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F 안전문화 Ⅴ ] BBS를 넘어 PBS로: 사람을 탓하지 않고 행동을 이해하는 법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현장에서 “안전하게 하세요”라는 말은 누구나 수도 없이 들어왔다. 관찰 점검표를 쓰고, 지적 사항을 정리하고, 서명을 받는 과정은 많아졌지만 정작 행동은 왜 제자리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까지의 접근이 사람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지적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와 배경을 들여다보는 PBS(People-Based Safety) 즉, 사람 중심 안전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핵심은 누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데 있다.
기존의 BBS(Behavior-Based Safety, 행동기반 안전)는 분명 성과가 있었다. 현장을 관찰하고 행동을 기록하며 위험 행동을 발견해 지적하는 과정은 안전에 대한 시선이 자라나는 데 크게 역할해 왔다. 하지만 이 접근은 행동의 겉모습에만 머물렀다는 비판도 있다. “보이면 지적한다”는 패턴은 자칫 효과 있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숨거나 형식적으로만 반응하게 되고, 표면적인 행동만 보는 것으로는 그 행동의 이유를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BS는 질문을 다르게 던진다. “왜 그렇게 했나?”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라고 묻는다. 잘못의 주인을 찾는 대신, 그 선택을 합리적으로 만든 조건을 찾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향적으로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속도를 중시하며, 또 어떤 사람은 갈등을 피하려다 위험을 보고도 말하지 못한다. 이런 차이는 개인의 심리와 안전 성향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 지점을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PBS는 사람을 탓하기보다 심리적·성향적 배경을 드러내고, 거기에 맞는 환경과 관계를 설계한다. 예를 들어 보자. 작업자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규정을 어겼다”가 아니라, 보호구가 멀리 있었는지, 일정 압박이 있었는지, 아니면 “설마 큰일 나겠어”라는 인식 때문이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행동은 심리의 결과이며, 그 맥락을 이해할 때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심리적 안전감이 필요하다. 보고하면 혼나고, 멈추면 눈치 보이고, 제안하면 묵살되는 분위기라면 누구도 솔직한 이유를 말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리더의 첫 반응이 중요하다. “알려줘서 고마워. 지금 멈추자. 우리가 놓친 게 뭐였을까?”라는 반응은 위험 신호를 살아 있게 만들고, 다음 보고를 불러온다.
조금 더 구체적인 실행 관점에서 PBS를 생각해보자. 위험한 행동을 줄이려면 단순히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성향에 맞는 안전 선택의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에게는 사례와 데이터를 통한 인식 교정이, 갈등을 피하는 사람에게는 “서로 알려주자”는 동료 배려의 약속이, 성과 압박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안전한 실적이 진짜 성과”라는 인정 구조가 필요하다. 결국 행동은 개인의 성향과 조직 분위기가 함께 만든 결과다.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보았을 때 동료에게 건네는 10초의 한마디가 행동을 바꾼다. 이때 말투가 매우 중요하다. 위험 상황을 보면 바로 등장하는 비난이 아닌 ‘관찰–영향–요청’의 구조로 전환해 전달해야 한다. “지금 발판이 흔들려 보여요(관찰). 떨어질 수 있어 걱정돼요(영향). 잠깐 고정하고 같이 확인하죠(요청).” 여기에 상대의 “알려줘서 고마워요”라는 감사가 더해지면 개입은 강요가 아니라 호의가 되고, 작은 감사는 다음 번 위험을 봤을 때도 말하게 하는 용기로 연결된다.
리더 역시 같은 흐름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현장에 나갔을 때 지적 목록 대신 안전을 해치는 장벽의 목록을 적어보자. “오늘 우리의 안전을 가로막는 게 무엇인가?”를 묻고 세 가지를 기록한 뒤, 그 자리에서 하나를 치우는 것이다. 또한 작업 중지를 지지한 사례는 빠르게 공유해야 한다. 일정이 늦어졌더라도 안전을 우선한 팀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면 조직은 메시지를 명확히 이해한다. 실적도 중요하지만, 안전한 실적이 진짜 성과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흐름이 자리 잡으려면 평소 사용하는 현장의 언어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현장에서 “대충 해도 돼”, “원래 다 이렇게 해”, “잠깐만 하고 말자” 같은 말이 자주 오간다면 이 말이 오가는 순간 안전 기준은 금세 흔들린다. 그래서 애매한 표현 대신 누구나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언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STOP”은 지금 작업을 중지해야 하는 조건이라는 뜻이고, “GO”는 위험 요소가 통제되어 진행해도 된다는 신호다. “FIX”는 완전히 멈출 상황은 아니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언제 멈출지, 어떤 조건이 다시 작업을 실행하도록 할지, 작업 중지는 아니지만 보완이 필요한 위험 상황은 무엇인지에 대한 세 단어만 팀의 공통 언어로 정해도 상황 판단은 훨씬 빨라진다. 불확실한 말 대신 짧고 명확한 표현을 쓰는 것, 그것이 혼란을 줄이고 행동의 일관성을 만들어 준다.
결국 PBS는 “좋은 사람이 되자”는 도덕이 아니다. 사람의 심리와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안전을 선택하기 쉽게 만드는 사람 중심 설계다. 지적과 단속만으로는 바뀌지 않던 현장이, 이유를 이해받고 선택이 쉬워지고 서로의 안전을 챙기는 문화로 변할 때 비로소 달라진다. 이런 변화는 숫자보다 먼저 공기에서 느껴진다. 질문이 달라지고,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안전이 위협받는 순간의 작업 중지가 더 이상 미안하지 않게 되는 순간, 보고는 빨라지고 사고의 전조는 줄어들며 큰 사고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메시지는 단순하다. 행동이 아니라 이유를 보고, 사람을 탓하지 말고 성향을 이해하며, 지적 대신 질문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리더의 첫 반응은 “고마워–멈추자–무엇을 놓쳤지?”여야 하며, 질문은 현장의 다음 행동을 바꾸게 된다.
다음 회에서는 이 PBS를 팀 차원으로 확장한다. 동료가 서로의 안전을 챙기는 습관, 짧은 “한마디”가 어떻게 행동을 바꾸는지, 그리고 그 습관을 꺼뜨리지 않고 키워내는 리더의 기술을 이야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