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즉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재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내리도록 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법의 시행에 앞서 여러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모호한 책임 범위에서 비롯된 CEO 처벌 회피 가능성

법 제2조9항에서는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는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처럼 문장에 ‘또는’ 을 사용하였고, 책임이 있는 사람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아, 누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부담하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하여 견해가 나뉘었다.


이에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에서는 지난해 12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대표이사’이고, 법문상 ‘또는’ 의 의미는 선택적 관계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대표이사의 권한을 위임받아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대표이사의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이 ‘이현령비현령’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각 계의 입장이다. 기업들이 최고안전책임자(Chief Safety Officer, CSO)를 별도로 둘 경우, 이를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대기업들은 안전·보건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CSO에게 몰아줌으로써 대표이사의 처벌을 회피하고자 한다는 논란도 생겨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업계 관계자는 “CSO와 전문경영인이 실제 경영책임자와 오너 대신 징역을 가는 ‘빨간 줄 임원’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이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의견도 있다. 한 제조업 관계자는 “전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안전 관련 부서가 신설됐고, 이로 인해 안전관리자 및 책임있는 사람을 배치해 인사 조직이 전보다 커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처법때문에 안전을 다시 확인하고 안전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됐다”면서 “이는 장점이 더욱 큰 부분”이라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현재 몇몇 기업에서는 아예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거나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21개 재벌 총수 일가가 자신들의 회사에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2017년 17.3%에서 2021년 11%로 급감했다.

 

이와 관련해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도 “총수 일가가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미등기 임원으로 다수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책임 경영 측면에서 우려스럽다”며, “특히 사익 편취 규제 대상 회사에 집중적으로 재직하는 것은 권한과 이익은 누리며 책임은 회피하려는 사실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의 법 적용 대상 제외 논란

또 다른 면에서 제기되고 있는 논란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관련된 부분이다. 고용부가 공개한 중대재해처벌법 중대 산업재해 분야 법령해설집을 보면,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개인사업주·법인·기관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직, 플랫폼 종사자 등이 5명 이상인 경우에도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은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님”이라고 적혀있다. 앞서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규모 기업 등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논리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이들을 차별한다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번에는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자들도 대상에서 제외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되면 예컨대 배달대행업체가 관리자를 4명만 채용하고, 배달 기사 수십 명과 위탁 계약을 체결해 배달을 맡겨도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박대수 의원실이 고용부로부터 제공받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플랫폼 종사자 중 배달 근로자의 산재 건수는 2016년 396건에서 2020년 2255건으로 5.7배 급증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배달 근로자 산재 통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고용부로부터 '바로고', '생각대로', '부릉' 등의 단어가 들어있는 사업자와 지점명을 넣어 산출받은 통계자료이다. 이와 같은 통계는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인한 플랫폼 종사자 수의 증가에 따른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말 필요한 소수의 관리자만 2~3명을 두고 나머지 일은 특수고용직을 쓰는 방식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며 “탈법의 소지가 있어서 이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애초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 관계나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발생하는 산재까지 포괄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종사자’라는 개념을 통해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뿐만 아니라, 특수고용직 등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사업의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즉, 여러 차례 도급에 따라 사업이 이뤄지는 경우 각 단계 수급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까지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정작 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그 사업의 노동자가 5명 이상이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법 제정 이후 노동자를 ‘종사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노동부 관계자는 “법문상 너무 명확하게 노동자로 정의돼 있어 그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50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유예 및 제외에 따른 법의 실효성 논란

세 번째 논란은 사업장 규모에 따른 법 적용 관련 논란이다.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잠정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828명의 사망자의 소속 사업장 규모는 5인 미만 사업장 317명(38.3%), 5~49인 사업장 351명(42.4%), 50~99인 사업장 54명(6.5%), 100~299인 사업장 58명(7.0%), 300~999인 사업장 30명(3.6%), 1천인 이상 사업장 18명(2.2%)이다.

 

이처럼 49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사고 비율이 81%에 육박하는데도 5~49인 사업장에서는 중대재해법 적용이 2024년 1월까지 유예되었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이 제외되었다. 이는 곧 법안의 효용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조의 박세중 노동안전국장은 "노동자의 목숨은 모두 똑같이 소중한데, 큰 사업장 노동자는 보호받고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라면서, "노동자를 보호 못 할 정도로 사업장이 어렵다면 정부가 지원해서 노동자를 살리고 볼 일이지 법 적용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법 적용의 유예 및 제외를 모두가 나쁘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소규모 업체의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하면 사업이 무너질 수도 있다”며, “정부나 사용자 단체가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모호한 해석과 사각지대 발생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당분간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법인과실치사법 제정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15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이 법을 심의하는 데 불과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럽의회에서는 주요 법을 만들 때 ‘사전 입법평가’를 한다. 법 제정으로 과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등을 사전에 꼼꼼히 점검한다. 물론 ‘사후 입법평가’도 한다. 하지만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와 비교해서 턱없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부족한 만큼, 안전을 위해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모두 합심해 좋은 판례를 남기는 방법만이 중대재해처벌법의 논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기사는 닷뉴스 대학생 기자단 2기인 ▲이승준(고려대학교/보건환경융합과학부), ▲임현경(인천대학교/안전공학과), ▲조연수(인천대학교/안전공학과), ▲최수빈(고려대학교/보건환경융합과학부) 님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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