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로벤스 보고서를 통한 '자율 규제'의 맥락적 핵심 의미

2023-01-30     김훈 자문 위원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는 현재 0.43‱ 인 사고성 사망만인율을 2026년까지 OECD 평균 수준인 0.29‱까지 감소시키겠다고 선언하며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사망자수는 2080명이었고 사망만인율은 1.07‱이었다. 2022년 11월 30일에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2021년 국내 사고사망자는 828명이고 사망만인율은 0.43‱ 라고 했지만, 이는 사고성 사망자만 집계한 것이다. 질병사망자를 포함할 경우, 사망자는 2080명, 사망만인율은 1.07‱로 급증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산재통계 자료

보통 질병으로 인한 산재사망자의 수는 집계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수치는 통계상의 수치일뿐 실제 사망자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사고사망자만 고려할지라도 우리나라의 산재사망율은 현재 OECD국가 38개국 중에서 34위이다.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기업처벌법의 본래취지는 발현되지 못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의 사망사고는 오히려 증가했고, 여건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아예 안전관리를 포기하는 사태까지 버려졌다. 안전을 비용의 관점으로만 접근하고 생산의 부가적 요소로만 치부하는 그동안의 관행은 근로자를 보호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어 자율안전의 확립으로 이행이 미흡했다.

 

선진국은 이미 1970년대 부터 촘촘한 정부 규제와 처벌이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사전예방에 중점을 둔 노사의 자발적인 노력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노사가 함께 사업장내 존재하는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여 대책을 세우는 위험성평가 제도를 중심으로 자율안전체제를 확립하였고, 이를 계기로 중대재해가 획기적으로 감소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규제와 사후처벌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춰 4대 전략과 14개 핵심 과제를 중점적으로 다음과 같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시행의 배경이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4대 전략>

1.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2.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집중 지원 관리

3.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 문화 확산

4. 산업안전 거버넌스 재정비

 

ⓒ고용노동부

 

로벤스 보고서와 자율 규제

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로벤스 보고서를 이해해야 한다. 안전보건의 선진국이라 할수 있는 영국도 안전보건정책의 제정에 있어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에 직면해야 했다. 초기에 영국은 법 규정 제정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1960년대 말 영국은 9가지의 안전·보건 법률과 수많은 하위 규정들이 5개 부처와 9개 감독기관, 지방정부에 의해 중복관리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율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영국정부는 1970년 당시 석탄공사 총재로 있던 로벤스 경(Lord Robens)을 국가 안전관리개혁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로벤스의 역할은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혁방향을 모색하는 일이었다. 로벤스는 2년동안 영국사회 전 분야의 각종 안전관련 법률의 적용 실태 및 효과 등에 대해 연구를 실시하였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72년에 ‘로벤스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 주된 내용은 정부당국은 사업주가 지켜야 할 목표만 제시하고, 위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위험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위험을 처리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로벤스 보고서는 이 기본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산업안전 법률체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로벤스보고서의 주요 핵심은 ▲법규가 너무 많고 규제 의존이 심하고, ▲행정관할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고, ▲안전보건법규가 근로자 참여의 배제하고 있다는 3가지의 내용이었다. ​

1974년 영국 정부는 로벤스 보고서를 토대로 국가안전보건정책을 재수립했다. 기존에 법규정이 너무 세세하여 사업주가 지키기 어려웠던 9가지의 법률을 대신하여 산업안전보건법(The Health and Safety at Work etc. Act)을 제정했다. 노사정(HSC, health & safety commission) 이 참여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산업안전보건청(HSE,health&safety executive)을 만들었다.

 

이후 영국의 안전보건에 관한 법률은 업종별로 세세하고 구체적인 처방으로 되어 있던 이전의 법규로부터 완전히 탈피했다. 그 결과 목표와 원칙만을 제시하고, 실행규칙과 지침(codes of practice and guidance)으로 보완하는 유연한 형식의 통합된 법체계가 완성되었다. 영국은 산업재해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이러한 정책은 각 유럽으로 퍼져서 확산되었다.

 

로벤스 보고서가 담고 있는 핵심주제는 ​자율규제(self-regulation)였다. 여기서 영국정부가 강조한 자율이란, 첫째는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안전에 대한 책임은 감독기관인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만들어낸 당사자인 사업주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업자의 근로자 안전에 대한 의무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안전법규의 준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스스로 관리해야한다.

둘째는 작업의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노동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장의 상황과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입법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해당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그 일에 대한 위험성을 가장 잘알고 이에 대한 대책도 잘 알고 있다.

셋째는 영국정부가 말하는 자율규제는 법적인 규제를 완화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되 강제적인것이 아니라 기업스스로가 자율적으로 강화하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자율규제이다. 

2022년 11월 30일 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인 자율규제(self-regulation)를 이러한 맥락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전보건관리의 1차적인 책임기관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것이다. 
자율규제의 논리는 위험을 만들어내는 자가 위험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 자율은 기업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위험관리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통제·관리하고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책임 주체로서의 ‘자율(self)’을 말한다. 산업안전에 대한 규범의 내용을 타율적, 수동적으로 대응하거나, 사업주가 자신의 역할을 법적이 최소기준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능동적, 자발적으로 관리하라는 의미이다. 

둘째. 위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에 있는 근로자의 역할의 중요성이다.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확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사업장의 위험성을 가장 잘알고 있는 근로자 자신이다. 
근로자 스스로가 사업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고 그것을 이행하고, 감시하고, 검토하는데 전적으로 참여할수 있어야 사업장의 안전보건이 확보된다. 법령이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마지못해 행해지는 안전의 준수가 아니라 근로자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같은 노사 공동기구 설치를 확대해 사업장의 안전보건 사항을 논의해 결정하고 근로자 안전대표와 같은 제도를 통해 제대로 된 권한을 부여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근로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수 있고, 그래야 사업장내 건강한 안전문화정착이 가능하다. 

자율규제시스템은 오히려 법적인 규제수준 이상의 기준을 요구한다. 법적인 규정이란 최소한의 규정이다. 따라서 사업장에 위험수준이 높고, 여러가지 유해요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충분히 실행되지 못했던 위험관리를 스스로 강화하라는 의미이다. 경총이나 대한상의가 2023년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반발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때문이다. 자율규제가 요구하는 것은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높은 관심과 자원의 투입이다. 정부가 제정한 규범을 따르거나 그에 준하는 동종의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위험성평가를 통해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처벌 없는 자율규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율규제는 노동행정과 근로감독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사전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안전법령뿐만 아니라 승인된 자율규제의 내용도 함께 고려되고 불이행시 개선조치 및 시정조치가 이루어진다. 사망이나, 심각한 부상, 고의적이거나, 명백한 방치 등과 같은 일이 발생하였을때 강력히 처벌된다. 

노동부가 발표한 2026년까지 우리나라의 사고성 사망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0.29‱까지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이제 모든 기업이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란 ISO45001, KOSHA18001 등과 같은 형식적인 의미의 안전보건인증을 받는 것 등이 아니라,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며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자율안전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기업의 안전문화수준은 크게 3단계로 발전해 나간다.

1단계는 안전에 대한 표준 설정과 설비개선을 통한 기술적 관리이다. 
2단계는 최고경영자의 안전에 대한 의지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파악하여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의 구축이다.
3단계는 기술적인 관리와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의 구축과 같은 기술적 조치와 체계의 구성이 없더라도 직원 스스로 가 알아서 안전을 습관화하는 안전문화이다. 

사업주는 자율규제, 근로자는 남들이 뭐라하기전에 알아서 스스로 지키는 자율안전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계의 안전보건수준은 1단계에 있다. 2단계, 3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경영마인드가 바뀌어야 하고, 근로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주의 경영마인드 변화가 우선이다. 그것이 안되었기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한국의 기업들은 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인식한다. 사업주의 철학이 먼저 바뀌지 않는 이상 근로자의 자율안전도 구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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