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에너지의 그림자… ESS 화재와 제도 공백

2025-07-24     김단아 기자
[AI 생성 이미지] 본 이미지는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가상 이미지임. 실제 사고 현장이나 관련 시설과 무관함. /ⓒ 세이프티퍼스트뉴스(생성 책임자: 김단아), FREEPIK AI 활용.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 ESS(에너지저장장치)는 이제 친환경 기술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2024년 5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발생한 대형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와 같은 사고는 ‘친환경’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중대한 위험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미 환경보호청(EPA)이 슈퍼펀드법(CERCLA)을 적용해 정화 책임을 명확히 묻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안전과 함께 가지 않는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놀라운 것은 이런 일이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역시 2017년 이후 20건이 넘는 ESS 화재가 발생하며 유사한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 ‘탄소중립’과 ‘그린에너지’가 국가적 과제로 자리 잡은 지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술이 앞서가는 속도만큼 우리의 안전과 책임 시스템은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가?

 

2024년 5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게이트웨이 에너지 스토리지(Gateway Energy Storage) 시설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단순한 사고로 보기 어렵다. 약 14,796개의 니켈-망간-코발트 리튬이온 배터리가 설치된 이 시설에서는 초기 화재 발생 이후에도 5월 28일까지 간헐적인 재발화가 이어졌으며, 이는 ESS의 열폭주 현상 및 재점화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해당 사고를 중대한 환경 재난으로 판단하고 슈퍼펀드법(CERCLA)을 근거로 회사 측에 직접적인 정화 조치를 명령했다. 이 조치는 단지 오염 정화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유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 기준 수립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EPA 퍼시픽 사우스웨스트 지역 책임자인 Josh F.W. Cook은 보도자료를 통해 “녹색 기술이라는 용어만으로 환경 영향을 면제할 수 없다”며 “ESS 화재로 인해 노출되는 유해 물질은 특히 소방관 등 응급대응 인력에게 심각한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사고 이후, 일부 소방관은 호흡기 증상과 화학물질 과다 노출 증세를 호소했으며, 인근 주민들 역시 대기 중 유해물질 농도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슈퍼펀드법(CERCLA)의 구조와 이번 사례의 적용 방식

슈퍼펀드법(CERCLA: Comprehensive Environmental Response, Compensation, and Liability Act)은 유해물질로 인한 환경오염 발생 시, 책임 당사자에게 정화 의무를 부여하는 미국의 환경책임법이다. CERCLA의 핵심은 네 가지 요건이다. ▲유해물질 존재 ▲누출 또는 누출 가능성 ▲정화 비용 발생 ▲법적으로 책임을 질 당사자의 존재. 이 요건이 충족되면 EPA는 해당 당사자에게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법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 소급적용(Retroactive): 법 시행 이전 행위라도 책임이 부과됨

▶ 공동 및 분할책임(Joint and Several): 하나의 당사자가 전체 정화비용을 부담할 수 있음

▶ 엄격책임(Strict Liability): 고의성이 없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

사고가 발생했던 게이트웨이 에너지 스토리지는 해당 부지의 소유 및 운영 주체로서 PRP(Potentially Responsible Party)로 지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 화재로 손상된 배터리의 안전한 제거·포장·운반 및 폐기

▶ 작업 중 환경 모니터링 및 유해물질 누출 감시

▶ 지역 주민 및 근로자 보호 조치 수립

▶ EPA 및 지역 소방당국과의 지속적인 협력 및 보고

이처럼 슈퍼펀드법은 사고 이후 단기적인 대책을 넘어, 중장기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도구로도 기능하고 있다.

 

 

국내 ESS 화재 원인 및 현황 비교

한국에서도 ESS 화재는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2017년 전북 고창의 태양광 연계 ESS 화재를 시작으로, 2021년까지 산업통상자원부 기준 총 28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다. 그중 60% 이상이 충전 중에 발생했으며, 대부분은 고온 상태에서의 열폭주, 셀 단락, 냉각장치 오류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분석됐다.

 

2019년 민관합동조사단은 ESS 충전율을 80%로 제한하고, 운영이력 기록 강화, 블랙박스 설치, 보호장치 점검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충북 청주, 경북 안동 등에서 잇달아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2024년 청주의 한 ESS 화재는 인근 전력공급에 일시적인 차질을 일으켰고, 주민 대피까지 이어질 정도로 심각했다.

 

또한, 한국전력의 상업용 ESS 일부는 고장과 화재 우려로 운영률이 90%대에서 20% 수준까지 하락했다. 일부는 영구 설비정지 또는 철거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ESS 산업의 신뢰성에 타격을 주고 있으며, 보급 속도 둔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술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정책적 대안

ESS 화재는 단지 기술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 원인을 추적해보면 시스템 설계, 설치, 운영, 제도 미비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려 있다. 따라서 기술 향상과 더불어 제도적 보완이 병행되어야 실질적인 안전이 확보된다.

 

미국은 CERCLA와 같은 법을 통해 사고 이후 기업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이에 상응하는 환경책임법이 부재한 실정이다. 일부 사고의 경우, 화재 이후 보상 책임이 불분명해 피해자가 장기간 법적 분쟁에 시달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 ESS 안전 인증기준 고도화: 국제 수준의 화재 저감 설계 기준 도입

▶ 운영중단 자동 신고 의무화: 이상 징후 발생 시 즉시 행정기관 통보

▶ 충전율·온도 통합 제어시스템 구축

▶ 안전 시스템의 이중화: 단일 장비 고장 대비

▶ 보험·책임 제도 강화: 사고 발생 시 기업이 책임 회피 못하도록 법적 구속력 확보

또한 ESS 제조사와 운영 주체 간의 책임 분담 구조를 명확히 하여 실제 사고 발생 시 대응 주체가 모호해지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있다.

 

 

ESS 화재 대응에 대한 국제적 시사점

ESS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기술이다. BloombergNEF는 2030년까지 글로벌 ESS 설치 용량이 약 1테라와트시(TWh)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호주,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ESS 화재 방지 및 확산 방지 대책을 마련 중이다.

 

예를 들어 호주는 ESS 설치 시 셀 간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여 화재 확산 시간을 지연시키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일본은 ESS 설계 시 모듈 간 방화벽 설치를 의무화했다. 유럽 일부 국가는 ESS 시설 인근에 자동 스프링클러 시스템 및 독성가스 감지기를 필수로 두고 있으며, 인공지능 기반 화재 예측 시스템도 도입 중이다.

 

국내 ESS 화재 사례들은 기술, 설치, 운영, 관리 모든 단계에서 안전 취약점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미국 샌디에이고 사례처럼 화재 후 정화 책임을 묻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역시 초기 설계부터 예방 중심의 안전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충전율 관리, 자동 감지 시스템, 보호장치 설치 의무 등 제도적 보완 없이는 재생에너지 전환의 명목 아래 또 다른 환경·안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진정한 ‘안전한 친환경’ 전환은 기술만이 아니라, 제도와 감독, 책임문화 강화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