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시사점 및 보완과제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중대재해처벌법'이 첫 시행되면서 사회생태계의 관심이 어느때 보다 안전보건에 집중되며 이슈를 불러 모았던 2022년을 보내고,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실행되는 2023년을 기업의 안전보건 실무자들은 지난해와는 또다른 근심과 걱정으로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30일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행복한 대한 민국’을 만들기 위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의 목표는 오는 2026년까지 사고사망 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0.290/‰(퍼밀리아드)로 감축하는 것으로 4대 전략과 14개 핵심 과제를 담고 있다.
로드맵의 4대 핵심전략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앱의 4대 핵심 전략은 ▲위험성평가 중심으로 기업의 「자기규율 예방 체계」 구축 의무화 및 중대재해 발생 시 책임연계, ▲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중소기업, 건설·제조업의 추락·끼임· 부딪힘 등 하청 사고 집중 지원, ▲ 근로자의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과 문화 확립, ▲ 중대재해 감축 정책의 효과성 제고를 위한 산업안전 전문기관 역량 강화 등 거버넌스 재정비이다.
로드맵의 발표 배경
로드맵의 발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지난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되었으나, 중대재해 감소 측면에서 당초 기대와는 다르게 법 시행전과 비교해 오히려 증가했다는 결과가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는 처벌 위주의 접근이 중대재해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음을 인지하고, 처벌 및 감독의 강화보다는 ‘자기 규율’과 ‘예방 역량 향상’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지를 표방했다.
하지만 로드맵의 세부 내용에는 사업장의 현장상황을 충분히 고려치 못하고 오히려 의무 이행과정에 부담이 가중되어,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도리어 많은 기업들에서는 중대재해 예방 측면에서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다른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만에 기업에게 면제부를 준 것이라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로드맵이 기업에게 마냥 면제부를 주는 것인지,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주요 핵심내용과 시사점, 보완할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세세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기규율 예방 체계, 과연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일까?
첫째, 자기규율 예방 체계의 핵심내용은 위험성 평가를 단계적으로 법제화 하고, 이를 중대재해 예방의 근간으로 삼아 산업안전감독 시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물론, 중대재해 발생 시에는 위험성 평가 수준과 연계하여 수사자료에 적시해 검찰·법원의 구형·양형 판단 때 고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 내용에 기업의 자기규율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처벌이나 감독같은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노조와 현장의 참여를 확대한다던가, 핵심 안전수칙 위반 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엄정 조치하겠다는 내용, 그리고 중대재해 발생 시 해당 사업장의 산재보험료 할증 등 사업주 처벌 및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 등이 상당수 포함된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그대로 존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로드맵마저 처벌 강화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고용노동부는 기업들로부터 로드맵의 발표 배경이 퇴색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고, 기업에서는 대응해야만 하는 실무업무(서류작업 등)의 폭증이 우려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근로자 참여 확대,, 안전문화 확립에 긍정적인 면만 있을까?
둘째, 근로자의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과 문화 확립의 핵심내용은 근로자에게 '안전은 권리이자 의무'라는 관점에서 근로자의 역할·책임을 명확화 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관리규정 작성 사업장 기준을 30인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또한, 원·하청 안전보건협의체에 협력사 근로자 의견제출권 부여 검토 등 근로자의 핵심 안전수칙 준수 의무를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해, 근로자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에 따라 포상과 제재가 연계될 수 있도록 표준 안전보건관리규정을 마련·보급하고 취업규칙 등에 반영하도록 지도한다는 것이다.
접근방법은 일부 공감이 가고 이상적이지만, 노조 참여의 확대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지 현장상황을 충분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법의 개정을 통한 안전수칙 미준수자에 대해 법에 의한 행정처분이 아닌, 취업규칙의 지도 정도를 하겠다는 것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에 의해 기준을 만들고 시행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노조가 강한 기업에서는 전혀 실효적이지 못하며, 안전조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중소기업의 부담 또한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용노동부가 실질적으로 책임있는 자세를 회피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벤치마킹은 눈으로 보이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처벌·감독의 강화 즉, 타율적인 규제의 한계를 언급하며 안전 주체들의 책임에 기반한 ‘자기규율’과 ‘예방 역량’ 향상을 기본원칙으로 접근했다는 점, 산업·기술 변화 등을 반영해 안전 보건기준규칙 679개 전 조항을 개정하고 중소기업의 중대재해 예방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접근을 했다는 점, 범국민적 안전문화 확산 및 민간 안전보건 전문기관의 육성을 포함한 거버넌스의 확충 등의 검토 배경 측면에서는 크게 공감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곳 저곳에서 졸속으로 검토되고, 기업의 환경이나 일하는 방식이 고려되지 못한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로드맵 수립 시 밴치마크였던 영국의 ‘로밴스 보고서’는 1970년부터 2년여간 6명의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정부산하에 위원회를 두고 국내외 183개의 개인과 조직의 의견을 반영해 탄생했다.
우리 정부도 제대로된 진단과 분석의 과정이 생략된 채 일부 결과만을 차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국이라는 나라가 안전보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방식을 밴치마킹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작금의 현실에서 정부는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발생되는 중소규모 사업장(5~50인)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도 내년 초(2024.1.27.~)로 다가오는 만큼, 새로운 의무부과와 정책방향이 보다 구체화 되어 중소기업에서의 혼란을 최소화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현행 법체계(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 없이 위험성 평가 의무화 등이 도입될 경우, 현재도 법규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입장에서는 실무업무의 폭증으로 예방 측면에서 주요 위험에 대한 현장점검과 조치를 하기보다 오히려 서류업무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중대재해 위험성은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존 법규는 그대로... 로드맵 발표!
도대체 기업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와 더불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정책입안자 및 집행과 감독자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자들은 경영층을 보좌하고, 사업주의 의무를 위임받아 현장에서 안전보건관리 업무를 실행하는 관리감독자 등에게는 지도 및 조언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사업주의 의무를 위임받은 관리감독자들의 경우 대부분 안전보건관련 전문적인 역량은 낮으며, 50인 미만 사업장은 제대로 된 안전보건관리자를 두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은 점점 많아 지고 존치하는 규제는 모호한 내용이 많으며, 준수해야 할 의무는 더욱 복잡해져 가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로 인해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기업의 관리자들은 현장에서 위험의 발굴과 개선에 방점을 두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시간을 쓰기보다, 사무실에서 서류 더미에 치여가며 사법리스크를 예방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