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전문가 되기 75부 - 유출계수 왜곡, 엔지니어는 사기꾼이 아니다

2025-07-14     이종탁 자문 위원
ⓒ이미지-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생성 책임자: 김희경), Gammas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엔지니어는 사기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안전을 무시하고 위험을 숨긴 채 오직 이윤만을 좇아 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특히 사업주에게 의뢰받은 일을 처리할 때, 그들의 이익을 위해 기술적 양심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급경사지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고 있다. 인허가를 쉽게 받기 위해 원지형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업을 밀어붙인다고는 하나, 부지 안에는 5~6미터에 달하는 단차가 곳곳에 존재한다. 이렇게 경사가 급하고 단차가 큰 지역에 아무런 보강 없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는 것은 듣기만 해도 불안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우수 유출량 산정을 위한 유출계수에 산지 기준인 0.4를 적용한 점이다. 언뜻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기 전의 이야기다. 사업이 진행되면 부지의 90% 이상이 태양광 패널로 덮이게 된다. 말 그대로, 거대한 지붕이 생기는 셈이다. 지붕의 유출계수는 0.9에 달한다.

 

유출계수란 비가 내렸을 때 지표면으로 흘러나가는 물의 비율을 의미한다. 계수가 0.4라는 것은 내린 비의 60%는 땅속으로 스며들고, 40%만이 지표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반면 0.9는 빗물의 90%가 땅 위로 흘러간다는 의미다. 결국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면 유출수는 기존보다 2.25배나 증가하게 된다. 그럼에도 유출계수 0.4를 적용한 채 배수시설을 설계한다면, 용량 부족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일부 검토서에서는 이런 문제를 마치 없는 듯이 덮는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더라도 원지반이 그대로 유지되니 산지 값을 적용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하거나, 패널 위에 떨어진 빗물이 어차피 원지반으로 흘러내리니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태풍이나 집중호우 시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수시설 용량을 초과한 물이 지표면으로 흘러내리면서 토사가 유실되고, 하류 지역이 침수되며, 심지어 기초가 유실돼 시설 자체가 붕괴되기도 한다.

 

이 모든 재앙은 유출계수 변화에서 시작된다. 태양광 패널, 즉 거대한 지붕 위에 떨어진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지표면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유속은 더욱 빨라지고 유량도 증가한다. 이로 인해 토사가 쓸려 내려가고 기초가 드러나면서 결국 시설이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이러한 문제를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사실을 숨기는 순간, 그 어떤 대책도 무력해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올 때 엄청난 사고로 이어진다. 피해는 발전시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류 지역 주민들까지 고스란히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나 사업주의 이익을 위해 말장난으로 이를 덮으려는 이가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는 사기꾼이다. 최소한, 사기꾼은 되지 말자.

 

이종탁의 생각정원: http://blog.naver.com/avt17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