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뒤흔든 대형재난사고 15부 – 포항 지진, 인재(人災)의 경고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2017년 11월 15일 14:29 포항에서 규모 5.4의 최악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최근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은 2016년 9월 12일에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지진이었다. 하지만 포항지진은 경주지진의 피해 규모를 훨씬 능가했다. 경주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부상 23명에 재산 피해 110억 원에 달했지만, 포항지진은 부상 92명, 재산 피해액 670억 원에 이르렀고, 주택 파손 1,208채, 이재민 1,797명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경주지진은 수평면상을 이동하는 주향 이동 단층 운동인데 반해, 포항지진은 서쪽 지반이 동쪽 지반을 타고 올라가는 역단층 운동이었기 때문에 피해 규모가 훨씬 컸다. 포항지진은 다음 날 예정되어 있던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연기시켰다.
지진의 강도는 규모(magnitude)와 진도(intensity)로 표현한다. 규모란 진원지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크기이며, 진도는 측정 지점에서 땅이 흔들리는 정도를 뜻한다. 지진의 규모와 진도는 비례하지만, 지진을 유발하는 에너지가 매우 커도 지진의 진원지가 지하 깊은 곳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규모에 비해 진도가 크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진 에너지의 크기를 뜻하는 지진의 규모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데, 규모에는 리히터 규모(ML)와 모멘트 규모(Mw)가 있으나 보통은 리히터 규모를 사용한다. 반면, 땅이 흔들리는 정도를 뜻하는 진도는 국가별로 서로 다른 값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미국과 같이 계급 수가 12등급으로 구성된 수정 메르칼리 진도(MMI, Modified Mercalli Intensity) 등급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본과 대만은 계급 수가 8등급인 일본 기상청(JMA) 진도 계급을 사용한다.
그 밖에 진도에 대한 표기를 중력 가속도(9.8㎝/s²)를 기준으로 하여 중력 가속도의 배수로 표현하는 최대지반가속도(PGA, Peak Ground Acceleration)와 최대지반속도(PGV, Peak Ground Velocity)로 표기하기도 한다.
포항지진은 진앙지에서 2.6km 떨어진 곳에 있던 지진계에서 PGA 0.58g의 매우 강한 중력 가속도를 관측하였는데, 이것을 일본 기상청 진도(JMA)로 환산하면 5강~6약에 해당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진도 5강~진도 6약 정도의 지진이면,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서도 매우 강한 편이다. 2018년 포항지진과 비슷한 진도의 오사카 지진이 발생하였을 때, 지진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는 일본에서도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포항지진이 이렇게 강력한 지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사망자가 없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포항지진이 경주지진에 비해 규모가 작았지만 피해가 더 큰 원인 중 하나는 포항이 원래 동해에 잠겨 있다가 퇴적지층이 융기하면서 형성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지진파는 퇴적층을 지나가면서 지진파가 증폭되는 특징이 있다. 지진파가 부드러운 퇴적 지형에 닿으면 지진파는 갇히게 되지만, 에너지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느리지만 큰 진동을 일으키는 증폭 효과가 나타난다. 같은 해인 2017년 9월 19일에 발생하여 366명이 사망한 멕시코시티 지진의 피해 규모가 컸던 이유도 멕시코시티가 퇴적층 지대에 세워진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지진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부분이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지구는 지각, 맨틀, 외핵, 내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 내부의 가장 바깥 부분은 암석권(lithosphere)과 연약권(asthenosphere)의 두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석권은 지각과 식어서 굳어진 최상부의 맨틀로 구성되며, 그 아래의 연약권은 점성이 있는 맨틀로 구성된다. 따라서 암석권은 연약권 위에 떠 있는 형국이다. 암석권은 판이라고 불리는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데, 지진은 이 판들이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포항지진이 발생한 다음 해인 2018년 4월에 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고려대학교 이진한 교수팀의 논문이 실렸는데, 이 논문은 곧 매우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다. 이 논문은 포항지진의 발생 원인으로 넥스지오에서 시공 중이던 지열발전소를 지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열발전은 땅속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는 열에너지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은 기후에 큰 영향을 받지만, 지열발전은 1년 365일 24시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구 내핵의 온도가 6,000℃의 고온이며, 지하 1km씩 내려갈 때마다 25℃씩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열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인류의 모든 에너지 문제는 모두 해결될 것이다. 지열발전은 크게 고온 열수 발전(DD, Direct Dry), 저온 바이너리 발전(BC, Binary Cycle), 지열 저류층 생성 발전(EGS, Enhanced Geothermal System)으로 나눈다.
먼저 고온 열수 발전은 전 세계 지열발전의 90%를 차지하는 발전 방식으로, 지하 2~3km에 있는 고온의 지열 저류층까지 시추공을 뚫고, 땅 위로 솟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주로 화산지대가 많은 일본이나 아이슬란드에서 사용한다. 저온 바이너리 방식은 고온 열수 발전 방식보다 지열수의 온도가 낮은 경우에 사용한다. 지열수의 온도가 180℃ 이하로 낮기 때문에, 지열수로 직접 터빈을 돌리지는 못하고, 지열수를 이용하여 프로판, 펜탄, 암모니아 등의 2차 유체를 증발시켜, 고온·고압으로 변한 2차 유체가 터빈을 구동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지열 저류층 생성 발전(EGS)은 지열온도가 바이너리 발전보다 더 낮을 경우 사용하는 방식으로, 한반도 지형에 적합한 발전 방식이다. 100℃ 이상의 고온 암반층까지 구멍을 뚫고, 이곳에 인위적으로 물을 주입하여 수증기를 만들어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보통 화산지대는 3km 정도만 시추하면 되지만, EGS 방식은 4~5km까지 시추해야 하기에 심부 지열 발전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유타주에 세계 최대의 2GW급 EGS 발전소를 2024년에 착공하기 시작했으며, 독일과 프랑스에는 이미 8개소의 EGS 지열발전소가 운영 중이다.
에너지가 부족한 한국은 2010년 정부가 166억 원을 넥스지오에 투자하여 지열발전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은 그동안 화산지대가 아니어서 지하에서 충분한 지열을 얻을 수 없었지만, EGS 기술이 개발된 이후 지열발전을 상용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국의 후보지를 물색한 결과 인천 석모도, 포항, 제주도, 광주가 후보지로 선정되었지만, 광주는 업체와 시의 의견 차로 인해 사실상 중단되었고, 최종적으로 포항만 추진되었다. 넥스지오는 지열발전소를 건립하기 위해 지질자원연구원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물을 주입하기 위해 지하 4km 깊이까지 구멍을 뚫었다. 하지만 시추 장비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굴착 파이프가 도중에 부러져 시추공을 막는 일이 발생하자, 중국의 시추업체인 청두웨스턴과 장비 회수 및 시추공을 복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EGS 지열 발전은 물을 주입한 뒤 지하에서 발생한 뜨거운 증기를 끌어올려 발전하는 것인데, 얼마나 많은 양의 증기를 생산해 내느냐가 발전 사업의 관건이다. 넥스지오는 청두웨스턴과 시추공 복원외에 일정한 증기량 달성을 기준으로 공사 계약서를 별도로 체결했다. 계약의 골자는 많은 유량이 생산될수록 청두웨스턴이 더 많은 돈을 받는 구조였다. 지열발전에서는 생산성이 있는 유량 기준은 60㎏/s 수준이다. 계약서에 의하면, 청두웨스턴은 물 주입 후 생산 유량이 60㎏/s을 넘을 경우 3,590만 달러(404억 원)를 넥스지오 측으로부터 받도록 되어 있었다. 유량이 100㎏/s을 초과할 경우, 인센티브 명목으로 100만 달러(11억 원) 이상을 더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생산 유량이 40㎏/s에 못 미칠 경우, 업체가 받는 돈은 2,670만 달러(300억 원)로 줄어드는 구조였다.
넥스지오는 2012년 9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지하 4,217m를 시추하여, 2015년 12월에는 주입정을 완료하고 2016년 1월부터 물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청두웨스턴이 시추를 완료한 후, 물을 주입하기 시작한 이후 유량은 기대치에 크게 못 미쳤다. 2016년 당시 사업 보고서 등을 통해 확인된 생산 유량은 8㎏/s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지열발전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청두웨스턴이 단지 더 많은 유량을 생산하기 위해 지하에 주입하는 물의 압력을 계속 올렸다. 이로 인해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물을 주입하고 배출하는 과정에서 63회의 유발 지진이 발생했다. 그중 규모 2.0 이상의 지진은 총 6차례나 되었고, 마지막 주입 시점인 2017년 4월 15일 결국 규모 3.2의 지진이 발생했다.
사고 발생 4년 전인 2013년 9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미래창조과학부에 하나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지열 발전으로 인해 많은 미소지진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큰 규모의 지진이 유발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KISTI는 유럽 지역 41개 지열발전 사례를 분석했다. 그리고 관정부근 수압이 침투할 수 있는 단층이 있을 때, 미소지진 발생이 증가할 수 있으며, 결정질 암반에 물이 주입되는 경우 모두 미소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KISTI는 포항의 과거 50년간 지진 발생 기록을 검토하고, 활성단층 유무를 조사할 것과 미소지진의 규모 등을 실시간으로 계측할 것을 정부 측에 권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6년 지진 문제로 사업을 중도에 포기한 스위스의 바젤 발전소는 시험 가동 당시 296bar의 압력으로 물을 주입한 뒤,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하자 시추공을 막고 정밀 조사를 벌인 끝에 사업을 중단했다. 반면, 청두웨스턴은 251bar로 시작해, 나중에는 바젤 발전소보다 3배 더 높은 최대 892bar의 압력까지 물을 주입했다. 지진의 원인이 인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생했음이 밝혀지자, 지진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벌였다. 정부는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접하고도 묵살했고, 피해자들에게 법정 이자까지 포함해 2조 원에 달하는 위자료를 지급해야 했다. 넥스지오는 2018년에 파산하였다.
포항지진은 인간이 만들어낸 재해였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은 지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지구대기행성과학부 윌리엄 프랭크 교수는 폭우나 폭설과 같은 이상 기후가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2020년 이전에는 이렇게 지진이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2020년 이후 지진 발생 빈도도 증가했고, 규모도 훨씬 커졌다.
이상 기후가 지진 발생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다. 비나 눈이 내리면 지반을 이루는 토양과 암석의 틈을 채우는 공극수에 가해지는 무게가 커져 공극수의 압력이 커진다. 그 여파로 지진파가 토양을 통과할 때 속도가 느려진다. 포항지진의 피해 규모가 컸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반면, 빗물과 눈이 증발하거나 사라지면 공극수에 가해지는 무게가 줄어든다. 이에 공극수의 압력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지진파의 속도도 빨라진다.
2024년 1월, 일본 노토반도에 내린 폭설이 그 사례였다. 규모 7.6의 강진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후 폭설이 내렸다. 보통 지진은 본진이 발생하고 여진이 이어지다가 소멸하는 패턴을 보이지만, 노토반도의 지진은 뚜렷한 주진 없이 작은 지진이 계속되는 지진군(earthquake swarm)의 형태로 이어졌다.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은 대부분 과거에는 없었던, 인간이 만들어낸 위험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를 짓기 위해 산을 깎아 내리면서 산사태가 발생했고, 전기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산업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한 2020년 ESS 사업은 잦은 화재 사고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위험 관리 기술은 항상 신기술 발전에 후행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동안 인류는 여러 종류의 위험 속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들을 발전시켜 왔지만, 이제부터는 경제적 논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기준에서 기술과 위험을 동시에 관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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