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정 원칙 확대·AI 시스템 도입·전담팀 신설로 ‘느림보 산재’ 개선

ⓒ이미지-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생성 책임자: 김희경),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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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고용노동부가 업무상 질병 산재 판정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대적인 제도 개선에 나섰다. 정부는 평균 228일이 걸리던 질병성 산재 처리 기간을 2027년까지 120일로 단축하고, 신속한 보상을 통해 노동자의 고통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수년씩 이어진 판정 지연

지하 탄광에서 6년간 근무한 한 노동자는 폐암 진단 후 산재를 신청했지만 판정까지 974일을 기다려야 했다. 반도체 공정에서 벤젠에 노출된 노동자는 백혈병 산재 판정을 받기까지 무려 1,503일이 걸렸다. 이처럼 일부 노동자는 판정을 받기 전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사고성 산재는 평균 17일이면 처리되지만, 질병성 산재는 특별진찰과 역학조사 등 복잡한 절차 탓에 평균 228일, 최장 4년 이상 소요된다. 전체 산재 신청 가운데 절반 이상(51%)을 차지하는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에도 상당수가 장기간 심의에 묶여왔다.

 

 

‘추정의 원칙’과 AI로 절차 단축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속도’와 ‘전문성’이다. 우선 업무 관련성이 명확한 질병은 위원회 심의까지 생략하고 재해조사만으로 판정을 내리는 ‘추정의 원칙’을 확대 적용한다. 10년 이상 탄광 근무자의 폐암과 같이 인과관계가 명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앞으로는 철근공의 허리디스크, 비계공의 어깨 회전근개 파열 등 선례가 축적된 직종과 질환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진다.

 

또한 근골격계 질환은 지정된 32개 직종(철근공·조리원 등)에 한해 특별진찰 없이 판정위원회 심의로 처리하며, 연구가 충분히 축적된 광부 폐암이나 반도체 백혈병은 역학조사를 생략한다.

 

AI 기반 산재 처리 시스템도 도입된다. 산재 처리 데이터를 분석해 심사를 보조하고, 근로복지공단 64개 지사에는 ‘업무상 질병 전담팀’이 신설된다. 여기에 산재보험 전문가(CIE) 양성 교육을 의무화해 재해조사 인력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국선대리인·장기 미처리 사건 해소

노동자의 입증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6년부터는 ‘국선대리인 제도’가 도입된다. 산재 신청부터 소송까지 무료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소송 비용 부담 때문에 권리를 포기하는 사례를 막겠다는 취지다. 또한 올해 연말까지는 ‘집중 처리 기간’을 운영해 현재 계류 중인 장기 미처리 사건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할 방침이다.

 

 

속도와 합리성,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을까

이번 대책은 단순히 행정 절차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산재 판정이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판정 기간 단축은 노동자에게는 신속한 치료와 보상을 가능하게 하고, 기업에는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반복적으로 소송에서 패소하는 질병의 인정 기준을 재정비하고, AI와 국선대리인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은 속도를 높이면서도 합리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현장의 안전문화 정착, 영세 사업장 지원, 신기술의 현장 적용 등 구조적인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제도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면 ‘사후 보상’ 중심의 기존 체계를 넘어, 기업의 안전 경영과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판정 절차 개선을 넘어, 기업에는 ‘사후 보상’ 중심에서 ‘사전 예방’ 중심의 안전 경영으로 전환을 요구하는 의미를 갖는다. AI 기반 시스템은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산업 현장을 ‘데이터 기반 안전관리’ 시대로 이끄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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