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의 조삼모사(朝三暮四)는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따지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 현재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더 현명한 선택임이 틀림없다.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며, 현재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는 현상을 현재편향(Present Bias)이라 하고, 하기 싫은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을 지연행동(procrastination)이라 한다.
독일의 루르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일을 미루기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편도체의 크기가 크다. 인간의 뇌는 뇌간, 구피질, 신피질의 순으로 발달해 왔다. 뇌간은 생명 유지에, 구피질은 감정의 작용에, 신피질은 이성의 작용에 관여한다. 특히 인간의 정서를 담당하는 기관은 구피질의 편도체이다. 인간이 외부의 정보를 지각할때 편도체를 먼저 거치고 전두엽으로 간다. 편도체가 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부정적이고, 불안한 감정을 더 크게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머뭇거리고 미루게 되는 경향이 높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소피아헴메트대 연구팀은 2019~2021년의 3년 동안 8개 대학교의 재학생 3,525명을 분석했다.
이 실험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지연 행동을 설문지를 통해 5~25점까지 점수를 매겼고, 자신들의 불안과 우울 등의 정신적인 문제와 신체상의 문제도 함께 평가했는데 지연 행동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신적인 건강과 신체상의 문제가 높았다. 이들은 지연 행동에 대한 점수가 1점 높아질 때마다 외로움, 수면장애, 목·등·허리 통증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정신적, 신체적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일을 뒤로 미루는 때도 있지만,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룰수록 부담감과 압박감이 커져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신체적 반응이 나타난다.
인간의 선호도는 시간에 대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선호도가 시간에 경과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선호도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현재 내가 원하는 것과 나중에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즉각적인 만족과 즉각적인 보상에 과도하게 가치를 부여한다. 인간이 도박과 게임에 쉽게 중독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행위에 관한 결과의 피드백이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래는 현재보다 더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일은 당장 하고 싶어 하고, 하기 싫은 일은 나중으로 미루려고 한다. 이러한 심리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으로 가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 해도 되겠지’라는 지나친 낙관주의가 심해지면 비현실적 낙관주의 (Unrealistic Optimism)에 빠지게 되고,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막상 일이 닥치게 되면 큰 곤경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남극 탐험의 역사에 있어 아문젠과 스콧의 경쟁은 매우 유명한데, 이미 그들의 준비성에서 운명이 갈렸다. 스콧은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탐험가로 비현실적인 낙관론에 빠져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탐험에 나섰다가 전 대원이 사망하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던 아문젠은 스콧보다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먼저 남극점에 도달했고 전 대원이 살아서 귀환하였다.
아문젠은 어릴 적 존 프랭클린이 쓴 북서항로 탐험기를 읽고 자신도 탐험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17살 때 그린란드를 탐험하고 돌아온 난센을 보고 아문젠은 평생 난센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는다. 탐험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 생각하여 스키를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고, 추위에 단련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속옷 차림으로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을 잤다.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항해사 시험에 합격했고, 선원 생활을 하면서 노르웨이 스키 투어에 참가하였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1900년 선장 면허를 취득한 아문젠은 탐험에 필요한 자기학, 기상학을 배웠고, 탐험에 필요한 온갖 지식을 익히기 시작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리더십이 중요한 것을 알고 지휘권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리더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하들이 없어도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비행기 조종술까지 배우는 등 수많은 지식과 기술을 익히기 시작한다.
이에 반해 로버트 스콧은 너무나 준비가 부족했다. 아문젠이 이누이트가 입는 털가죽 방한복을 준비한 반면, 스콧은 영국 신사답게 영국제 모직 코트를 고집했다. 모직 코트는 추위를 막을 수는 있었지만, 습기에 매우 약해 혹독한 추위로 인해 땀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체온을 빼앗는 것은 물론 최소한의 보온 능력까지 최하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스콧의 방한복의 단추는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극저온의 온도에서 깨져나갔고, 차가운 단추는 피부를 훼손했다.
아문젠은 잘 훈련되고 후위에 강한 시베리안 허스키 48마리를 끌고 탐험에 나섰고 비상시에는 개를 잡아 식량으로 썼다. 하지만 스콧은 추위에 강하다고 알려진 아큐트 조랑말 19마리와 설상차를 준비하고 탐험에 나섰다. 이 사실을 알고 아문젠은 기겁하여 개를 쓰라고 권유했지만, 스콧은 듣지 않았다. 개는 인간이 먹는 식량을 같이 먹을 수 있었지만, 조랑말은 별도의 식량을 따로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짐도 많았다.
아문젠 탐사팀은 모두 스키에 능했기 때문에 경사진 곳에서 빠르고 안정적으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스콧의 탐험대는 스콧을 비롯하여 스키를 탈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스콧이 준비한 설상차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맹추위에 의해 연료가 얼어버려 처음부터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장비를 버리고 갈 수 없다며 인력으로 끌고 가는 어리석은 짓을 벌였다. 준비해간 연료도 아문젠에 비하여 스콧은 매우 부족하여 아문젠의 1/3에 불과했다.
아문젠은 가는 도중에 돌아올 것에 대비하여 식량창고를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깃발을 식량창고 주변에 20여 개의 깃발을 설치했다. 스콧도 식량창고를 마련했지만, 연료와 식량을 같이 보관하여 연료가 얼어 터지면서 식량을 오염시켰고, 식량창고의 위치를 찾기 쉬운 조처하지 않아 돌아오는 도중에 800m 거리에 있는 식량창고를 발견하지 못해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아문젠은 스콧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남극점에 35일 먼저 도착했고, 전 대원이 모두 살아서 96일 만에 무사 귀환했지만, 스콧은 초인적인 힘을 다해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스콧의 탐사대는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기존의 조직들은 조직의 성공이 질서정연한 미래 예측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여 예측가능한 미래의 환경변화에 걸맞은 전략적 계획을 세우고 조직을 통합해 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대는 모든 것이 변덕스럽고(Volatile) 복잡하고(Complex) 불확실하고(Uncertain) 애매모호(Ambiguous)한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현대 사회가 결정론적 세계에서 확률론적 세계인 복잡계에 들어서면서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현대 조직은 장기적인 계획에 의존하기보다는 현실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인 변화와 대응이 더 필요하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문젠과 같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승리는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자를 기다린다.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부른다.
필요한 것을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는 실패가 찾아온다
우리는 이것을 불행이라 부른다.
-아문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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