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건설안전전문가의 시선] 산업재해, 처벌은 경고일 뿐… 예방이 답이다
- 경각심 제고와 기업 책임 유도, 그러나 현장 반발도 고려해야 - 처벌도 중요하지만 업계 현실을 반영한 지원과 제도 병행 필요 - 사고를 막는 것을 넘어 안전을 경영의 핵심 가치로 삼아야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산업재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구조적 안전관리의 미비, 예방 의지 부족, 책임 회피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힌 사회적 참사다. 반복되는 산재 사망 사고는 이제 개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산업현장에서의 죽음은 예측 가능했고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다. 그렇기에 산업재해를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는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재해 감축을 국가적 과제로 천명하며, 강도 높은 예방 중심의 대책을 지시했다. 대통령은 산업재해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며 노동자의 생명권 보호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과징금 부과, 공공입찰 자격 박탈, 금융 제재, 신고 포상금 지급 등 다양한 제도적 대응이 제시되었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책임을 원청에 집중시키는 계약 관행 개선도 추진되고 있다. 2030년까지 산재 사망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건설안전특별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논의 중이다.
예방과 처벌, 두 축이 함께 가야 한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있어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산업재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처벌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강력한 처벌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책임을 묻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산업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이다. 예방과 처벌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작동해야 하는 두 축이다.
사전 예방은 산업재해 감축의 핵심이다. 안전교육의 내실화, 위험요소에 대한 선제적 점검, 안전설비 투자 확대, 현장 노동자와의 소통 강화는 모두 예방의 영역에 속한다. 기업이 안전을 비용이 아닌 필수 경영 요소로 인식하고,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제거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이러한 예방 활동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하며, 현장 중심의 점검과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데이터와 기술이 바꾸는 안전관리
예를 들어, 산업재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험 진단은 고위험 업종과 지역을 중심으로 통계 분석을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선 지원 대상 사업장을 선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기업에는 안전평가보고서를 제공하고, 이는 금융기관과의 협력이나 신용평가 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지원은 중소기업이 안전을 경영의 핵심 가치로 삼고 지속가능한 안전환경을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첨단 디지털 기술의 활용도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5G 특화망 등은 위험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안전모 착용 여부나 붕괴 위험을 영상 센서로 분석하고, 제조업에서는 작업자가 기계에 끼일 경우 즉시 전원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실증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기존의 인력 중심 안전관리 체계를 보완하며 예방의 정확성과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노동자의 참여가 산업재해 예방을 완성한다
산업재해 예방은 제도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 노동자의 안전의식과 참여 역시 핵심 요소다.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도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고는 발생한다. 안전모 착용, 보호구 사용, 위험요소 신고 등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다.
정부와 기업은 근로자가 안전을 ‘의무’가 아닌 ‘권리’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 관리자와의 수평적 소통, 실효성 있는 체험형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안전은 모두의 책임이며, 산업재해 예방은 현장 구성원 모두가 함께 실천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처벌은 최후의 장치, 현실 반영 없는 제도는 반발을 부른다
동시에 사고 발생 시에는 명확한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작동해야 한다.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안전관리 실패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이는 사회 전체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기업이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도록 유도하는 수단이 된다. 대통령이 제시한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제한, 과징금 부과 등의 조치는 이러한 처벌의 일환으로,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단기간에는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처벌 중심의 정책은 영세한 중소기업에게는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기업들은 법적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서류 작업에 집중하게 되고, 이로 인해 실제 현장 안전은 오히려 소홀해질 수 있다. 특히 건설업계는 “건설 현장 특성상 완벽한 사고 예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통령의 강경 지시가 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공 공사 입찰 자격을 영구 박탈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공공 공사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건설사는 없다”는 현실적 반발이 나오고 있다. 낮은 영업이익률을 고려할 때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처분은 기업의 존폐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러한 반발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산업현장의 구조적 특성과 경영 현실을 반영한 목소리로 이해해야 한다. 정책은 현장의 실태를 반영할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갖는다. 따라서 정부는 처벌 중심의 제도 강화와 함께 업계의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제도 설계와 지원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안전은 문화이자 경영의 핵심 가치다
산업재해 예방은 단순히 사고를 막는 것을 넘어, 안전을 조직문화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게 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 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 노동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산업재해는 예방 가능하며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전 예방과 사후 처벌이 서로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안전은 현장의 문화이자 제도의 결과다. 정부, 기업, 노동자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실천해야 할 공동의 과제다. 균형 잡힌 접근과 현장 중심의 정책 설계만이 산업재해를 근본적으로 줄이고 지속가능한 안전사회를 실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