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식혁명 52부- 현상유지 편향

2023-06-14     김훈 자문 위원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 춘추전국시대에는 수레의 폭이 각 나라마다 모두 달랐다. 수레가 여러번 지나간 자리에는 자리가 움푹패여 이 패인 자리를 따라 마차가 달렸는데, 나라마다 수레의 크기가 달랐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가면 마차의 바퀴를 갈아 끼워야만 했다. 각 나라마다 수레폭의 크기가 달랐던 이유는 타국의 침략에 대비하여 전차가 자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진시황이 통일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도 비슷했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표준궤(1435㎜)를 쓴다. 그러나 러시아와 스페인은 광궤(1520㎜)를 사용한다. 

유럽에서 기차가 처음으로 설치된 곳은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이었다. 1825년 영국 스톡턴 ~ 달링컨의 40km 구간에서 증기기관차가 처음으로 운행되었다. 조지 스티븐슨이 설계한 '로코모션 1호'였다. 이 증기기관차의 속도는 시속20km에 불과했지만 말이 끄는 마차보다 50배나 많은 짐을 운반했다. 표준궤는 영국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가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철도의 60%가 표준궤이다. 

 

ⓒ로코모션1호, 나무위키

나폴레옹이 유럽을 휩쓸던 시절 러시아는 천혜의 기후조건을 바탕으로 가까스로 프랑스를 막아내었지만, 이후에도 재침공을 해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만약 철도를 이용하여 대량의 병력과 무기를 실어 나르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러시아는 다시 풍전등화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러시아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 9288km구간에 표준궤 대신에 1520mm의 광궤를 깔았다. 스페인도 역시 프랑스를 의식하여 표준궤보다 폭이 넓은 1688mm의 광궤를 깔았다.

현재 프랑스와 스페인 구간은 표준궤와 광궤 모두가 달릴 수 있는 가변궤간 기차가 운행중이지만 한반도에서 유럽까지 철도로 연결된다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우리날의 표준궤를 광궤의 바퀴로 바꾸고, 유럽까지 가서 벨라루스에서 다시 한번 표준궤로 갈아 끼워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표준궤를 쓰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협궤열차도 있었다. 수원~인천 구간을 오가던 수인선이 대표적이다. 이 열차는 철도 폭이 762㎜로 표준궤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일제 강점기 시절 수탈을 위해 소금과 쌀을 실어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협괴열차는 수인선 말고도 수원과 여주를 잇는 총 연장구간 73.4km의 수여선도 있었다.

일본의 철도는 대부분의 협괴로 고속열차인 신칸센과 민간철도를 제외하면 철도폭이 1067mm인 협궤가 가장 많다. 협괴열차는 건설비용도 적게 들어 나무와 풀이 우거진 산꼴짜기 등의 험지에서 매우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툰드라 늪지대나 우랄 산간 오지에는 아직도 협괴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미국도 19세기 중반까지는 지역마다 철도폭이 달랐지만 남북전쟁 이후로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다.

 

ⓒ수여선 협궤열차의 승객들(사진출처:용인시박물관)

철도의 표준궤의 폭의 유래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학자들은 로마시대 전차를 끌던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이 표준궤의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2000년 마차를 끌었던 두마리 말의 엉덩이는 우주왕복선의 설계에도 영향을 미치된다. 2007년 8월에 발사된 엔데버호 로켓 추진체의 너비는 4피트 8.5인치였다. 엔데버에는 솔리드 로켓 부스터라고 하는 두개의 로켓 추진체가 붙어 있다. 이 추진체는 미 북부 유타에 있는 공장에서 제작되어 미 남부 플로리다 우주 발사기지까지 기차로 옮겨야 했는데 중간에 있는 터널을 통과하려면 이보다 더 크게 만들수 없었다. 현대 첨단과학의 상징인 우주선의 표준이 2000년전 두 마리의 말 엉덩이 크기로 결정된 것을 보면 인류의 문명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우주왕복선 엔데버, 나무위키

이러한 사례는 우리의 생활주변에서도 흔히 볼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QWERTY 자판은 일부러 자음과 모음을 섞어서 타자의 속도를 느리게 한 배열로 1868년 크리스토퍼 숄스가 특허를 낸 것이었다. 당시 소재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타자를 너무 빨리 칠 경우 키가 자주 부러지곤 했는데,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속도를 낼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것이 QWERTY 자판이다. 그러나 이후 소재기술이 발달하고 컴퓨터 자판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타자의 배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로 보다 효율적인 자판사용이 가능해졌지만,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익숙하고 친숙한 배열을 바꾸어 새로운 자판으로 보급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1932년 오거스트 드보락은 QWERTY 자판보다 훨신 낫고 능률이 좋은 드보락 자판을 개발했다. 하지만, 구형자판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QWERTY 자판과 드보락 자판

 

경로의존이론(Path Dependency)

​더 다니기 쉽고, 편리한 새로 생긴 지름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진 옛길로 돌아가는 현상을 경로의존이론(Path Dependency)이라 한다. 경로의존성은 한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한번 일정한 경로가 형성되면 그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나중에 더 나은 효율적인 다른 경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과거에 의존했던 경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경제학 용어로 고착효과이론, 자물쇠 효과(Lock in effect)라고도 한다. 이것이 기존 제품을 사용하던 소비자가 더 좋은 상품이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기존의 상품을 사용하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유사한 제품으로 쉽게 변경하지 않는다.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상품이 더 편리하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상품을 사용하기 위해 전환비용을 치루는 것이 싫어한다. 전환비용이란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포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선택할때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다. 새로운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상실되는 기존제품에 대한 기능과 서비스의 지각, 신제품이 기존제품에 비해 열등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 새로운 제품을 찾기 위해 드는 시간, 신제품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등이 전환비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제품에 적응하기 위한 수고와 비용이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비해 적다고 판단되면 기존의 경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어머니가 아들의 지저분한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하자 기존에 배치에 익숙했던 아들이 짜증을 내는 현상과 유사하다.

자물쇠 효과는 인간의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 때문이다. 현상유지편향이라는 용어는 월리엄 새뮤얼슨(Paul Samuelson)과 리처드 잭하우저(Zeckhouser)가 주장한 것으로, 사람들은 현재의 조건보다 특별하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조건에서 벗어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바꾸고자 하는 행동이 현재의 행동보다 특별하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다.

언어와 문화 등 일상적인 생활환경속에서 습관화된 행동들은 한번 각인되면 잘 바뀌지 않는다. 습관은 한정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인간이 최적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본능인데 습관은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각인효과(imprinting effect)라고 한다. 알에서 막 깨어난 오리가 처음 본 물체를 어미라고 생각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행동은 각인효과때문이다.

문화와 관습은 경로의존성이 매우 강한 분야이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재율이 높은 이유는 한국의 산업화 세대들이 급진적인 산업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고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태도와 자세는 바꾸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코로나 사태와 같은 뜻하지 않는 불가피한 환경이 필요하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부분의 회사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는데 코로나 사태가 해제된 현재에도 굳이 예전처럼 되돌아가지 않는 회사가 많다. 사무실 임대비용도 절감되었고, 화상회의가 별 불편함이 없자 새로운 경로의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수많은 대형 안전사고와 사건들이 발생하는 뜻밖의 환경속에서도 새로운 태도와 자세가 형성되지 못했다. 산업화를 300년 동안 이룬 유럽과 산업화를 30년동안 이룬 한국은 아직 유럽처럼 안전문화가 정착되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

 

문화라는 것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영국의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는 유능한 정치란 ​혁신과 변화라고 하는 한 축과 충격과 위기관리라는 또 다른 축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다. 바꾸어야 겠다고 강하게 마음을 먹는다고 쉽게 바꿔지는 것이 아니다. 의지가 강할수록 쉽게 꺽이는 법이며, 시작하자 마자 멈추게 되는 법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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