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그룹 회장이 반복되는 건물붕괴참사로 결국 사임했다.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22분경 전남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구역에서 철거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하여 9명이 숨졌고, 2022년1월11일 오후 3시 47분경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공사중이던 아파트가 붕괴하여 6명이 실종되는 반복된 사고의 결과였다.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을 열흘 앞두고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 철강, 중공업 관련 기업총수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만약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에 비 사고가 발생하였더라면 그룹 회장을 비롯하여 대표이사까지 모두 처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1차 적인 책임은 실제 공사를 수주해 진행한 하도급 업체에게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원청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건설로 시작해 국민의 신뢰로 성장했으나 최근 광주에서 연이어 발생한 2건의 사고로 그동안 쌓아왔던 기업의 신뢰와 명성이 땅에 떨어졌다. 기업총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저는 1999년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취임해 23년간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 국민의 신뢰를 지키고자 했지만 이번 사고로 그러한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금 현대산업개발은 수주 사업 현장에서는 계약 해지 통보가 이어지고 있고, 아이파크 브랜드 퇴출 움직임까지 보이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 보면 11일 사고의 원인은 무리한 공사일정의 강행으로 인한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겨울에는 콘크리트가 건조되는 속도가 매우 느려 경화반응이 지연되고, 동결의 우려가 높다. 따라서 동절기에 콘크리트 타설 시에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콘크리트의 적정온도를 유지해 주면서 경화시켜야 한다.

콘크리트 초기 압축강도인 5Mpa이상에 도달할 때까지 5~20도씨의 온도로 양생을 해야하는데, 보도된 바에 의하면 타설한 콘크리트가 마르기도 전에 층을 계속 쌓아 올렸다는 증거가 나왔다고 한다. 그 결과 14일이 필요한 작업을 6일만에 끝냈다.

 

건설회사에 있어 공기단축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맡은 업체는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을 다시 A라는 업체 맡겼고, A 업체는 다시 이 작업에 전문성이 없는 B 업체에 편법으로 일을 다시 넘겼다는 정황도 나왔다. 이 때문에 공사비가 더 저렴한 다른 업체에 일을 맡겨서 돈을 아끼려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질적인 관행은 2021년 6월 9일에 발생한 붕괴사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하인리히의 법칙에서 나오는 1:29:300의 전조도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주민들은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파편들이 떨어진다며 민원을 냈었는데, 해당구청을 비롯하여 현장에서 안전을 관리하는 책임자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정부는 사고 원인을 더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 유사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국 건설 현장 3만 곳을 긴급점검하겠다고 했지만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쉽게 고쳐질지 알 수 없다.

2019년 제 37회 국제 안전보건전시회를 참석한 적이 있다. 듣고 싶은 세션이 많았지만 제한된 시간밖에 없어 하나만 골라야 했는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싱가포르산업안전보건에서 각각 2명이 발표하는 국제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싱가포르는 산업재해에 있어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고 위험성평가, 안전조정자(Safety coordinator), 설계 안전성검토(DFS, Design For Safety) 등의 제도를 우리보다 10년이나 앞서 시행한 산업안전보건 선진국이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수년째 산재율이 감소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동안 싱가포르는 산재 사망률 75%, 재해율18%,업무상질병율 50%감소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내었다. 당시 발표한 싱가포르 Adeline 원장과 Silas국장이 그 답을 주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함축적이었다. 그 비결이 뭘까? 무엇이 그렇게 드라마틱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을까? Silas국장은 자신이 경험한 한 일화를 이야기했다.

한국의 유명한 건설사가 싱가포르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사망재해가 그치지 않고 발생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산업안전보건국은 이에 대해 프로젝트 총괄책임자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보건국은 관계자들을 사무실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급기야는 한국에 있던 글로벌 CEO까지 소환되었다. 긴급히 싱가포르로 날아온 기업총수는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국장과 독대를 요청했다. 이들이 미팅을 끝나자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망재해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일까? 국장은 단 한마디만 했다고 한다.

"지금 이 상태 그대로라면 앞으로 당신 회사는 싱가포르에서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다"

싱가포르는 벌금의 나라이다. 산재관리에 소홀한 사업장에 대한 처벌규정이 매우 강력하고 이를 반복해서 위반할 경우 기업을 파산시킬 정도로 벌금을 100만 달러 이상 부과한다. 그렇다고 정부당국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고위험기반군을 정해 집중관리한다. 인력이 부족할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보조적집행기관을 활용하여 일부를 민간에 위탁하고 있으나 고위험군은 직접관리하여 심각도에 따라 처벌을 차등화하고 있다.

한가지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해 보자. 미국의 알루니늄 제련회사 중에 알코아라는 회사가 있다. 1987년 알코아는 회사의 경영상황이 어려워 부도 직전에 내몰렸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정부 예산관리처에서 일했던 폴 오닐이 기업의 신임CEO로 임명되었다.

폴 오닐은 맨하탄 호화호텔 연회장에서 알코아의 이사진들 앞에서 취임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의 주요 내용은 매출증대, 이익, 세금에 대해서 한마디도 없이 알코아를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정신 나간 히피를 최고경영자로 뽑았다고 했고, 고객들에게 알코아 주식을 팔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폴오닐이 물러난 2000년 알코아의 순이익은 취임전보다 5배 상승, 시가총액은 30조원까지 상승했고, 폴오닐이 취임하던날 100만달러를 투자했다면 배당금만 100만달러를 거두어 들였다.

폴오닐이 취임하기전 알코아의 모든 공장에서는 일주일마다 한 건 이상의 사고가 발생하였으나, 오닐의 안전계획이 시행된 후로는 사고로 인해 근로일수 상실이 수년동안 한건도 없이 운영되는 공장이 적지 않았다. 훗날 폴 오닐은 말했다.

알코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직원들에게 명령할수는 없었죠. 명령을 받는다고 뇌가 작동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한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나쁜 습관 하나를 고칠 수 있다면 그에 따른 변화가 회사 전체에 파급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세계최고의 알루미늄 제조회사가 된 알코아는 안전사고가 날 것 같은 애매한 상황이 생기면 일단 작업 중지부터 내린다. 이러한 작업 중지명령은 안전관리자뿐만 아니라 직원 누구나 내릴 수가 있다. 이 때문에 한 해동안 평균 462회의 공정이 정지된다. 하지만 이를 두고 경영진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규정이 회사의 경영의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한 번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공장 전체를 셧다운 시켜야 하고 그로 인해 간접적인 피해 또한 눈덩이처럼 커지기 마련이다.

 

알코아의 또 다른 특징은 한해 동안의 아차사고(Near Miss)보고가 6,600건에 이른다는 것이다. 국내의 많은 기업들도 아차사고 제도를 도입해 이를 시행하고 있지만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경우가 많아 실제로 산재발생감소에 기여하지 못하는 경향이 높다. 알코의 기업 핵심가치는 안전환경, 덕성, 존중, 혁신, 전문성이다. 안전문화로 유명한 듀퐁의 핵심가치 또한 안전보건, 인간존중, 윤리경영, 환경보호이다.

이 둘 기업의 공통점은 안전을 기업의 가장 우선시 되는 핵심가치로 삼은 세계 1류기업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기업중 기업의 핵심가치에서 안전이 언급되는 곳은 없다.

최근 모든 기업의 화두는 ESG이다. ESG는 단순히 기업의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착한 기업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모든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의 추구이다. 그러한 기업들이 이윤추구에는 등한시 하고 사회적 책임까지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의 추구와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업의 주주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들에게는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는다. 과거에 기업들은 재무적인 사항에 대해서만 주주들을 만족시켜주면 되었지만 기업의 규모가 커져갈수록 이제는 주주을 비롯하여 모든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요구수준이 높아져가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문 기업들은 지속적인 경영을 할수 없다.

옛말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 라는 속담이 있지만 지금은 공든 탑도 한 순간의 실수로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기업들은 안전에 공을 들여야 한다.

불과 50년전만 하더라도 전세계의 최대 빈국이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선진국이란 경제력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제도, 문화까지 모두 선진국이어야 진정 선진국이라고 말할수 있다. 세계의 보기드문 성공으로 몸집만 커진 대한민국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문화까지도 성숙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 말할 수 있다.

 

중처법이 시행되는 2022년은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분기점이 되는 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OECD국가 중 산재율 1위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반복되는 건물붕괴 참사의 문제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문제이다. 그것을 책임져야 할 주체들은 기업과 기업총수만이 아니라 국민들 전체가 되어야 한다. 한 사회의 안전문화 수준의 업그레이드는 전 국민의 의식수준의 향상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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