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하천에 유지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취수펌프장과 압송관로를 신설하는 업무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해당 취수펌프장은 기존 빗물펌프장 부지내의 여유 공간을 활용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해당 빗물펌프장 부지에는 유입되는 빗물의 배수를 위한 유수지와 펌프장 외에도 양수장이 설치되어 있다. 양수장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것이다. 취수펌프장 설치 위치는 양수장 구조물 옆에 계획되었다. 당시 빗물펌프장 부지가 하천에 인접해 있어 취수펌프장 구조물 굴착공법은 차수공법인 Sheet-Pile로 계획되었다.
필자는 본 사업의 설계VE 팀리더로 참여했는데, 오리엔테이션 미팅 후 현장답사를 가보니 실시설계 내용대로 공사를 추진하기에는 현장 여건이 좋지 않아 보였다.
취수펌프장 설치 위치가 양수장 구조물과 인접해 있고, 활용 할 수 있는 부지가 너무 협소했다. Sheet-Pile 설치, 굴착과 사토 작업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공사로 인해 양수장 구조물의 피해도 초래될 것으로 보였다. 한마디로, 취수펌프장 신설에 있어서 양수장 구조물은 큰 걸림돌이었다.
처음에는 양수장 구조물을 피해서 취수펌프장을 설치할 방법을 고민했다. 설치 지점이나 취수펌프장 구조물의 크기와 배치를 조정하는 방안을 고민하며 현장을 둘러 보았다. 그 과정에서 '양수장의 기능과 새로 신설하려는 취수펌프장의 기능이 동일하다. 두 시설 모두 물을 운반한다라는 기능을 한다. 그럼, 취수펌프장의 기능을 양수장을 활용해서 확보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이후 다른 VE팀원들과 협의를 한 후 설계자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이러한 의견에 설계자는 양수장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시설이라 취수펌프장으로 활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더인 나와 VE팀의 생각은 달랐다. 예전의 농지가 지금은 도심지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양수장의 활용성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양수장 관리 부서를 통해 양수장 운영 상황을 확인했다. 확인한 결과, 1년에 1~2달 정도 상류 지역에 있는 저수지에 용수를 공급하는 정도로만 운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양수장 가동율이 낮기 때문에 “하천유지용수 공급을 병행할 수 있다”라는 답변을 얻었다.
이러한 협의 결과를 토대로 '유지용수 공급을 위한 취수펌프장을 신설하지 않고 기존 양수장을 활용하자'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양수장 구조물을 그대로 활용하는 대신 노후된 펌프를 비롯한 기계, 전기설비는 모두 교체하는 것으로 제안했다. 양수장의 펌프를 활용해서 하천유지용수를 공급하고, 필요시에 저수지의 용수 공급을 병행할 수 있도록 했다. 당연히, 사업부서에서는 VE팀의 제안을 채택했다.
제한된 부지안에서 시공성이 불량한 취수펌프장 구조물 공사를 하지 않고도 하천에 유지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사 범위가 기존 양수장의 기계 및 전기 설비 교체로 대폭 축소되어 시공성 및 유지관리성 향상, 공기 단축이라는 효과도 얻었다. 사업비는 15억원 정도 절감되었으며, 무엇보다 양수장이라는 자원을 활용하여 이중투자를 방지함으로써 행정의 신뢰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사례는 창의적문제 해결이론(TRIZ)의 40가지 발명원리 중 '22번 전화 위복 (Convert Harmful to Useful, 해로운 인자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에 해당된다. 취수펌프장을 신설하는데 걸림돌이었던 양수장을 활용해서 하천에 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또한, 취수펌프장 구조물 공사를 시행하지 않고도 필요한 기능을 얻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해결책(Ideal Final Result)라고 할 수 있다.
해당 VE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변 자원(Resource) 활용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우리는 외부에서 자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빗물펌프장 부지안에 있는 양수장을 활용한 것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활용 가능한 자원을 먼저 탐색해야 한다.
만약, 양수장이라는 시설물로 접근했으면 활용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기능중심적(Function-Oriented)'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자원을 탐색할 때는 기능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기능지향탐색(FOS, Function-Oriented Search)의 개념을 활용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해당 현장은 필자가 사업의 건설사업관리용역에 기술지원기술인으로 참여하였으며, VE팀의 제안 내용대로 공사가 완료되어 현재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종탁의 생각정원: http://blog.naver.com/avt1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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