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업계획서만 제대로 있었더라면… 또 반복된 금형 전도사고

ⓒ중대재해사이렌/출처-고용노동부
ⓒ중대재해사이렌/출처-고용노동부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지난달 25일 오후 2시 32분경,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한 금형제조 사업장에서 중량물 전도에 의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당시 작업자는 수직으로 세워놓은 금형을 사상하던 중, 금형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그대로 작업자를 덮쳤다. 피해자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사고 당시 금형은 별도의 고정 장치 없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으며, 작업자가 밀접한 거리에서 작업을 수행하고 있어 미처 피할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량물 사고, 예외가 아닌 예고된 재해

ⓒ고용 노동부- 2024 산업재해 통계
ⓒ고용 노동부- 2024 산업재해 통계

최근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깔림·뒤집힘’ 사고는 전년 동기 대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중량물에 의한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중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고위험 유형으로 분류된다.


중량물이란 일반적으로 무게가 100kg 이상인 물체를 의미하며, 금형과 같은 대형 구조물은 인력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중량물이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넘어질 경우, 작업자가 피하거나 방어할 여지가 거의 없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는 사업주가 중량물 취급으로 인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으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69조에서도 자재의 전도·낙하 위험 시 필요한 방지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장에서 이러한 조치가 작업계획서나 표준작업절차에 명확히 반영되지 않거나, 실행이 형식에 그치는 사례가 잦다.

 

 

계획이 사고를 막는다…작업계획서의 실효성 확보가 관건

ⓒ안전보건공단-중량물 취급 작업계획서 작성
ⓒ안전보건공단-중량물 취급 작업계획서 작성

중량물 전도사고는 단순한 실수나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사전 계획과 절차가 마련됐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예측 가능한 산업재해다. 특히 이러한 사고 예방의 출발점은 바로 작업계획서에 중량물 전도 위험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데 있다.


작업계획서에는 중량물의 크기, 무게, 형상, 무게중심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운반장비 선정과 작업반경 확보, 줄걸이 방식, 지지대 및 고정장치의 설치 여부 등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항목들이 명확히 작성되고, 현장에서 이를 기준으로 작업이 수행된다면 전도사고의 위험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작업계획서에는 현장 정리정돈, 통행로 확보, 과적 방지 등 환경적 요인까지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작업자와 관리자 모두가 사고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예방장치다.


결국 중량물 전도사고는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판단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구성된 작업계획서가 현장의 위험요소를 담아내고, 그것이 실제 작업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예방이 가능하다. 형식적인 문서가 아닌, 현장의 특성과 물리적 위험을 충분히 반영한 계획서가 실질적으로 작동해야만, 사고는 막을 수 있다.

 

 

표준작업절차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체화하다

중량물 취급작업의 또 다른 핵심 예방 장치는 바로 표준작업절차서(SWP)다. 이는 작업자가 작업 전, 중, 후에 따라야 할 절차와 안전조치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문서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작업자 행동을 일관되게 유지시키는 ‘행동기준’이다. 특히 중량물과 같이 전도 위험이 높은 작업에서는, 표준작업절차서를 실제로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특히 작업계획서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담고 있다면 절차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실행 매뉴얼로, 두 문서는 반드시 연계되어야 한다. 작업계획서에 중량물의 무게, 형상, 무게중심, 사용 장비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 내용이 표준작업절차서에서 작업 단계별 조치 사항과 점검 항목으로 연결돼야 한다. 이를 통해 계획과 실행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할 수 있다.

 

 

세워놓은 중량물, 체인 고정장치 하나가 생사를 가른다

ⓒ건설기술정보시스템(CODIL)-중량물 취급 안전관리 작업절차서
ⓒ건설기술정보시스템(CODIL)-중량물 취급 안전관리 작업절차서

금형과 같이 무게중심이 높고 세워놓은 상태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중량물은, 작은 진동이나 외력만으로도 쉽게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 특히 사상작업처럼 작업자가 중량물에 밀착해 손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 전도사고는 곧 생명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도 범위를 제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체인 고정장치'다.


작업 전 금형의 윗부분에 슬링 또는 체인을 걸고, 이를 작업장 내 고정구조물(예: 앵커, 기둥, H빔 등)에 견고히 연결하면, 금형이 중심을 잃더라도 완전히 넘어지는 것을 막거나, 전도 각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장치는 지지대, 받침대, 경사 고정 프레임 등과 병행해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설치 이후에는 장력 상태와 체결부 상태, 체인 마모 및 변형 여부에 대한 정기 점검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체인 고정장치의 사용 시 주의사항은 ▲ 체인이 꼬이지 않도록 정렬해 설치할 것, ▲ 마모 방지용 윤활 처리를 하되, 고온 또는 분진 환경에서는 오히려 사용을 삼갈 것, ▲ 사용 전 체인의 균열, 변형, 녹, 후크 상태, 체결 볼트 상태 등을 확인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 즉시 교체할 것 등이 있다.

 

체인 고정장치의 올바른 설치와 유지관리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사상작업과 같은 밀착 작업 시 생사를 가르는 핵심 안전조치다. 따라서 관련 사항은 반드시 작업계획서와 표준작업절차서에 반영되어야 하며, 문서에만 남지 않고 현장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예방은 기본에서 시작된다

이번 사고는 중량물 전도라는 전형적이고도 반복되는 재해 유형이 여전히 현장에서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정장치 하나, 절차서 한 줄이 생명을 지킬 수 있음에도, 형식적 문서와 미흡한 이행으로 인해 재해는 되풀이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하고 그대로 수행하는 기본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작업계획서와 표준작업절차서는 단순한 서류가 아닌, 현장에서 작동하는 예방 장치여야 하며, 고정장치는 그것을 실현하는 물리적 안전선이 되어야 한다.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첫걸음은 ‘기본’을 지키는 일이다. 이제는 그 기본을 모든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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