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소장/고문(삼성물산 건설안전연구소)
ⓒ이충호 소장/고문(삼성물산 건설안전연구소)

 요즘은 조직에서 정례적으로 하던 회식과 같은 저녁 모임도 많이 줄었고 회식의 형태나 내용도 전과 같지 않다. 사회변화와 계층이동을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것이고 그동안 미덕으로 통해던 관습도 바뀐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바뀌어야 할 폐습일 수 있다. 그래도 직장인에게 회식이라는 문화는 술과 밥을 먹는 자리 이상의 의미와 추억을 만드는 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얼마전까지 중견기업에 임원으로 근무하던 친구가 경험한 회식자리에서 경험한 황당한 애피소드를 전해 듣고 박장대소를 한 일이 있다. 


  친구가 근무하던 기업은 꽤 잘 나가는 중견기업으로 불황 속에서도 매년 매출이 늘고 대외 신인도가 좋은 회사이다. 얼마전 사장이 부장급 간부들을 격려하기 위해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생산 관련부서를 맡고 있는 부장 10여명이 닭볶음탕이 메인 요리로 나오는 조촐한 한식집에 사장을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었는데, 그해 말 임원 승진이 예상되는 A부장이 참석자들의 배려로 사장 자리 앞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사장 앞에 차려진 닭볶음탕 접시 위에 닭똥집이 사장 앞쪽에 흉측하게 놓인 것이 A부장 눈에 들어 온 것이다. 사장이 다른 참석자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는 동안 닭똥집을 집어 A부장 앞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아무일 없이 그날 회식이 마무리 되었는데,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벌어진 것이다.

 

사장 주관 임원회의에서 회식 후일담을 나누던 중 “A 부장이 닭똥집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애. 내가 한눈 파는 동안 그 놈을 자기 앞으로 옯겨 놓았다가 먹어 치우더군.” 하고 던진 사장의 말 한마디가 좌중을 싸늘하게 만든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회의 참석자들은 회의를 마치고 나와 당사자인 A부장에게 사장의 얘기를 전했고, “닭똥집이 사장님 앞에 있는 것이 보기 흉해 내 앞으로 옯겨 놓았다가 내가 먹었다”고 한 아름다운 변명은 결과적으로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그해 임원 승진에서 그는 탈락했단다. 


 “사장님! 이 놈 보기 흉해서 제가 치우겠습니다.”, “아닐세. 내가 그걸 좋아 하는 줄 알고 주인이 날 주려고 한 모양이야”. 이런 대화 한마디만 오갔으면 상하간 갭도 많이 좁아지는 계기가 되고 회식 분위기도 좋았을 것이다. 이는 경직된 소통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이다.   

 

  경청으로 공감

  우리 사회 모든 조직과 리더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소통이다. 사실 소통의 중요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강조돼 왔다. 허심탄회(虛心坦懷), 상통하달(上通下達)이라는 사자성어는 소통의 중요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현대 들어 차이가 있다면 소통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SNS는 소통의 창구로 사회각계에 활용되고 있다. 기업들도 조직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듀폰의 세이프티 컨텍트(Safety Contacts)는 이미 잘 알려져 많은 기업들이 유사한 제도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팀을 구성해 함께 참여하는 쿠킹 프로그램부터 4차 산업혁명 트랜드를 반영한 체육대회까지 이색 소통행사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이처럼 소통의 방식이 변화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경청과 질문에 기반한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질문도 경청도 없는 불통상태이다. 그 다음은 질문은 있는데 경청이 이루어지지 않아 소통의 원심력이 상실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경청이 왜 중요할까? 예를 들어 무더운 여름날 안전모를 쓰지 않은 노동자를 상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이 법적인 사항이고 본인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 착용하라고 무작정 강요할 경우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공감없는 대화는 반감만 살 뿐이다.

우선 노동자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는 이유를 경청하면서 그 사람의 의도와 감정을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리자는 정작 착용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안전모를 착용하면 시선을 가려 정밀작업을 하기 어려운 여건은 아닌지, 안전모를 지급한지 오래되어 위생적으로 불쾌감을 주지는 않는지, 노동자의 머리 보호를 위해 안전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상대방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우선적으로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의도를 이해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인간은 분당 180개 단어를 사용하는 반면 들을 수 있는 능력은 분당 300~500개 단어가 가능해서 말하는 능력보다 듣는 능력이 뛰어남에도 그렇다. 역설적이다. 그렇다면 왜 경청이 어려울까? 듣는 것이 여유롭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과거 경험이나 새로운 경험을 연상하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태에서 대화는 경청이 아니고 그저 듣고 있을 뿐이며 상대방의 니즈나 감정을 공유하기 어렵다. 


  이청득심(以請得心)이라는 말이 있다.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상대방과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경청을 잘 해야 한다. 의미없는 경청이 아니라 상대방과 공감을 하고 그 사람의 감정, 욕구, 의도 및 신념과 가치관 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경청도 연습이 필요하다.

  기업 경영자들에게 비교적 자주 듣는 질문중의 하나가 현장의 문제를 찾아 개선하기 위해 제안제도나 앗차사고 발굴제도를 운영하는데 노동자들의 참여 저조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상금, 포상, 경진대회 등을 앞세워 부서별로 경쟁을 붙인다는 것이다.

 

잘되지 않는 기업은 현장의 소리를 듣고 적시에 개선시켜 주기 위함보다 제도 운영 자체를 안전이나 품질관리 성과로 삼는 경우이다. 제안이나 앗차사고 발굴 자체가 그 부서 또는 제안자의 부가적인 업무로 떨어지고, 조치결과가 피드백되지 않는 경우에 성공하기 어렵다. 심지어 생산부서와 공무부서 그리고 안전부서간 갈등요인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현장 노동자가 경영진이나 간부들이 진짜 나를 위해 들어주고 바꾸어 주려고 하는 것인지, 본인들의 성과를 포장하거나 시키니까 형식적으로 하는 것인지 말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의 안전관리책임자, 안전관리자, 관리감독자 들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노동자 스스로 안전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작업에 잠재된 위험요인이나 불안전한 행동을 스스로 찾아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환경은 경청이 바탕이 된 공감문화로부터 시작된다.


  몇 년전 즐겨보던 방송 프로그램 중에 김동길, 김동건, 조영남 3인이 벌리는 토크쇼가 있었다. 방송에서 김동길의 호칭은 김동건은 선생님인데 나이가 훨씬 적은 조영남은 그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급기야 나이가 중간인 김동건이 형님이라는 호칭이 무례하다고 조영남을 향해 테클을 걸었다. 이에 김동길은 “나이가 많은 나는 어떤 분야는 조영남이 가진 재능을 갖지 못해서 이야기 하는 것 보다 듣는 것이 더 좋아요. 형님이면 어떻고 선생님이면 어떤가. 요즘 사람들은 대우를 받기 원하면서 들어주는 것에는 인색해요. 연습이 필요합니다”라는 말로 정리해 나를 놀라게 했던 기억이 난다. 


  진정한 공감은 진솔한 경청으로부터 시작된다. 경청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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