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처리 현장의 조용한 시한폭탄… 잔압 확인 없는 해체작업이 불러온 비극

2025-11-14     남인주 대학생 기자
ⓒ중대재해사이렌/출처-고용노동부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지난 10월 28일 오후 3시 10분경, 경기 고양시의 한 폐기물 수집 사업장에서 소화약제 용기 밸브 해체 작업 중 폭발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1명이 숨졌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별다른 이상 징후 없이 밸브가 분리되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과 파편이 튀었고, 그 충격이 치명상을 유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용기 내부의 잔류 압력 또는 약제가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체가 진행됐을 가능성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폭발·파열 형태의 중대재해는 전체 중대재해의 약 12퍼센트를 차지하며, 이 중 폐기물 처리·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비중은 30퍼센트를 넘는다. 2024년 대구 폐기물 처리장, 2023년 인천 재활용센터에서도 잔류압 미확인으로 인한 폭발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고가 기술적으로 예측이 어렵거나 우연에 가까운 재해가 아니라, 기본적인 확인 절차가 생략되면서 반복되는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지적한다.

 

폐기물 처리와 해체 작업은 매 건마다 소재와 규격, 충전물질, 과거 사용이력 등이 달라 위험성이 높지만, 현장에서는 대체로 폐기물 단계의 위험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단기 인력이 많이 투입되고 작업 속도가 중요한 구조적 환경이 겹치면서, 잔류압 확인이나 게이지 점검 같은 기본 절차가 생략되기 쉬운 특성이 있다.

 

특히 소화약제용기는 고압 저장용기임에도 외관상 비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절단이나 해체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사고는 외관만으로 위험성을 판단하는 착시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체 전 상태 확인’이 기본 원칙

ⓒ고용노동부 고시 제2020-11호 「해체공사 표준안전작업지침」
ⓒ고용노동부 고시 제2020-11호 「해체공사 표준안전작업지침」

고용노동부의 해체공사 표준안전작업지침은 해체 전에 구조물과 설비, 배관 계통을 조사·확인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작업계획 수립, ▲출입통제, ▲낙하·비산 대비, ▲게이지 확인, ▲누설 여부 확인, ▲장비 결속 상태 점검 등 압력용기 취급 시 기본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도 명시돼 있다. 따라서 잔압 확인이나 충전상태 확인은 특별한 작업이 아니라 해체 작업에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첫 단계다.

 

 

압력용기로 인한 폭발사고 예방 대책

압력용기 폭발사고는 기술 부족 때문이 아니라 기본 확인 절차가 생략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잔압 방출, 누설 확인, 계기 작동 여부 점검, 물질 성분과 사용이력 확인, 고정 상태 점검 등 기본적인 확인만 충실히 이행돼도 대부분의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 역시 간단한 절차가 생략된 것이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폐기물 처리업종은 하도급 구조와 단기 인력 중심의 작업 환경, 생산이 끝난 단계라는 심리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절차 준수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관리감독이 느슨해지고, 신입·단기 인력이 투입되는 비율이 높아지면 확인 절차가 조직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점이 동일 유형의 폭발사고를 매년 반복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KOSHA GUIDE M-69-2012 「압력용기의 잔여수명 평가에 관한 기술지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KOSHA GUIDE M-69-2012 「압력용기의 잔여수명 평가에 관한 기술지침」

압력용기와 관련한 제작이력, 시험기록, 규격 정보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기록체계는 폐기 단계에서도 위험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용기의 사용이력과 점검기록을 확인할 수 있을 때 잔류압과 결함 여부를 보다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관리는 해체 작업의 안전성과 직결될 수 있다.

 

이번 사고는 기본적인 확인 절차가 생략될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된다. 해체 전 짧은 점검만으로도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절차 이행 여부가 사고 예방의 중요한 변수임을 확인하게 한다. 폐기물 처리 작업에서 사전위험확인과 잔압 점검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유사한 사고는 언제든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