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지로의 ‘풍경’이 되어버린 을지로 사람들, 을지로-청계천 공구상가의 소규모 작업환경 들여다보기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을지로’는 최근 MZ 세대들에게 ‘뉴트로 핫플’로서 그 인기가 급부상되어 ‘힙지로’라고 불린다. 최근에는 기존의 정제된 카페와는 다른 특이하고 비정형적이고 복고풍인 카페들과 식당, 레코드바 등이  을지로 골목을 화려하게 채우고 있다.

이에 MZ 세대들은 접해보지 못한 90년대 이전의 아날로그 감성에 신선함을 느껴 힙한 을지로, 힙지로에 열광하고 있다.

 

힙지로의 MZ세대를 겨냥한 레트로 카페, 식당들
힙지로의 MZ세대를 겨냥한 레트로 카페, 식당들

 이러한 화려한 힙지로의 풍경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을지로 공구상가를 생활터전으로 하고 있는 소규모 작업자들이다. 그들을 그저 지나칠 풍경이 아닌 한명의 사람으로서 인식하고, 과연 작업환경 안전이 지켜지고 있는지 천천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을지로 공구상가구역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재개발은 이미 끝나서 많은 작업장들이 철거 되었고, 어떤 작업장들은 예고된 재개발을 기다리며 임시적인 형태로 작업이 돌아가고 있다. 또 다른 작업장들에서는 1960년도부터 60여년간 그랬듯이 묵묵히 장인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

 

이제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 골목 속으로 들어가 작업안전과 작업환경의 쾌적함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청계천보존연대의 활동가이자 을지로 용접구역 근로자인 A씨에게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의 산업안전 현황에 대해 인터뷰를 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재개발이 비규칙으로 번복되기 때문에 세입자 입장에서는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리모델링 등이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제대로 설계되지 못한 환기 시스템으로 생긴 호흡기 질환, 노후된 보호구 및 시설에 의한 위험 등 산업안전이 제대로 보장 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세 상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상권이어서 때문에 이런 위험에 대한 규격화 된 보고나 수치 데이터가 없어요. 이에 대한 체계적인 보고와 조치가 절실합니다.” 라며 안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음을 토로했다.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 현장 답사 사진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 현장 답사 사진

 또한 실제로 을지로의 금속가공 골목을 답사해본 결과 작업안전의 기본이 되는 사업장 내 MSDS 공시, 근로자 대상의 특수건강진단, 보호구 착용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MSDS 공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MSDS는 물질 안전 보건 자료(Material Safety Data Sheet, 이하 MSDS)로 물질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담아 화학물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설명서이다.

여기에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위험성 정보, 응급조치 요령, 취급방법 등을 비롯한 16가지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산안법 제104조에 따른 분류기준에 해당하는 물질(근로자에게 건강장해를 일으키는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 등)이 그 대상 물질이 된다.

 

이러한 MSDS는 산업안전보건법 제 41조에 의거, MSDS를 취급 근로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시 또는 비치하여 취급물질 주의법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안전사고를 방지하여야 한다. 을지로 공구상가 같은 경우, 1인 작업장이 많아 사업자와 근로자가 분리되지 않아 이러한 게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유사 작업을 반복하여 해왔다해도, 이러한 MSDS 비치를 통한  상세한 이해가 다시 한 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수건강진단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특수건강진단은 산안법 제 130조에 의거,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어야하는 건강진단이다.
을지로 공구상가 작업자 몇 분과 면담해 본 결과, 대상 유해인자의 종류에 따라 그 주기는 상이하나, 일반건강진단만 진행되어 왔다고 답변하였다. 일반건강진단과 구분되는 특수건강진단의 존재를 모르거나, 필요성에 대해 따로 설명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 절삭 공정 중 보호구 착용 모습(면장갑, 일반 고무화, 방진마스크. 면장갑은 벗고 유기용제용 호흡기 보호구를 착용해야 한다. 보안경착용도 권장된다.
실제 절삭 공정 중 보호구 착용 모습(면장갑, 일반 고무화, 방진마스크. 면장갑은 벗고 유기용제용 호흡기 보호구를 착용해야 한다. 보안경착용도 권장된다.

 또한 보호구 착용이 적합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보호구란 작업 과정에서 사고 방지, 건강장해방지의 차원에서 작업자가 몸에 직접 걸치고 작업하는 것으로 가장 기본적이자 중요한 작업자 보호 방법이다.

예시로는 물체의 떨어짐이나 날아옴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안전모가 있으며, 중량물의 떨어짐이나 끼임, 찔림, 감전, 화학물질 등에 의한 오염 등으로부터 발과 발등을 보호하는 안전화, 방진마스크, 방독마스크 등의 호흡기 보호구 가 있다.

 

이런 보호구들은 적절한 상황에 적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을지로 공구상가 작업장 현장 답사 중 CNC 절삭 공정이 진행되는 작업장에서 면장갑을 사용한 작업자가 있었다. 이와 같은 경우 절삭 공정 중 면장갑이 빨려 들어가게 되어서 오히려 사고 위험성을 높이게 된다. 작업자는 이렇게 안전 보호구를 사용하다 보호구의 본 취지와는 다르게 위험에 처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외에도 보안경 미착용, 유기용제용 호흡기 보호구가 아닌 일반 방진 마스크 사용, 안전화가 아닌 일반 운동화 사용 등 보호구가 부적합한 방식과 종류로 섞여서 사용되고 있었다. 이 역시 보호구의 적합한 사용에 대해 설명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좁은 작업장에 다양한 가공 재료와 전선들이 적재되어 있었고, 독한 비수용성 금속 가공유를 사용하는 작업장의 경우 환기구 근처가 아니면 호흡이 힘든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인터뷰와 현장답사를 통해, ‘작업장이 정말 안전한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에 대한 원인으로는 관련 사항에 대한 이해 및 설명 부족과 불규칙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재개발로 인한 작업 환경 및 장소 확보의 어려움 등을 꼽을 수 있다.

 

 청계천 산업생태계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부족한 채로 재개발이 번복되고 강행되는 과정에서 생존에 대한 논의가 우선시 될 수 밖에 없었고, 작업장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안전에 대한 논의와 보충은 보류 되어 버린 것이다.

 

안전한 작업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작업안전의 기본이 되는 보호구착용, MSDS 공시, 정기적 특수건강진단의 중요성과 실용성을 작업자들에게 강조하는 교육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청계천-을지로 산업 생태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청계천-을지로 산업 생태계의 금속 가공 골목, 조명 골목, 인쇄 골목 등 다양한 작업장들이 밀집된 골목들은 1960년대부터 자리잡아 서울 제조 및 가공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특히 청계천-을지로 산업생태계는 소규모 다품종 생산에서의 중요 역할을 이행해 왔고, 단순히 대량 생산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대체가 한 순간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계 작업장들이 모여 있어 연결성이 강하다는 특성도 있다. 이처럼 특수성을 지닌 청계천-을지로 산업 생태계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논의와 이를 고려한 작업 안전에 관한 후속대처, 그리고 공구 상가 산업 안전에 대한 데이터화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그곳을 생활 터전으로 살아온 작업자들과 을지로를 사랑하는 우리들 모두 을지로를 단순히 우리와 관련 없이 지나갈 풍경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세히 살펴본다면 힙지로는 더 멋진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