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은 도입됐는데, 안전검사는 옛 기준 그대로
- 복합설비 시대, 경직된 기준으로는 대응 불가 - '인증을 위한 인증'이 아닌, '사고를 막는 인증'으로 - 제도보다 느린 현장 대응...검사기관도 손 놓고 있다 - 이제는 실질 효과를 보는 성과지표 중심으로 가야 할 때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AI·로봇·자율주행 설비가 속속 도입되는 생산현장. 그러나 이를 통제할 안전 기준은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인공지능(AI), 협동로봇,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장비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현행 안전인증 및 검사제도는 여전히 규격 중심의 정적인 기준에 머물러 있다. 복합설비와 신기술 장비에 대한 실질적인 안전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대기업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20대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는 인터록(Interlock) 등 기본적인 방호장치 설치 및 안전수칙 준수를 통해 예방 가능한 산업재해였으며, 기존의 '명목상' 안전기준이 실제 현장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러한 문제를 반영하여 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24년 『안전인증 및 안전검사 제도의 효율적 운영방안』 연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 연구는 기존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냉철히 짚는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지금의 제도가 빠르게 진화하는 산업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새롭게 등장한 협동로봇, 자율주행 운반기, 스마트혼합기 등 복합설비들은 기존의 정적기준과 항목으로는 분류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기술기준은 보다 유연하게 개정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하며, 제·개정 절차 역시 보다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된 제언이다.
국제 표준과의 괴리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은 민간 중심, 성능 중심의 인증체계를 통해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안전을 확보하고 있으나, 국내 제도는 여전히 규격 기준 위주의 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출 현장에서는 인증비용 이중부담, 수입설비의 국내 적용 시 기준 불일치 문제 등이 반복되고 있다.
현장에서 실제 사고와 가장 밀접한 영역인 위험성평가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연구에서는 평가자의 자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평가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 교육과 정기 평가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험성평가가 단순한 서류작업이 아닌 실질적 예방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 개선을 실행할 주체인 인증·검사기관의 역량도 도마에 올랐다. 현재 기관 간 기준이 상이하고 인력 부족 문제가 만연해 있으며, 일부 기관은 위기 상황(면허정지 등)시 대응 방안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전문성 확보를 위한 인력 교육, 업무 분산 체계, 복합인증 대응 조직 마련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 절차 이행에서 벗어나, 제도의 실제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성과지표 중심의 운영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인증과 검사를 '했느냐'가 아니라 '사고를 얼마나 줄였는가', '위험요소가 실제 제거되었는가'로 측정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연구는 단순한 제도 개선안을 넘어, 실질적인 사고 예방 효과를 내기 위한 인증·검사체계의 방향성과 실행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유연한 기술기준, 전문성 기반의 평가 체계,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 확보, 성과지표 중심의 운영전략은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한 핵심 과제로 지목된다.
현장의 기술은 이미 2025년 수준에 도달했지만, 제도는 여전히 2005년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현행 체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안전장치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그로 인한 비용은 사고와 생명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인증을 위한 인증’이 아닌, 현장에서 작동하는 안전관리 체계로의 전환을 경고하고 있다. 경영진과 안전관리자는 인증·검사 제도가 실제로 안전 확보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 참고문헌 :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안전인증 및 안전검사 제도의 효율적 운영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