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식혁명 3부- 사고를 부르는 한국의 고맥락문화

안전에 대한 정보전달은 짧고 분명해야 한다.

2020-10-22     김훈 자문 위원

 아래 그림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미술관인 라이크스 미술관(Rijks Museum )에 있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 )의 그림이다. 

그림 속에서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은 젊은 여자의 젖가슴을 빨고 있다. 루벤스가 이런 외설적인 그림을 그릴 리는 없고, 그림의 배경이 되는 스토리를 이해하면 감동적인 그림이기도 하다. ​

ⓒFile:Pieter van Mol (Attr.) - Roman Charity.jpg/이미지 출처- commons.wikimedia.org 

 이 그림의 제목은 로마인의 자비(Roman Charity)이고 부제는 Cimon & Pero이다. 루벤스는 기원전 3세기에 로마에 살았던 철학자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의 이야기에서 그림의 소제를 따왔다. 

옛날 로마에 시몬이라는 노인이 있었는데, 중죄를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 방식은 아사형(餓死刑)이었다. 이 노인에게는 페로라는 딸이 있었는데 페로는 마침 출산 직후라서 아버지를 면회할 때마다 간수들 몰래 아버지에게 젖을 먹였다. 이러한 딸의 행동은 왕까지 전달되었고 페로의 효성에 감동한 왕은 시몬을 석방시켰다. 이처럼 이 그림을 이해하려면 그림의 소재가 된 이야기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T.Hall)은 민족과 국가마다 "고맥락(high-context) 문화와 저맥락(low-context) 문화가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서양과 동양은 세계관과 문화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서양이 저맥락문화 사회라면 동양은 고맥락문화 사회에 속한다. 서구문화는 합리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며 개인주의적 정서가 주를 이루었다면, 동양 문화는 추상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집단주의적 정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서양인들과 한국인들의 문화차이

대화를 할때 한국인들은 먼저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설명한 후에 본론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본론부터 꺼내고 나중에 상대의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한다. 



동양문화에서는 집단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장기적이며, 영구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반면, 서양문화에서는 일을 위해 일시적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의사소통방식에 있어서도 동양인들은 비언어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며, 모호한 메세지를 즐겨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고맥락 문화권의 문제점

 


 고맥락 문화권에서 의사소통방식은 명확하게 기호화된 메세지가 없고, 대부분이 물리적 상황이나 사람들속에 내면화되어 있다. 하지마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많은 정보들이 명확하게 기호화되어 있으며, 메세지도 상대가 알아듣기 쉽고 간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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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를 들어 동양인 남자와 서양인 여자가 나누고 있는 대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동양인: 내일 내가 시간되면 가보던지 할께
서양인: 도대체 무슨 말이야 간다는 거야, 안간다는 거야?
동양인: 아니 상황을 보면서 알아서 한다는 건데 참 거시기 하네 
서양인: 가면 언제간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도대체 네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우리의 고맥락문화를 대표하는 단어가 바로 거시기이다. 원래 전라도 사투리였던 것이 이제는 표준어가 된 단어이다. 

 

<거시기의 사용의 예>

    아따 그 거시기 있잖냐.
    어? 저거 거시기 아녀? 
    기분 참 거시기 허다.

   거시기혀! (사랑해), 
   시방 쪼깨 거시기헌디! (좀 맘에들지 않은데), 
   거시기헐래?(죽을래), 
   거시기혔냐?(밥먹었니?), 
   거시기안허냐?(안자니), 
   오메 거시기혀!(널 죽도록 미워해),
   오메 거시기혀.(널 죽도록 사랑해)

 '거시기'에 대해 네이버사전을 검색해보면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아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나와 있지만, 우리는 이 단어를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등 다양한 품사로 모두 사용한다.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할만큼 한국인들의 언어습관은 핵심적인 메세지를 가장 나중에 말하며 주어와 목적어를 잘 생략하는 경향이 높다. 서양인들이 한국말을 배울 때 '얘네는 왜 이렇게 말을 애매하게 말하고 불분명하지?' 하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에는" 얘네는 뭘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다 일일이 따져가면서 말하지?" 한다. 

 


고맥락 문화권 나라들은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아랍, 남유럽, 라틴 아메리카 등이며, 저맥락 문화는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의 순이라고 한다.

 

 말콤 그래드웰의「아웃라이어」라는 책에는 1997년 8월에 발생했던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가 나온다. 그 사고로 탑승자 254명 중 228명이 사망했다.

 사고원인은 조종사의 피로 누적, 기상악화, 기술적 원인 등이었지만, 말콤 글래드웰은 이 사고의 원인으로 한국의 고맥락문화를 지적하며 한국인의 지나치게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조직문화가 안전을 해쳤다고 말한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항공계는 위계질서가 매우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양의 경우 메세지는 매우 분명하고 한국처럼 애매모호하지는 않다. 


당시 사고 비행기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고, 게다가 폭우가 쏟아져 내려 하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공항에는 비행기를 안내하는 착륙유도장치인 글라이드 스코프(glide scope)까지 고장난 상태로 조종사는 육안으로 착륙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장이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자 대지와 충돌된다는 대지접근경보장치가 울리기 시작했고, 부기장도 접근실패를 기장에게 알렸지만 기장은 착륙을 강행했다.

 

 나중에 수거한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부기장은 충돌에 직면한 상황에서 분명한 메세지를 기장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완곡어법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착륙을 강행한 기장의 잘못이 컸지만 강하고 분명한 메세지를 전달하지 못한 부기장의 잘못도 매우 컸다. 

 

사고 이후 대한항공은 조직내 경직된 군대문화를 유화시키기 위해 군출신의 조종사보다 민간인 출신의 조종사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직문화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어서 이후에도 비슷한 유형의 항공사고들이 계속하여 발생하였다.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한국의 특성도 한국의 고맥락문화에 일조를 했지만, 짧은 기간동안에 압축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에서 세대간의 격차는 이 고맥락 문화의 문제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고, 세대간의 의사소통의 불능은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

 


예전에 직장상사가 내게 "내 마음 알지?" 하는 묻는 분이 있었는데, 나는 그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알수 없는 법이다. 내가 알고 있다고 다른 사람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 말라. 

 

안전에 대한 정보전달은

짧고 분명해야 한다.

 괌추락사고 당시의 부기장이 이를 정확하게 지켰더라면, 228명은 지금도 생존해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세계화되어 있고 지구촌이라 할만큼 마을의 개념이 확장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의사소통도 방식도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바뀌어야 한다. 이는 불분명한 의사소통이 낳는 사고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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