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지키지 않는 안전수칙"… 기업들의 실천형 안전문화 전략

- 교육은 늘 하는데 왜 사고는 반복될까? 행동을 유도하는 ‘실천형 안전문화’로 전환 중인 기업 현장 사례들.

2025-06-03     신준영 대학생 기자
 ⓒ 이미지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생성 책임자: 신준영), Dereamina(AI이미지)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산업현장에서는 종종 “교육은 늘 했는데, 왜 또 사고가 날까”라는 자조 섞인 말이 들려온다. 이는 단지 근로자들의 불만이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이 반복되는 안전사고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현장에서는 단순히 규정을 전달하거나 반복적인 강의만으로는 실제 ‘행동’까지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산업재해는 안전 수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산업안전 교육과 캠페인은 여전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근로자들이 이를 수동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방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일부 기업들은 최근 산업안전 전략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단순히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접근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몰입형 VR 체험, 참여형 포인트 보상제, 안전 실천 브랜드 캠페인 등 행동의 변화를 설계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산업현장의 안전문화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본 지에서는 기업들의 실천형 안전문화 전략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안전 문화, 이제는 ‘행동’을 설계해야 할 때

현대자동차 자사 유튜브 채널 '현대자동차'에서 공개한 '바로제로 런칭' 동영상의 한 장면/사진-현대자동차

“지식이 아니라 습관이 안전을 지킨다.” 사고 원인의 상당수는 안전 수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다는 분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산업안전 캠페인과 교육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수동적으로 따르게 하는 방식에 머물고 있다.

 

정흥준 외 연구진(산업안전보건연구원, KOSHA)은 “현재 산업안전 교육에서 노동자는 ‘문화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인식되고 있다”며, “근로자와 관리자가 함께 문화 조성의 핵심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안전 문화의 실천 주체를 기업 내부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로 확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기업들이 안전 문화의 ‘실천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려는 시도들이 주목받고 있다. 현장에서 도입되고 있는 실천 중심의 안전문화 전략은 다음과 같은 사례들로 구체화된다.

 

 

‘바로제로’, 노사 합동의 실천 브랜드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 안전체험관에서 한 직원이 VR 기기를 활용해 안전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CJ대한통운

현대자동차는 노사 공동 선언을 바탕으로, ‘바로제로’라는 안전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바로제로’는 ▲안전 수칙은 ‘올바로’ 지키고, ▲위험 요인을 발견하면 ‘바로’ 동료와 공유하며, ▲위험 요소는 ‘제로(0)’로 만든다는 뜻을 담는다.

 

슬로건 “안전은 바로, 위험은 제로”는 작업 시작 전 구호로 사용되고, 현장의 안전모·안내판 등에도 적극 반영된다. 또한 캐릭터 ‘바로’와 ‘제로’는 근로자에게 안전을 친숙하게 각인시키고, 일상 속 실천을 유도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VR 안전 체험관, 몰입형 훈련으로 사고 대응력 향상

HD현대중공업, 안전포인트 제도/사진-HD현대중공업

CJ대한통운은 경기 광주시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에 국내 최대 규모의 ‘VR 안전 체험관’을 개관했다. 지게차, 컨베이어벨트, 도크 등 물류 현장의 고위험 시나리오를 VR로 몰입 체험하면서, 체험자는 본능적인 사고 대응력을 기를 수 있다.

 

낙상, 협착, 화재 등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터 위를 걸으며 체험하고, 심폐소생술·자동심장충격기 교육도 병행 운영된다. 경영진이 먼저 체험한 뒤 전 직원으로 확대되며, “몰입을 통한 학습이 안전 내재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안전 행동에는 보상, ‘HD안전페이’로 안전 행동 참여 유도

HD현대중공업 HI-SAFE 우수과제 경진대회/사진-HD현대중공업 기업블로그

HD현대중공업은 카카오페이와 협력해 모바일 안전 포인트 제도 ‘HD안전페이’를 도입했다. 근로자는 모바일 앱을 통해 ▲위험성 평가, ▲안전 제보, ▲점검, ▲교육 등에 참여하면 실시간 포인트를 받는다. 포인트는 카카오페이 포인트로 전환해 현금처럼 사용 가능하고, 협력업체 직원도 참여할 수 있어 외연 확장의 기반이 되고 있다.

 

“즉각적인 보상이 안전 행동을 생활화하는 데 결정적”이라는 기업의 설명처럼, 이는 실천 중심 문화로의 전환을 겨냥한 전략이다. 

 

이와 더불어 직원이 스스로 찾는 위험 요소, Hi-SAFE 개선 활동도 진행중이다. HD현대중공업은 또한 ‘Hi-SAFE’라는 직원 주도의 개선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024년엔 총 239건의 개선 과제가 접수돼 8개월간 활동이 진행됐으며, 이 중 12건은 사내 경진대회를 통해 발표됐다.

 

대상 수상은 해양 설비 탑사이드 설치 작업의 위험을 줄인 공법 개선 사례로, 협소·고중량 환경에서의 위험도를 현격히 낮춘 결과다. 이 외에도 전사적 안전 리스크 공모전 등 다층적인 참여형 활동이 병행되어, 사고 대응을 ‘예측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지식을 넘은 실천, 기업이 행동을 설계할 때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 기업은 근로자가 안전 행동을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행동을 설계’해야 한다.

 

브랜드로 기억하고, VR로 체험하며, 포인트로 보상하고, 제안으로 개선하는 이 흐름은 그런 전환의 시작이다. 안전은 지식이 아니라 습관이다. 그리고 습관은 설계될 수 있다. 조직이 어떤 행동을 일상으로 만들 것인가, 그 설계 능력이 기업 안전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 참고문헌: 정흥준 외, 『노사 참여를 통한 안전문화 확산 방안』,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22, p.86-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