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사람이 함께 있을 이유 없었다",, 일부 전문가들 의문 제기
- 배기가스 배출장치·산소감지기 등 안전설비 작동여부 조사 중
- 자동차 업계 첫 실험실 질식사고... 안전관리 기준 점검 필요
- 기계 고장은 확률의 문제, 부주의는 결과일 뿐... 사고분석과정에서 인간공학적 접근 필요 강조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첨단 안전장치를 갖췄다고 여겨졌던 자동차 성능 시험장에서 연구원 3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는 자동차 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울산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3시경 현대차 울산공장 전동화품질사업부 복합환경 챔버에서 현대차 남양연구소 소속 책임연구원 40대 남성 1명과 30대 남성 1명, 협력업체 소속 연구원 1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들이 같은 날 낮 12시 50분경부터 실험실에서 주행 시험을 시작했고, 테스트를 마쳤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아 확인한 결과 사고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 쳄버는 차량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밀폐된 공간이다. 이곳은 온도를 영상 40도에서 영하 30도까지 조절하고 습도, 진동, 고도 등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차량의 성능을 시험하는 시설이다. 사고 당시 GV80의 주행 테스트와 공회전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쳄버 내부에는 첨단 센서가 자동차 배출가스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을 감지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배기가스가 외부로 빠져나가야 하지만 문제가 생겨 가스 농도가 일정 수치를 넘어가면 작업자들에게 경고음이 울리고 강제 배출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돼 있다.
현재 경찰과 과학수사기관은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합동 조사를 진행 중이다. 20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6시간 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관계자 40여명이 참여한 합동 감식이 실시됐다. 경찰 관계자는 "공간 내부 환경을 사고 당시 진행된 차량 성능 테스트 상황과 유사하게 재구성해 감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경찰 의뢰에 따라 사망자들에 대한 부검을 실시했으며,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사망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부검 결과를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상시근로자가 5인 이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직후 현장에 근로감독관을 파견해 작업을 중지시켰으며,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동석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겸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는 담화문을 통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대표이사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담함과 비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며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금번 사고를 계기로 회사는 현장 안전 확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관계기관의 현장 조사와 원인 규명 과정에 모든 협조를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다양한 기후 조건과 주행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해 차량 성능과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복합 환경 쳄버는 밀폐된 공간과 유해 가스 발생 등으로 인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다"며 "노동 환경의 개선과 책임 소재 규명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이례적인 상황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세 사람이 함께 쳄버에서 작업하는 일은 거의 없다. 페달도 눌러놓으면 되고 엔진 과열 등의 상황까지 감안해 작업자는 밖에서 방폭 기능이 있는 창문을 통해 관찰할 수 있다"며, "배출가스 연결이나 상태부터 점검하는데, 이 구조와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 사고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쳄버는 특별히 위험한 공간은 아니다. 그래서 모든 업체에서 센서를 설치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안전을 위한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는 것까지 필수는 아니라고 전했다. 다만 쳄버에 연구원 3명이 함께 있었던 점, 쳄버 내부가 모니터링되었는지 여부 등은 짚어볼 사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반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시설 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나온다.
한양대 김정룡 명예교수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기계의 고장은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낮은 확률의 고장일지라도, 이를 대비하지 않은 안전시설 관리 계획과 실행과정을 살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작업자들이 심리적 부주의 행위로 가지 않도록 매번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엔진이 켜지고 일산화탄소가 발생되는 동안은 실내 조명색이 바뀌도록 하는 등 작업자가 위험 가능성을 즉각 인지할 수 있는 분명한 신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한 "부주의는 작업자든 안전시설관리자든 잘못된 사전 행위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라며 사고분석 과정에서 인간공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대차는 사고 현장 내 안전장치 유무 및 작동 여부 등에 대해서는 현재 '확인 중'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사고는 평소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첨단 시험시설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향후 자동차 업계의 시험장 안전관리 기준과 매뉴얼이 전면 재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