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적 시선은 ‘산업위생 전문가’의 안경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
'산업위생전문가의 시선이란 ‘일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
‘왜?'라는 질문부터,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그리고 ‘이렇게’ 해 보자는 결심에 이르게 하는 시선,,
안전보건인들은 업무의 특성상 재해 및 직업병 예방에 대한 지도와 조언을 해야 되고, 창의적인 사고와 업무 추진에 대한 열정을 요구받게 된다. 하지만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일종의 루틴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루틴은 자칫 관리자들에게 ‘매너리즘’을 만들고 수동적 사고와 소극적인 활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
부끄럽게도 이제까지 법에서 제외한 항목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또한 그러한 작업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고찰은 말단 실무자가 아닌 연구자나 교수, 정책을 만드는 사람같이 특정 위치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지레 짐작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접한 한 편의 논문에서 자극과 환기, 그리고 강렬한 메시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연구자적 시선과 발상’이었다. 이런한 시선과 발상은 특정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는 우리 안전보건인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안전보건인들에게 필요한 이 ‘연구자적 시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해당 논문의 저자인 「가톨릭대학교」 최상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에서 그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1. 최상준 교수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산업 및 환경 보건전공 책임교수를 맡고 있는 최상준입니다. 산업위생을 전공했고, 직업적 노출평가 및 관리 분야와 관련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2. 「대구경북 치과위생사들의 치과재료에 대한 유해 정보 소통 실태」 논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치과재료는 의료기기법에 따른 의료기기로 분류되어 관리되기 때문에 MSDS 제도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본 연구를 통해 총 67개 치과재료 중 MSDS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5종에 불과했고, 사용설명서에서 유해·위험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64%, 독성정보는 27%만이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치과위생사 310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치과재료의 유해 정보에 대한 교육은 7.4%만이 받아본 것으로 답하고 있어, 취급 재료의 유해 정보 소통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연구자적인 시선’이란 무엇일까요?
> 전 연구자적 시선이라기보다는 '산업위생전문가로서의 시선'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말 그대로 ‘산업위생 전문가’의 안경을 통해 바라본다고 생각하는데요.
일요일 오후 사람들이 분주한 대형마트의 계산대를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게 되나요? 다양한 장바구니 속의 쇼핑 상품들이 보이나요? 계산대 옆에 마지막 구매욕을 자극하는 제품들이 보이시나요? 아니면 기다리는 손님들이 눈에 들어 오시나요?
저는 그 분주한 속에서 의자가 한쪽에 있음에도 줄곧 서서 제품의 바코드를 찍으며 계산하고 있는 계산대 직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습니다. 산업위생전문가의 시선이란 ‘일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부터,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이어나가서 ‘이렇게’ 해 보자는 결심에 이르게 하는 시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4. 현장에서 필요한 꼭 필요한 안전.보건 관리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 현장의 안전보건관리자들은 그 현장에서 가장 자유롭고, 순수하고, 순진한 영혼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기업들은 이윤추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유기체입니다. 일하는 환경이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보다는 이윤 창출을 위한 효율성의 가치가 우선되는 곳이죠. 이런 현장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다른 안경을 끼고 현장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안전보건관리자여야 합니다.
유해한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부서에서 그 어떤 사람도 '이런 제품을 꼭 써야 하나?'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때, 안전보건관리자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부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기업의 생리를 모른다고 회사의 발전(이윤 창출)에 저해되는 순진한 생각이라는 핀잔을 듣더라도 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안전보건관리자들께서도 저를 현실을 모르는 나이브한 이야기라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네요. 내 이야기가 씨도 안 먹힌다고요.
네, 맞습니다. 현장이 변화되도록 하는 힘은 경영권을 쥐고 있는 사업주와 노동자들의 대표 조직인 노동조합에게 있습니다. 이들이 안전보건관리자들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고, 안전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변화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환경이 되지 못하는 현장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안전보건관리자 한 명 만큼은 남들이 생각하지 않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4차 산업혁명 등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산업구조에서 앞으로 안전보건관리자들이 준비해야 되는 역량과 자세는 무엇일까요?
> 안전보건관리자들을 만났을 때, 대부분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업무를 중심으로 일하고 있고, 법적 규정에 맞는지에 집착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진동이 심한 수공구를 사용하는 작업환경에서 작업환경측정을 할 경우, 어떤 측정이 필요할까요? 소음은 측정 대상이니 실시하고, 진동은 측정 대상이 아니니까 실시하지 않아도 될까요?
법은 최소한의 규정이며, 때론 법규가 현실을 못 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은 지켜야 하는 세부규정을 나열해 놓는 세부규정 중심(rule based regulation)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세부규정 중심 법규는 준수해야 하는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걸 지켜서 정작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라는 근본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작업환경측정이라는 산안법 규정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업장 내 작업자들이 일하며 노출될 수 있는 유해 위험한 환경을 확인하고 개선하여 건강한 노동환경을 만들라는 것이죠.
따라서 진동이 심한 수공구를 사용하는 작업환경에서는 진동의 수준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평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단지 법에서 정해놓은 측정항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평가할 생각도 하지 않고, 매년 주기적으로 평가에서 누락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물론, 평가를 위해서 진동 평가 방법은? 평가 기준은? 평가할 수 있는 기관은? 등등.. 찾아보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집니다. 즉,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겠죠. 안전보건관리자들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영역이니 귀찮고 괜한 업무가 추가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미래를 내다본다면, 안전보건관리자가 법에서 규정한 내용만 하라고 하는 방법대로 실시하는 업무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창의적 업무 능력과 상황에 따른 판단력과 결정 능력은 절대로 갖추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사업주나 경영진이 수행해야 할 가장 첫번째 핵심 의무로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 조치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어떻게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야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미래의 작업환경은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의 내용만으로는 재해 예방과 건강한 작업환경 달성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또한 앞으로 안전보건 관리자들이 해결해 나가야 중요한 난제가 될 것입니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은 과거 세부 규정중심의 법규특성에서 성과중심(performance based regulation) 규정중심의 법규로 만들어졌으며, 이를 준수하기 위해서 안전보건 관리자들에게는 각 사업장 상황에 맞는 창의적 사고와 노력이 요구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만, 저는 다양한 사업장 내·외의 경험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확대’에 대한 노력과 끊임없이 학습하고 적용해 보는 '탐구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안전보건인들에게 통찰과 혜안을 함께 나누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상준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