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국회 문턱 통과… 산업안전 강화인가, 혼란의 서막인가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며 산업현장과 법·제도 전반에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 확대, 경영상 쟁의 인정 등 내용을 담고 있으며, 노동권 보장과 산업안전 강화라는 기대 속에 경영계의 우려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정책 배경과 정치적 맥락
이번 개정안은 2023년 12월 윤석열 정부 당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된 바 있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해당 법안 통과에 찬성 입장을 밝혀왔다. 정권 교체 이후 노동정책의 기조가 전환되며 법안은 다시 추진되었고, 지난 7월 28일 국회 환노위 문턱을 넘으며 본회의 통과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정부는 이 법안을 "대화 촉진법", "상생의 법", "진짜 성장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은 이번 개정을 통해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 구축"과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마련"이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란봉투법 주요 내용과 취지
특히 이번 개정안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통한 위험 작업 외주화 문제에 제도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안전 강화와도 연결되는 법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항의해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모아 보낸 사건에서 유래했다. 공식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 개정안으로, 핵심은 다음과 같다.
● 사용자 정의 확대: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
● 노동쟁의 대상 확대: 정리해고, 통폐합 등 경영상 결정도 쟁의 대상에 포함
● 손해배상 책임 제한: 불법 파업 시 개인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는 조항 신설
고용노동부는 개정안이 산업현장의 갈등을 줄이고,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주체와의 대화 경로를 제도화함으로써 노사 협력 기반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영훈 장관은 개정안의 핵심을 "권한과 책임의 일치"라고 강조했다. 특히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조차 할 수 없었던 현실을 개선하고, 원청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교섭 책임도 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제도 시행 전까지 노사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명확한 판단 기준과 지침, 교섭 절차를 마련하고, 노사 자율을 존중하되 제도적 후견인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법원과 노동위원회가 기존에 고려한 원청 사용자성 판단 기준을 토대로 사례별 가이드라인도 준비할 예정이다.
경영계: “과도한 법적 책임‧경영권 침해 우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다수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원청이 모두 수용해야 한다면 이는 명백한 경영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형사 리스크와 손해배상 책임이 커지면 기업 활동은 위축되고 해외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 또한 "수십 개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는 대기업이 각 노조와 개별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행정적 부담과 법적 혼선 가능성을 지적했다.
외국계 기업을 대표하는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도 "모호하고 확대된 사용자 정의는 법적 명확성을 해치고, 형사처벌 조항과 결합할 경우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ECCK는 "노조 상대방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교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외투기업에게 심각한 리스크"라며, 이번 개정안이 국내 고용시장과 투자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며 재논의를 촉구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정부는 "원청이 모든 하청과 교섭해야 하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실질적으로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 지배‧결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사용자로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교섭 절차도 현장 의견 수렴과 전문가 논의를 통해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해외기업의 철수 가능성 등 ‘코리아 리스크’ 제기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유럽의 공급망 실사법처럼 책임 있는 경영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이번 개정은 국제사회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법제 정비라는 점을 강조했다.
노동계: “실행력 확보와 해석 일관성이 관건”
민주노총은 "이번 개정은 노동자의 손발을 묶었던 낡은 법제를 고치는 첫걸음"이라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실효적 실행 체계, 사법부 해석의 일관성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개정안이 뿌리 깊은 하청 구조를 개선해 위험 작업 전가나 고용 불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도 크지만, 실질 사용자 판단 기준이 불명확할 경우 오히려 법적 분쟁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플랫폼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포함한 노동계 전반에서도 권익 신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개정안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교섭 창구 확대에 걸맞은 구체적 지침과 현장 적용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시민사회단체는 “개정안이 제 역할을 하려면 실효적 집행력, 사법 해석의 일관성, 노사정 대화의 재정립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개정안의 손해배상 제한 조항이 무조건 면책이 아닌, 민법상 '정당방위' 개념과 유사한 조건부 조항임을 강조하며, 자율과 책임의 균형 속에서 교섭 문화 정착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전망: 정착의 조건은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이 개정안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본회의 통과 가능성도 주목된다. 그러나 실제 제도 정착을 위해선 사법 해석 기준, 현장 가이드라인, 노사정 간 사회적 합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는 "입법 이후 시행까지의 기간은 대화와 조율, 타협의 시간"이라며, 매뉴얼과 지침을 마련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고 법 적용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노란봉투법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제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노동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