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청’ 신설 법안 발의… 정부는 ‘2차관 신설’ 중심 조직개편 검토

- 박주민 의원 “독립 기구 통한 체계적 대응 필요”… 전문가 “외청 한계, 고용부 본연 기능 강화해야”

2025-07-11     김희경 안전보건 전문기자
ⓒ이미지-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생성 책임자: 김희경), Gammas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산업재해의 구조적 예방을 위한 전담 기구 설치 필요성이 다시 공론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은평갑)은 지난 9일, 산업안전보건청을 고용노동부 산하 외청으로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하는 독립 기구를 통해 정책의 일관성과 대응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구조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제안됐다.

 

박 의원은 “현재 산업안전보건 업무가 고용노동부 내부 여러 부서에 분산돼 있어, 정책 추진의 일관성 부족과 현장 대응 지연 등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OSHA), 영국의 보건안전청(HSE)처럼 독립 외청을 통해 전담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제22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노동자 보호 공약을 반영한 것으로, 기존 산업안전 제도 밖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자영업자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박 의원은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는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악순환을 끊고,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드는 국가적 책임의 출발점”이라며, “산업재해의 구조적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노동환경 조성을 위한 기초”라고 말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2023년 기준 2,016명으로, 하루 평균 4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상황이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 광주 아파트 붕괴, 이천 물류창고 화재, SPC 평택공장 끼임 사고 등은 제도 밖 사각지대의 위험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산업안전 관련 조직 개편 방향은 박 의원의 법안과 다소 거리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예방 및 사후 책임 강화를 위한 전 부처 차원의 대책을 종합해 정리하라고 지시하며, 제도 개편 필요성은 인정했으나, 산업안전보건청 신설보다는 고용노동부 내부 기능 강화 방안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고용노동부에 2차관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현재의 1차관이 기획·고용 정책을 담당하고, 새로 신설되는 2차관이 노동·산업안전·근로감독 전반을 총괄하는 구조다. 이는 산업안전 문제를 노동정책과 함께 다루려는 통합적 접근 방식으로, 조직 간 협업성과 정책 연계성 확보에 중점을 둔 설계다.

 

애초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도 검토됐으나, 산업안전 문제는 단일 부처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고용형태·노동시간·노사관계 등 다양한 요소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별도 외청보다는 노동행정 내 통합적 운영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정부 내부에서 제기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맥락은 산업안전 전문가들의 시각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박두용 한성대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정부조직의 부·처·청 구조에서 입법권이 없는 청은 실제로는 허수아비 조직이 되기 쉽다”며, 청 설립이 조직 분리의 상징성을 넘어서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박 교수는 “산업안전은 점점 노동시간, 고용형태 등 노동 전반의 구조적 요소와 얽혀 있는 분야”라며, 이런 상황에서 산업안전을 고용노동부 밖으로 분리하는 것은 오히려 시대 흐름에 역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1980년 이전, 보건사회부 외청으로 존재하던 노동청 시절을 예로 들며 “당시에는 비록 제도적 기반이 미약했지만, 탄광노동자와 영세사업장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적 고민이 분명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시기 노동부가 경제부처로 재편되면서, 산업안전 정책은 대기업 중심으로 옮겨가고, 영세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실상 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제2차관제를 도입하든, 산업안전보건본부를 만들든, 중요한 것은 고용노동부가 노동안전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제대로 된 직제와 조직구조를 갖추는 것”이라며, 형식적 분리보다 실질적 기능 강화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산업안전 행정체계 개편 논의는 단순한 조직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안전을 어떤 정책 철학과 조직 구조 아래 둘 것인가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박 의원의 법안이 현행 구조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는 가운데, 정부의 조직개편안, 전문가들의 현실 진단과 함께 보다 심층적인 제도 설계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