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도 일해야 하는 시대, 늘어나는 산업재해 위험신호
60세 이상 근로자 안전사고 급증세... 왜?
인간공학적 작업환경과 조직문화 개선으로 해결 가능
이는 고령근로자만이 아닌, 모든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투자

ⓒ이미지-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생성 책임자: 김희경), Gammas
ⓒ이미지-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생성 책임자: 김희경), Gammas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장마가 며칠째 이어지는 작업장, 바닥은 축축하고 미끄럽다. 올해 65세가 된 정 씨는 몇 주 전 발판에서 미끄러진 뒤로는 마음 한켠이 늘 무겁다. “그날 다친 건 아니지만, 다시 넘어진다면 어쩌나 걱정돼요. 그런데 ‘일 못 한다’는 소리 들을까 봐 아무에게도 말을 안했어요.”

 

 조명이 흐릿한 공장 한 구석, 새로 설치된 터치스크린 앞에서 올해 68세된 김 씨는 손끝이 떨린다. 기계 조작법이 바뀐 지 오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요즘 기계는 조작하기 힘들어요. 옛날처럼 단순하면 좋겠는데, 헷갈려서 속상해요.”

 

 

늘어나는 고령근로자, 안전은 아직?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23일 기준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였다. 2025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약 1,0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 고령인구(65세 이상) 및 비중 추이 / 자료 출처 - 통계청
ⓒ 고령인구(65세 이상) 및 비중 추이 / 자료 출처 - 통계청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일하는 고령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는 362만 명(38.3%)으로 2016년 이후 상승 추세에 있다. 또한, 교육 수준과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고령층은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강해졌고 재취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고령근로자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고령자(65세 이상)의 경제활동 및 비중 추이 / 자료 출처 - 통계청
ⓒ 고령자(65세 이상)의 경제활동 및 비중 추이 / 자료 출처 - 통계청

 

ⓒ 고령자(65세 이상) 장래 취업 원함 비율(좌) 및 근로자 평균 연령 추이(우) / 자료 출처 - 통계청, 고용노동부
ⓒ 고령자(65세 이상) 장래 취업 원함 비율(좌) 및 근로자 평균 연령 추이(우) / 자료 출처 - 통계청, 고용노동부

 그러나 문제는, 일하려는 의지는 높아졌지만, 정작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를 보여주듯, 고령근로자의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대비 2024년 고령 근로자의 산업재해는 10.4% 증가하였다. 이는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 현장이 고령자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근로자의 산업재해 발생 건수가 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신체적·심리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고령근로자(60세 이상)의 산업재해 및 비중 추이 / 자료 출처 - 고용노동부
ⓒ 고령근로자(60세 이상)의 산업재해 및 비중 추이 / 자료 출처 - 고용노동부

 

노화로 인한 고령근로자의 특성

 작업생리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체는 40세 전/후하여 급격한 노화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특히, 시력, 순발력 등 신체적 및 인지적 능력이 저하되어 자연스레 작업수행능력이 떨어진다. 세부적으로, 청년층의 기능 수준을 100으로 했을 경우 고령층의 기능을 표현한 차트는 다음과 같다.

 

 

​ⓒ 고령근로자를 위한 인간공학적 작업환경 개선 요소 / 자료 출처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필자 재구성ⓒ 청년층 대비 고령층의 작업능력 / 자료 출처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 고령근로자를 위한 인간공학적 작업환경 개선 요소 / 자료 출처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필자 재구성ⓒ 청년층 대비 고령층의 작업능력 / 자료 출처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이처럼 고령근로자는 ‘다르게 일해야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정부는 고령근로자를 위한 맞춤형 산재 예방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고령자에게 흔한 넘어짐, 떨어짐, 부딪침을 방지하기 위한 ‘4대 실천 운동(정리/정돈/청소/청결)’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작업환경 개선과 고령 친화적인 조직문화 조성 등 인간공학적 개선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인간공학적 개선'이란 인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도구, 기계, 시스템, 환경 등을 설계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고령근로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설비, 시스템뿐만 아니라 조직문화 등 작업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다.

 

 

고령근로자를 위한 인간공학적 작업환경

ⓒ 고령근로자를 위한 인간공학적 작업환경 개선 요소 / 자료 출처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필자 재구성
ⓒ 고령근로자를 위한 인간공학적 작업환경 개선 요소 / 자료 출처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필자 재구성

 고령근로자에 적합한 작업환경은 어떤 설계가 필요할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16년에 15개 직종을 분석한 ‘고령근로자 친화적 작업환경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기반한 공통적인 인간공학적 작업환경 개선 요소로 넘어짐이나 떨어짐 방지를 위한 조치, 작업 강조를 조절하는 조치, 작업 설계 개선을 위한 조치, 시간 유연성 확보를 위한 조치, 인지 부하를 고려한 작업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작업환경 개선은 단지 고령근로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를 줄여 휴먼 에러 발생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조직문화가 안전의 완성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한 기반은 설비 개선이지만, 이를 유지하고 완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직문화 개선’ 이다. 설비가 잘 갖춰져 있어도, 고령근로자가 불편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면 안전은 보장될 수 없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보고서 내 면접조사에 따르면, 고령근로자는 실수나 불편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받을까 봐 참고 일한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문화에서 고령근로자는 늘 '불안한 침묵' 속에서 일하게 된다. 따라서, 조직문화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

 

ⓒ 고령근로자를 위한 조직문화 개선 방안 / 자료 출처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필자 재구성
ⓒ 고령근로자를 위한 조직문화 개선 방안 / 자료 출처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필자 재구성

 이러한 조직문화 개선 또한 단지 고령근로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말할 수 있는 문화’는 첫 시작이고, 경험을 존중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조직이 비로소 안전한 조직이 된다. 고령근로자를 존중하는 문화는 곧 모든 세대가 함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이다.

 

 실제로, 이러한 조직문화와 작업환경 개선 방향은 현장 실무에서도 점차 반영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23년 ‘식품업종 고령인력 고용가이드’를 발표하였다. 이 가이드는 작업환경, 조직문화, 인사·직무관리까지 포괄적으로 다룬 실용적인 안내서로, 현장 중심의 예시와 실천 방안을 통해 조직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고령근로자 중심 개선, 오늘의 안전이자 모두를 위한 투자

 고령근로자를 위한 작업환경 개선은 비용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가능성과 생산성을 위한 선제적 투자이며, 고령근로자를 ‘부채성 인력’이 아닌 ‘경험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결국 모든 근로자를 위한 안전 기반이자, 함께 성장하는 조직을 위한 투자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은 여전히 고령근로자를 ‘위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2024년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근로자 고용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재사고 위험’(27.1%)이었다. 반면, ‘업무능력 저하’는 단 0.1%에 불과했다. 이들은 일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는 고용 장려금이나 인센티브 등 '정책적 유인책' 만을 내세우고 있다. 정작 고령자가 실제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과 조직문화 개선은 여전히 뒷전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인구 고령화로 인해 점차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고령근로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젊은 세대와 협력하며 일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성장률 회복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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