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중심의 사고(思考)를 해야

사고(事故)를 예방할수 있다.

요즘 오수관로 사업 설계도서를 검토하거나 현장 점검을 다니다 보면 아래 그림의 “A-Type” 형식의 맨홀펌프장을 많이 접하게 된다.

사실, “A-Type” 형식의 맨홀 펌프장은 설계자 입장에서는 설계하기 쉽고, 시공자 입장에서는 시공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왜냐하면, 기성 제품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설계자는 구조 계산을 할 필요도 없고, 도면을 직접 그릴 필요가 없다. 시공자 또한 현장에서 콘크리를 타설해서 구조물을 만들 필요가 없으니 선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떨까? 운영자도 설계자나 시공자처럼 이런 형식의 맨홀펌프장을 좋아할까? 좋아하기는 커녕 그들 입장에서는 아주 위험한 형식이다. 

그 이유를 “A-Type” 그림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A-Type” 맨홀펌프장의 경우 내부 직경은 1.9m, 내측 깊이는 9.2m로 구성되어 있고, 지면으로부터 지하 2.0m 지점에 중간 발판이 설치되어 있다. 중간 발판은 내부 단면적의 절반만 설치되어 있다. 유입펌프장 내부 아래쪽에는 수중펌프가 설치되어 있고, 중간 발판 위쪽 공간에는 배관과 제수밸브 및 역지밸브가 설치되어 있다.

과연 운영자가 이 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 운영관리 측면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펌프 교체시에 펌프를 바깥으로 인양하기 위해 중간 발판을 모든 공간에 설치하지 않고 일부는 비워둔 상태이다. 그리고 펌프장 내 수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할 경우를 대비해 완전히 막힌 구조가 아닌, 구멍이 있는 중간 발판을 설치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된다. 유입된 하수에서 발생되는 부식성 또는 유해성 가스가 중간 발판의 구멍이나 발판이 설치되지 않은 공간을 통해 상부로 올라가게 된다. 중간 발판 위쪽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 배관과 제수밸브 및 역지밸브 등은 부식성 가스에 노출되어 부식에 취약하다. 그럼, 제수밸브나 역지밸브가 고장이 나서 교체를 해야 할 경우는 어떻게 될까?

운영자는 상부의 맨홀 뚜껑을 열고 벽체에 설치되어 있는 사다리를 잡고 내부로 내려가, 일부만 설치되어 있는 좁은 중간 발판에 발을 디디고 서서 작업을 해야 된다. 

이 시설에서 작업자는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가스에 의한 질식이나 추락 등의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혹시, 작업자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누구의 책임일까? 안전조치,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작업을 진행한 작업자를 비롯한 운영 조직만의 잘못일까? 

내가 볼땐 처음부터 위험한 구조로 시설을 설계한 것이다. 그래서, 설계VE나 기술심의 단계에서 이런 형식의 맨홀펌프장 설계도면을 접하면, 나는 “B-Type”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한다. 실제 여러 사업에서 설계를 변경 시키기도 했다. 물론, 우리 회사에서 설계하는 모든 맨홀펌프장은 예전부터 “B-Type”으로 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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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ype”의 경우 유입펌프장의 수조와 밸브실을 공간적으로 분리해서, 앞에서 제기된 위험한 요소들이 발생되지 않는다. 부식성 가스는 밸브실로 유입되지 않기 때문에 밸브나 배관의 부식을 방지할 수 있고, 작업자는 수조가 아닌 밸브실에 들어가 보수 작업을 하면 되기 때문에 추락사고나 질식사고의 위험 또한 해소된다.

수중펌프는 지상에서 인양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조에는 사람이 직접 들어갈 일이 거의 없다. 

이렇게 처음 계획단계부터 작업자의 안전을 고려해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구조로 설계하고 시공하면 된다. 설계 단계에서는 설계자의 저항이 있어도 논리적으로 잘만 설득하면 운영자 입장에서 조금 더 안전한 구조로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시공 단계에서는 변경이 쉽지 않다. 맨홀펌프장 자재부터 흙막이 가시설, 내부 배관까지 바꿔야 할 내용이 많다 보니 설득이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관계자들이 많아 변경에 따른 말썽이 생긴다. 그래서 시공 단계에서는 불합리한 것을 알지만, 어쩔수 없이 그냥 넘어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설계가 중요하고, 설계자의 마인드가 중요한 것이다. 설계하는 내 입장에서 쉽고 편리한 것을 떠나 이 시설들의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운영하고 관리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즉, 사용자 중심의 사고를 해야 한다. 

요즘 펌프장, 정화조 및 맨홀의 청소작업을 하던 작업자의 사망사고를 많이 접한다. 대부분이 질식사고나 추락사고이다. 물론 작업자들이 안전 관련 기준을 준수하고, 안전 장비를 갖추고 작업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설계단계에서부터 작업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내가 만든 시설이 사고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구조는 아닌지, 뼈저리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 설계자들의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 

예전에 “A-Type” 형식의 맨홀펌프장을 설계한 설계자에게 작업자의 질식 및 추락사고의 위험성을 지적하니, “밸브 교체 작업시 산소통을 착용하면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어느 엔지니어의 말이 생각난다.

 

이렇게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생각이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다. 항상 우리는 “사용자 중심의 ‘사고(思考)’를 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고(事故)’가 날 수 있다”라고 명심해야 한다.

이종탁의 생각정원: 
http://blog.naver.com/avt1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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