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건설안전전문가의 시선] 건설 사고발생 원인, 제대로 알아야 처방 가능하다 (3부)

- 설계자 권한과 책임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필요 - 적절한 설계대가와 설계기간 산정하고 이행 강제화 필요 - 발주자 눈치보기, 설계의 재하도급 금지를 위한 제도개선 필요 - 설계안전보건대장, 설계안전성검토(DFS), 실효성 확보 노력 필요

2023-11-21     최명기 자문 위원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근로자 안전을 비롯하여 제3자에 대한 안전이나 구조물 안전측면에서 설계는 매우 중요하다. 안전하고 정밀한 설계를 통해 최대한 사고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의 이면에는 설계적인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설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안전을 무시한 부실설계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렇지만 시공의 문제점이 너무 크게 부각되어 설계적인 요인은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측면이 있었다. 

 

설계자들은 사고 발생 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설산업의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여러 가지 편법과 꼼수를 써 왔다. 예를 들면 설계도서나 시방서 등에 안전을 고려한 정밀한 설계도면 작성과 지켜야 할 준수사항을 명확하게 제시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현장 여건을 고려해서 협의할 것’과 같은 단서들을 달아놓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공사를 진행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설계자들은 시공사 탓을 했던 경향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안전설계를 위해 향후 설계자의 책임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설계자들이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부실설계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이러한 요인을 개선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악순환은 되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부실설계가 이루어지는 요인 중 대표적인 것은 설계대가가 너무 적고, 설계기간도 충분치 않다는 현실적 한계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런데 기본부터 흔들리다 보니 제대로 된 안전설계가 이루어지기는 요원한 실정이다. 발주자는 적절한 설계대가와 설계기간을 산정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발주자들이 이런 사항을 이행하도록 강제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부실설계가 이루어지는 요인 중 두 번째 요인은 설계자들이 발주자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는 점이다. 계약관계상 설계자들은 갑을 관계에 따라 발주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는 없는 위치에 존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공학적이고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발주자의 의도에 맞추어 싼 값에 빨리 공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당연히 안전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고 경제성과 작업성에 치중한 설계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발주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설계전문가의 입장에서 안전하고 기술적으로 타당한 설계를 할 수 있는 권한 부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발주자와 설계자들에게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강하게 부여할 필요가 있다.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부실설계가 이루어지는 요인 중 세 번째 요인은 설계의 재하도급과 이로 인한 역량 저하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설계과정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재하도급의 문제는 안전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시공과는 다르게 설계에 대한 재하도급에 대한 법적 규제는 현재 없는 상태이다. LH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서 보듯이 건축설계, 구조설계, 도면작성은 한 업체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각각 별도의 회사에서 수행되었다. 그러다보니 설계의 일관성과 상호 연계성 부족에 따라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결국은 사고로 이어지게 됐다. 설계의 재하도급은 설계의 안전과 품질을 담보하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설계의 재하도급에 대한 체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부실설계가 이루어지는 요인 중 네 번째 요인은 설계단계에서 수행되는 안전성 검토의 부실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건설공사의 경우 설계단계에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7조에 따른 설계안전보건대장 작성과 건설기술진흥법 제62조에 따른 설계안전성검토(DFS)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설계안전보건대장 작성은 총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인 건설공사가 대상이다. 반면에 설계안전성검토(DFS)는 안전관리계획 수립대상 공사가 대상이다. 실시방법은 두 가지 제도 모두 위험성평가를 기반으로 수행되고 있다. 유해위험요인을 도출하고 유해위험요인을 개선하는 방법이 주내용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제도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운영상에 있어서 일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설계안전보건대장이나 설계안전성검토(DFS) 보고서는 설계자들이 직접 작성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를 전문적으로 작성하는 외부 전문업체에게 일괄로 용역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설계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설계에서 유해위험 요소를 실질적으로 도출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는 없게 된다. 


해당 작업공종의 근로자와 안전전문가, 설계자, 시공전문가, 감리원, 발주자 등이 모두 참여하여 유해위험 요인을 도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계 도서를 분석하고 일정공간과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워크숍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공사관계자들에 의해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유해위험 요소를 도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설계기간 부족과 워크숍 운영에 따른 비용과 시간상의 이 유등으로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아웃소싱을 받는 외부 작성 전문기관에는 다수의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어 괜찮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전문기관이 몇 개나 될지는 사실 의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술사나 프리랜서 1인이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무수행 방법도 기존의 보고서를 복사해서 붙여놓기 식의 업무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대다수이다. 

 

이제부터라도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설계단계에서의 안전성 검토제도가 본래의 취지에 맞도록 운영 될 필요가 있다. 그저 누군가의 밥벌이로 전락해서는 더 이상 안 된다. 비록 1인 기업인 전문가가 외주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VE(설계 경제성 검토)처럼 워크숍 형태로 적극 운영될 필요가 있다. 워크숍을 통해  수행된 관련 내용은 보고서에 첨부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관계당국과 발주자들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추가비용과 추가 시간이 소요는 될 것이지만 보다 안전한 설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사항이다.  

 

힘들게 유해위험요인을 도출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한 계획이 계획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계획에 대한 철저한 이행이 동반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설계에서 반드시 위험요인을 제거하도록 공법 개선과 시공 시 주의사항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저 보고서 제작용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설계단계에서부터 안전하도록 위험요인을 저감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제는 설계자들도 관행적으로 해오던 습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보고용인 형식적인 안전성 검토 보고서를 더 이상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안전사고 감소를 위한 실질적인 안전설계와 안전성 검토를 하여야 한다. 정부도 설계자와 발주자에 대해 확실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그 이행여부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