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틸리티 산업 사고, 근로자의 실수가 아니라 안전 리더십의 실패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전기, 가스, 상수도 등을 책임지는 유틸리티 산업은 국가 인프라의 중심축이다. 사고가 발생해도 끊임없는 서비스가 유지되는 이유 역시 현장의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투입되어 설비를 복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항상 높은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신규 인력 증가 등으로 현장의 안전 리스크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최근 해외 산업계에서는 “유틸리티 리더십이 안전을 현실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단순히 지침 전달이나 보호구 지급으로는 현장의 실제 위험을 충분히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전은 문서나 구호가 아니라 리더십이 직접 움직일 때 비로소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유틸리티 작업은 본질적으로 ‘고위험’이다
전기, 가스, 상수도 등의 유틸리티 작업은 매일이 위험과의 싸움이다. 송전탑 고소작업, 활선 주변 유지보수, 고립된 지역에서의 점검 등은 기본적으로 높은 리스크를 가진다. 기후변화로 인해 수해, 폭풍, 폭염 등 극한기상이 잦아지면서 복구작업 중 전기 감전, 추락, 피로사고 위험은 더 커졌다.
특히 미국 전기안전재단 ESFI에 따르면, 최근 10여 년 동안 전기 접촉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큰 변동 없이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침을 전달하고 보호구를 지급하는 등 여러 노력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근로자 탓으로만 볼 수 없는 지점이다. 여러 안전 대책이 마련되고 있음에도 사고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시스템 전반이 위험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국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 분야의 사고는 매년 산업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하며, 최근에는 태풍과 폭우로 단시간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면서 복구인력이 장시간 고강도 작업에 투입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사고의 원인은 ‘현장’이 아니라 ‘리더십의 공백’이다
많은 사고는 근로자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포장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 원인은 훨씬 복잡하다. 충분하지 않은 교육, 불분명한 작업 지시, 경험 부족 인력의 단독 투입, 보고체계 부재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인적 오류로 보이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는 보고되지 않은 위험요소, 모호한 절차, 훈련 부족에서 비롯되며 이는 결국 리더십의 책임이다.
특히 신규 인력이 빠르게 늘어나는 시기에는 경험 부족으로 인해 위험 징후를 놓치기 쉽다. 반대로 숙련된 베테랑조차 반복된 작업에서 오는 과신이나 피로 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즉 근로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식으로는 사고를 줄일 수 없다. 시스템 자체가 사람의 실수를 전제로 설계되는 Fool-Proof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안전 리더십
현실적인 안전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에서 비롯된다. 리더십이 반드시 개선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설계 단계부터 안전을 포함시킬 것
많은 현장은 여전히 작업을 먼저 실시하고 위험 확인은 나중에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설비 설계 및 업무 계약 단계에서부터 안전 요건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현장은 항상 위험을 떠안는다.
2. 작업 전 확인 및 분석 절차를 강화할 것
작업안전분석, TBM 등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면 사고는 반복된다. 체크리스트만 채우는 형식적인 운영은 반복적인 사고를 막지 못한다.
3. 보고 문화를 개선할 것
보고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인식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아차 사고, 현장의 이상징후, 경미한 사고 등을 자유롭게 보고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4. 정신건강 및 피로 관리 체계를 도입할 것
유틸리티 산업에서 사고는 신체적 위험보다 정신적 피로에서 기인한다. 장시간 복구작업, 극한기후, 야간작업 등은 근로자의 판단 능력을 급격히 저하시킨다. 정기적인 피로누적 모니터링, 인력 재배치 등 사람 중심의 운영이 필수적이다.
5. 리더의 현장 이해도를 강화할 것
리더 역시 안전 교육을 직접 이수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유틸리티 작업을 직접하지 않더라도 위험을 모른 채 판단을 내리는 경영진은 현장과 괴리가 있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현장을 모르는 리더십이 내린 판단은 필연적으로 위험을 간과한다.
데이터·AI·디지털 보고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최근 유틸리티 산업은 AI 기반 예측, 디지털 현장기록, 실시간 위험감지 플랫폼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도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경영층이 그 기술의 작동 원리, 한계, 필요한 자원 배분 구조 등을 이해하지 않으면 현장은 혼란만 커진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무분별한 디지털화는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 따라서 기술 도입은 현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리더십과 함께할 때 비로소 안전 향상으로 이어진다.
궁극적으로 유틸리티 산업의 안전은 매뉴얼이나 규정 준수 여부로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사고는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의 허점과 리더십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안전제일’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설계, 예산, 운영, 보고, 교육 전 과정에 안전을 최우선 요소로 반영하는 리더십이다. 현장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릴 때 안전은 형식적 절차로 전락한다.
유틸리티 산업은 국가 인프라를 유지하는 핵심이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현장의 근로자가 있다. 이들이 매일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안전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책임이다. 진정한 안전은 제도나 장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을 지키겠다는 리더의 의지와 실행이 있을 때 비로소 현장의 위험이 줄어들고 유틸리티 산업이 추구하는 끊김 없는 서비스 역시 지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