스로 사고 재현형 훈련에 참여해 안전 점검, 동료 감시, 개선점 제안 등 자율적인 안전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맨홀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다. 그 안은 산소가 부족하고 유해가스가 잔류하는, 구조조차 어려운 폐쇄된 공간이다. 매일같이 노동자들이 이 공간에 들어가지만,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왜 또 맨홀이냐"는 질문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답은 이미 나와 있고, 문제는 실천하지 않는 데 있다. 지금 바꿔야 할 것은 법이 아니라 현장 시스템이다. 그 변화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이것이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의 시작이다.
인천 계양구 사고는 유독가스, 단독 진입, 다단계 하청 구조, 보여주기식 안전 관행이 결합되어 생명을 앗아간 전형적 사례다. 대통령 지시와 정부의 긴급 점검이 이어졌지만, 실질적인 현장 시스템이 없으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체크리스트 한 줄, QR 승인, 비상호흡기, 작업중지권 행사 같은 구체적인 실천이 모여야 맨홀 사고를 끊을 수 있다. 정부, 지자체, 사업주, 근로자가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할 때 비로소 맨홀 사고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사람이 죽지 않는 현장 시스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짜 ‘안전사회’의 첫걸음이다.
※ 기고자: 조성웅 교수(오산대학교 안전보건관리과 겸임교수)
現 주식회사 블루그린 안전환경 담당 이사
前 기아자동차 안전환경관리부장
국가화재안전 진단 수행 (방재청)
육군 군사시설 안전진단 수행 (국방부 육군본부)
국가기술자격 출제 및 검토위원 (한국산업인력공단)
VR 안전교육 교재 평가 심사위원/위원장 (안전보건공단)
가스안전관리 학습모듈 검토위원 (한국에너지기술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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