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때 고참들과 함께 하수도 내부 조사를 한 적이 있다. 하천을 복개한 시설인데, 폭이 약 10m, 높이가 2.5m정도 되었다. 

그 당시 과장님이 모든 현장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충분히 옛날 도면과 같은 자료를 이용해 확인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하수도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은 외부에 한명이 대기하고, 세명이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막내인 나도 따라 들어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이때 그렇게 큰 하수도는 처음 봤다. 물이 거의 허벅지까지 차 흘렸는데, 내부가 어둡고 무서웠다. 맨홀 뚜껑의 구멍으로 내려 쬐는 햇빛만 보였다. 

우리는 방독면에 가슴장화를 착용했다. 나와 대리님은 손에 랜턴을, 과장님은 도면과 간단한 필기 도구를 들었다. 들어가서 직접 보니, 크기나 높이, 합류되는 형상 등이 도면과 많이 달랐다.

왜, 과장님이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당시 과장님 덕분에 현장을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얼마전에 한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설계가 현장과 너무 상이하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왔다.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확인해보니 설계자가 현장의 기존 시설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었다. 예전의 도면을 그대로 인용해서 설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난다. 

 

설계자가 편의상 현장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기존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이 현장도 설계자가 기존 하수도 내부를 직접 조사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이 현장은 공사를 중단했다. 다른 설계자에게 의뢰해서 재설계를 하라고 했다. 

전체적인 사업 추진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일을 쉽게 할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쉽게 접근하면, 그만큼 쉽게 실패할 수 있다. 

그날 조사를 마칠 때 쯤이었다. 하수도 바닥이 세굴되어 움푹 파인 곳이 있었는데, 과장님이 그 곳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흐르는 하수에 온 몸이 빠졌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다행이 다친 곳은 없었다.

과장님 모습을 보는 것이 민망해 "차라리 내가 넘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질 때 과장님의 입속으로 하수가 좀 들어간 것 같았지만, 서로 못 본 척, 모른 척 했다.

하수도 바깥으로 나왔을 때 과장님께서 소독하러 가자고 하셨다. 신입인 나는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과장님을 따라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오후 4시경부터 삼겹살에 소주로 소독을 시작했다. 하수도 안에서 가스를 많이 마신 것 때문인지, 소주로 소독을 너무 심하게 해서 였지는 몰라도 그날 우리 모두는 필름이 끊겼다. 

하수도조사 이야기만 나오면 이때가 생각난다. 힘들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고참들한테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게 되었다.

 

감사한 나의 고참님들이 생각난다.

 

이종탁의 생각정원 링크:
http://blog.naver.com/avt1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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