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우리나라의 법 체계는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동종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또다른 법을 만들어서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정작 법은 강력하게 만들고서 현장에 제대로 집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을 계속 제정하기보다 현재 제정된 기존의 여러 관계법들이 현장에서 작동하기에 실효성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된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업의 등록과 계약 및 시공에 대해 여러 가지 규제와 벌칙 및 과태료를 규정하고 있다. 행정제재 중 하나인 영업정지는 ▲미등록 공사 도급 ▲직접시공의무 위반 ▲하도급 제한 위반 ▲도급하한제 위반 ▲고의, 과실의 부실 시공에 해당하는 경우 국토교통부장관은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영업정지를 명하거나 영업정지에 갈음하여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2015년부터 2022년 4월까지 조사한 건설사 영업정지 처분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순위 30위 내 대형 건설사 중에 지자체로부터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은 건설사는 9곳이다. 대부분 중대재해 사망사고 발생으로 받은 처분이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이후 건설사는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과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 이때 집행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건설사는 다시 영업 활동을 할 수 있고, 소송이 진행되면 영업정지 집행 시기는 수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취소 소송이 승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판결까지 진행되는 시간을 끌며 영업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건설사들은 소송을 진행한다. 한 예로, 큰 화제를 모았던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는 영업정지 8개월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가처분과 행정처분 소송을 제기하면서 예정된 영업정지를 피할 수 있었다.
HDC 현대산업개발은 2021년 6월 9일 현대산업이 수주한 도시정비사업 현장(광주 학동)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고로 버스에 탄 시민 8명이 부상, 9명이 사망하였다. 2022년 1월 11일에는 현대산업 아파트 시공 현장(광주 화정동)에서 건물이 붕괴되면서 근로자 1명이 부상, 6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적용을 받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의 원인으로는 강풍, 부실시공, 관리 부실, 설계 변경, 동바리 철거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양생 기간을 충분히 가지지 않아 대충 작업을 하던 것을 주된 이유로 지적됐다. 이외에도 설계를 임의로 변경하여 작용 하중이 설계보다 2.24배 증가했고 동바리를 조기 철거하여 하중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는 다양하고 복합적이 요인이 있었다.
HDC 현대산업개발 붕괴 사고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2개월간 사고 원인을 파악하여 이를 근거로 지자체에게 등록말소 처분을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산업기본법과 시행령에서의 처벌 규정이 달라 현실적으로 등록말소 처분이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83조에는 부실시공으로 공중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 건설업 등록을 말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반면, 같은 법 시행령 제80조에는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야기해 공중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 영업정지기간을 1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 규정을 이유로 들며 등록말소 처분을 적용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2021년 6월 9일 현대산업이 수주한 도시정비사업 현장(광주 학동)에서 사고와 2022년 1월 11일 현대산업 아파트 시공 현장(광주 화정동)에서의 건물 붕괴 사고에 대해 각각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현대산업은 영업정지 처분을 2번 받았음에도 학동 현장 사고에 대해서는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화정동 사고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통해 사고 마무리를 했다. 사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공사를 진행하였고,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는 집행정지와 과징금으로 처분되었다.
HDC 현대산업개발 사고는 중대재해에 해당되고,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진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집행정지'와 '과징금'으로 무마되었다. 건설업에서 법 규정을 추가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기보다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법들의 실효성을 갖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