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뒤흔든 대형재난사고 9부 – 고양 저유소 화재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2018년 10월 7일 일요일 오전 10시 56분경,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 있는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 사고는 송유관공사 설립 이래 처음 일어난 사고일 뿐만 아니라, 저유소 화재 자체도 처음이었으며, 그렇게 큰 규모의 유류 화재도 최초였다. 화재 규모가 어찌나 컸던지 서울 한강 이북은 물론, 한강 이남과 김포, 부천 등지에서도 검은 연기 구름이 관측되었다.
이날 화재 진압을 위해 동원된 인력은 소방관 414명을 포함해 총 684명에 달했으며, 현장에 동원된 펌프차, 화학차, 무인 파괴 방수차 등 각종 소방 장비와 헬기 등 민간에서 지원된 장비까지 포함하면 161대가 넘었다. 연소 물질은 휘발유였고, 탱크 직경은 28m가 넘었으며, 화염의 온도는 1500℃를 넘어섰다.
화재로 인한 복사열이 너무 강해 소방차는 탱크 가까이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고작 100m 떨어진 곳에서 물대포만 쏠 수 있었다. 사실상 화재 진압이 어려워 휘발유를 모두 태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다른 탱크로 화재가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여수와 울산 등의 정유 공장에서 저유소를 연결하는 1,200㎞에 달하는 송유관과 판교, 고양, 원주, 천안, 대전, 전주, 광주 등의 저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판교 저유소가 가장 커서 3억 1,300만 리터를 저장할 수 있다.
고양 저유소는 지하 1개소, 옥외 19개소 등 총 20개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14개가 유류 탱크이다. 14개의 탱크에는 휘발유, 경유, 기타 혼합유까지 모두 합쳐 7,738만 리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유류가 저장되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탱크는 460만 리터의 휘발유가 저장된 지름 28.4m, 높이 8.5m, 두께 60cm의 휘발유 탱크로, 510만 리터 용량에 440만 리터의 휘발유가 저장되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는 동안 130만 리터를 다른 탱크로 옮겨 실제 손실량은 330만 리터였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휘발유 46억 원, 탱크 2기 건설 비용 69억 원, 기타 보수 비용 2억 원을 합쳐 총 117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한 탱크는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었고, 약 3.5m만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주변에 휘발유 탱크 3기가 인접해 있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인접한 탱크로 화재가 확대될 경우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잔디에 불이 붙은 것이 문제였지만, 휘발유 탱크가 지중에 묻혀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만약 지중탱크가 아니었더라면, 엄청난 열기에 의한 복사열로 인해 인접한 탱크까지 연소 확대되어 대재앙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사고의 진행 단계
사고 원인은 풍등이었다. 2018년 10월 6일, 탱크 터미널에서 800m 떨어진 인근 초등학교에서 풍등을 날렸고, 이 풍등이 인근 건설 공사장에 떨어졌다. 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이 풍등을 주워 날렸고, 그 풍등이 300m 떨어진 탱크 터미널에 떨어졌다.
화재 발생 전날, 사고 탱크에 휘발유를 충진하는 작업이 이루어져 탱크가 85%까지 채워졌다. 휘발유를 채웠기 때문에 평소보다 많은 유증기가 발생했고, 이 유증기가 통기관을 통해 외부로 배출되었다. 경인지사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휘발유의 비중이 3.5로 공기보다 무거웠기 때문에 인화성 유증기가 저장탱크 주변에 머무르기 쉬운 여건이었다.
화재의 경과
풍등은 대한송유관공사 저장탱크 시설 내부에 떨어져, 바싹 마른 잔디에 착화되었다.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는 추석맞이 지중탱크 상부에 식재된 잔디 예초 작업을 실시했는데, 풀을 깎은 뒤 건초더미를 그대로 탱크 주변에 방치했다. 잔디에 붙은 불은 경사면을 따라 빠른 속도로 탱크 상부로 번졌고, 통기관을 통해 배출된 유증기에 점화되었다.
탱크 지붕에는 둘레로 통기관 9대, 중앙에 화염 방지기 1대, 그리고 유류 레벨 측정기 1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휘발유와 같은 인화성이 강한 물질은 인화 방지망뿐만 아니라 화염 방지기까지 설치되어 있어야 했지만, 통기관에는 화염 방지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인화 방지망은 화염의 크기와 온도를 분산시켜 화염이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지만, 휘발유와 같이 인화성이 큰 물질의 화염 침투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설치된 인화 방지망의 관리도 부실하여 일부는 찢어져 있었고, 틈이 벌어지거나 나사가 풀린 부분도 있었다.
탱크 상부의 779㎥ 공간에는 휘발유 유증기가 채워져 있었다. 통기관을 통해 들어온 화염은 휘발유 유증기에 착화되었고, 밀폐계 증기운 폭발(Confined Vapor Cloud Explosion)이 발생했다. 이 폭발로 인해 25톤 무게의 저장탱크 지붕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약 5초 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증기운 폭발의 위력은 TNT 239kg이 폭발한 것과 같았다.
저장탱크 내에 설치되어 있던 폼 챔버와 플로팅 루프가 충격을 받아 손상되었으며, 그 결과 탱크에 설치된 폼 소화설비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 폭발이 발생한 후 2분 25초가 지나, 복사열로 인해 옆에 있던 저장탱크에서도 증기운 폭발이 일어났다.
다행히 인접 탱크는 상부 지붕이 폭발과 화염에 의해 약 5m 들린 후 제자리로 떨어져, 질식 소화되었다. 하지만 지붕이 날아간 사고 탱크는 계속해서 산소가 유입되며 큰 화염에 휩싸이고 있었다. 화재 초기에는 출동한 소방대와 폼 챔버에서 분사된 폼 소화 설비에 의해 진화되는 듯했으나, 화염이 다시 발생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저수조 수원(1,200㎡)이 고갈되어 폼 챔버 분사가 중단되었고, 플로팅 루프(floating roof) 일부가 저장탱크 벽면에 걸쳐 있어 분사된 폼액이 완벽하게 화재 유면을 덮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충분히 수원을 확보하고 폼 소화 설비의 분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면, 화재를 조기에 진압할 수도 있었지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 결과 17시간에 걸친 긴 소방 진압 활동에 돌입하게 되었다.
계산에 따르면, 지름 28.4m의 저장탱크에서 휘발유 연소 속도는 55g/㎡·s로, 휘발유 460만 리터가 모두 연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6시간이다. 실제 측정된 연소 하강 속도는 저녁 8시경 0.30m/h였으며, 9시경에는 0.42m/h로 연소 하강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연소 속도가 빨라지며 불기둥 높이는 평균 35m였고, 최대 50m까지 치솟았다.
화염에 의해 저장탱크 내부 온도는 약 1,500℃ 이상으로 상승했으며, 고온의 화염이 계속될 경우 저장탱크 하부의 금속 재질 맨홀과 배관이 파손될 위험성이 높았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소방대는 탱크 하부에 연결된 배관을 이용해 저장된 휘발유를 빼내고, 그 자리에 물을 채우는 진압 작전을 전개했다.
탱크 하부에는 유류를 옮기거나 빼내는 배관들이 설치된 지하 공동구가 있었다. 화재 진압과 동시에 탱크 하부에서는 휘발유를 빼내는 작업이 진행되어, 휘발유 177만 리터가 다른 탱크로 옮겨졌다. 일정량의 휘발유 이송 작업이 끝나자, 안전한 연소가 이루어지도록 물을 주입해 휘발유를 상부로 밀어 올렸다. 물을 주입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와류 현상이 생겨 불길을 키울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압을 조금씩 올려가며 물을 주입했다.
휘발유의 인화점은 -20℃, 발화점은 550℃이며, 경유의 인화점은 50℃, 발화점은 210℃이다. 휘발유는 경유보다 점화원이 있을 때 불이 붙기 쉬운 반면, 점화원 없이 불이 붙는 온도는 경유보다 오히려 높다. 따라서 휘발유 탱크에서는 중질유에서 발생하는 보일오버(Boil over)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보일오버(Boil over) 현상>>
유류 탱크 화재 시, 유면에서 고온층이 확대되며 고온층이 하부에 가라앉아 있던 물을 급속히 가열해 비등시킨다. 이로 인해 비등한 물이 체적 팽창을 일으켜 상층의 유류를 탱크 밖으로 밀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비점이 다른 성분을 지닌 혼합물을 보관한 저장탱크, 특히 원유나 중질유 탱크에서 화재가 발생할 때 나타난다.
그 결과, 휘발유 266만 3천 리터의 연소로 화재는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화재는 탱크 1기에만 국한되었으며, 사고 발생 후 16시간이 지난 10월 8일 새벽 4시 32분에 완전히 진화되었다.
화재 발생의 5가지 원인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한 외국인 노동자가 날린 풍등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는 저유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00m 떨어진 곳에서 풍등을 날렸고, 이로 인해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한 의원은 "이 노동자가 제갈량처럼 동남풍을 불게 만든 것도 아니고, 또 드론처럼 저유소로 날아가게 조종한 것도 아닌데, 구속영장은 지나치다"는 의견을 SNS에 남겼다. 사회적 약자에게 구속영장이 지나치다는 여론이 확산되자, 검찰은 혐의와 인과관계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이 노동자는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벌금을 완납한 후 스리랑카로 돌아갔다.
화재의 근본적인 문제는 유류 저장소의 안전 관리 문제였다.
1. 탱크 주변 사면 관리 문제
외국인 노동자가 날린 풍등은 탱크 저장 시설 내부에 떨어져 잔디에 불이 붙었다. 마른 잔디에 옮겨 붙은 불은 경사면을 따라 빠르게 진행되었고, 통기관에 체류된 유증기에 착화되었다. 원래 유류 저장탱크는 방류벽을 설치하고, 바닥과 벽체를 저장물질이 스며들지 않는 콘크리트 등의 내화성 물질로 설치해야 하며, 탱크 주변에는 마른 풀과 같은 가연성 물질이 없어야 한다.
일반 석유화학 공장들은 유류 탱크 하부나 주변에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자갈을 깔거나 콘크리트 포장을 해 풀이 자라지 않도록 한다. 마른 풀밭에 불이 붙으면 탱크가 폭발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터미널은 사면의 풀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잔디를 심어 화재를 자초했다.
2. 화재 초기 감지 문제
유류 저장소 관계자들은 잔디에 붙은 불을 18분 동안이나 파악하지 못하고 방치했다. 화재가 발생한 탱크 주변에는 총 25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화면이 작아 잔디에 붙은 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또한 사고 당일 중앙 통제실에는 4명의 근무자가 있어야 했지만, 경찰이 CCTV를 통해 확인한 결과 사고 당시 근무자는 1명뿐이었다.
더불어, 잔디에 붙은 불이 탱크 내부로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온도를 감지하여 경보를 발하는 알람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만약 잔디에 붙은 불을 신속하게 발견하여 조치했거나, 탱크 내부 화재를 초기에 감지해 폼 소화 설비를 작동시켰더라면 이와 같은 대형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3. 공정 안전 관리 문제
고양 저유소는 PSM(Process Safety Management) 사업장이었다. PSM은 위험 설비를 보유한 사업주가 설비로부터 화재 및 폭발이 발생해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안전 관리 제도이다. 국내 PSM 제도는 1995년 1월 5일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되어, 1년 유예 기간을 거쳐 1996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PSM 사업장은 화재, 폭발, 누출 등으로 인한 중대 산업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하고 제출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안전보건공단의 심사 및 확인을 받아야 한다.
고양 저유소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PSM 심사 시 많은 부적합 사항들이 발견된 사업장이었다. 그중 하나는 9개의 통기관에 화염 방지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4. 소방 설비 문제
잔디에 붙은 불이 탱크 내부로 확대되었음에도 내부 온도 800℃에서 울려야 할 알람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으며, 저유 탱크에 두 개나 설치된 폼 소화 설비도 작동하지 않았다. 송유관공사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7일 오전 11시경 공사 상황실 직원이 폭발음을 듣고 폐쇄회로 CCTV로 현장을 확인한 후 폼액 소화 장치 작동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미 **콘 루프(Cone Roof)**가 날아가면서 폼 헤드 설비가 고장난 후였기 때문에, 1시간 반 동안 6,000리터를 방사할 수 있었던 폼액은 방사되지 않았다.
폼 소화 설비의 오작동으로 인해 내용물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화재 감지기와 폼 소화 설비를 연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처럼 화재 경보 장치가 고장나 운전자가 탱크 내 화재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폭발로 인해 루프가 날아가면서 폼 소화 설비 방사 장치가 고장날 수 있기 때문에 폼 소화 설비는 반드시 화재 감지기와 연동하여 자동으로 방사되도록 조치했어야 했다.
만약 화재 감지기의 오동작이 문제였다면, 신뢰도 높은 화재 감지기를 설치하거나 교차 감지 시스템을 도입하여 신뢰도를 높였어야 했다.
5. 화염 방지기 문제
여름철처럼 탱크 주변 온도가 높아지면 탱크 내부 온도도 상승하여 체적이 팽창하게 된다. 이때 통기관을 통해 탱크 내부의 인화성 유증기가 배출되며, 외부 화원에 의해 착화될 위험이 생긴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 화염 방지기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269조에는 화염 방지기의 설치에 대한 규정이 있으며, 통기관에 화염 방지 기능이 있는 통기 밸브가 설치되어 있거나, 인화점이 38℃에서 60℃ 사이인 물질에는 인화 방지망을 설치한 경우 면제된다. 경유처럼 휘발성이 낮은 물질은 인화 방지망으로도 충분하지만, 휘발유의 인화점은 -43℃이기 때문에 인화 방지망으로는 화재를 방지할 수 없으므로 화염 방지기를 설치해야 한다.
4년 전 점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되어 화염 방지기를 설치하라고 권고받았지만, 탱크 중앙에만 1개의 화염 방지기가 설치되었고, 9개의 통기구에는 설치되지 않은 채 문서만 위조되었다. 이곳은 반지하식 탱크로, 사면을 따라 지속적인 화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액봉식 화염 방지기를 설치해야 했다.
액봉식이 아닌 화염 방지기는 역화(불꽃이 거꾸로 진행하는 현상) 위험이 높다. 화염 방지기는 가연성 가스가 있는 곳으로 화염이 유입되어 화재나 폭발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로, 화염의 진행 경로에 여러 겹의 미세한 금속망을 설치하고 그 폭발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보강판을 추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반지하식 탱크이므로 일반 화염 방지기 대신 액봉식 화염 방지기가 더 적합하다. 액봉식 화염 방지기는 소염 소자를 사용하지 않고, 통기관 끝부분을 액체에 담가 화염이 내부로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이다.
고양 저유소 화재 사고는 2005년 12월 11일, 영국 런던 외곽에 위치한 번스필드 유류탱크 터미널(Buncefield Oil Tank Terminal) 화재의 재판이었다. 다행히도 소방대의 적극적인 화재 진압 작전 덕분에, 번스필드 유류 저장탱크 화재처럼 20기가 모두 연소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탱크 1기에서 그쳤다.
화재 발생의 5가지 원인 중 단 하나라도 제대로 방호 조치가 이루어졌더라면,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거나 초기에 진화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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