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식혁명 47부- 위험보상 이론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던 2020년 1월부터 3월,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마스크 대란으로 인해 홍역을 치뤄야 했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벌어져 돈을 주고도 못사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정부는 3월부터 5월까지 요일별로 마스크를 구매하는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다. 출생연도 끝자리를 기준으로 1, 6은 월요일에, 2, 7은 화요일에, 3, 8은 수요일에, 4, 9는 목요일에, 5, 0은 금요일에 구매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살수 있는 수량도 1주에 1인 10매로 구매를 제한하고 중복구매 확인시스템을 가동했다.
2020년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처음에는 KF94 이상 마스크 착용을 권장했다가 3월이 되자 KF80까지 확대했고, 나중에는 면 마스크도 괜찮다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가 비말로 전파된다는 것을 고려할때 5 μm 이상의 비교적 큰 입자인 비말(Droplet)을 차단하는데에는 면 마스크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아예 감염 의심자를 돌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했다. 결과론적으로 이러한 조치는 많은 감염환자를 발생시켰지만 WHO나 CDC가 마스크 착용을 강력하게 밀어부치지 않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만약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여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외출을 삼가하지 않을 것이고, 손씻기 등의 위생관리를 게을리하여 방역에 큰 위협이 될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안전행동의 결과가 긍정적일 경우 안전의식을 약화시켜 안전하지 않을 행동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위험보상이론(risk compensation theory)이다. 위험보상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스크항상성이론을 포함하여 펠츠만효과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펠츠만 효과
펠츠만 효과(Feltsman effect)는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샘 펠츠만(Sam Peltzman)이 1976년에 발표한 이론으로 안전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위험도가 오히려 더 커지는 이상한 현상을 말한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안전에 목적을 둔 정책이나 기술이 오히려 위험을 높일 수도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은 미식축구가 매우 안기있는 스포츠이다. 매우 거칠고 과격한 운동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과격한 운동은 아니었다. 미식축구가 지금처럼 거친 스포츠가 된것은 플라스틱 헬멧의 등장이후부터였다.
미국 내셔널 풋볼 리그(NFL,National Football League)는 헬멧의 등장으로 선수의 치아를 비롯하여, 턱, 코뼈 등의 부상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오히려 안전을 위해 개발된 헬멧이 상대편 선수를 공격하는 무기로 변질된다. 이로 인해 풋볼선수의 목골절을 비롯하여 사지마비 환자가 헬멧의 착용 이전과 비교하여 4배나 급증했다.
자동차의 ABS시스템과 에어백의 설치도 비슷한 현상이다. 자동차에 에어백과 ABS가 장착된 후 과속으로 인한 사고가 오히려 증가했고, 여성의 가사노동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세탁기의 등장으로 위생기준이 높아져 일주일에 한번씩이면 충분했던 세탁을 매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여성의 가사노동을 오히려 증가했다.
2007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이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주택저당증권 MBS가 안전한 상품이라고 여겼고, 그것이 부실해지게 되면 정부와 중앙은행이 막아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전 세계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져왔다.
위험항상성이론
이러한 펠츠만 효과는 1982년 캐나다 퀸스대 제럴드 J. S. 와일드 교수의 위험항상성이론(risk homeostasis theory)으로 이어진다. 항상성이란 생명체가 자신의 최적화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특성으로, 생명체가 외부환경과 대응하여 자신의 신체 내부상태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의 심리도 이와 비슷하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위험의 기준이 있다.
안전장치의 개발 등으로 자신이 인식하는 위험의 수준이 낮아졌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편익을 위해 위험의 수준을 더 끌어올려 위험의 기준 수준을 유지하려고 한다. 반대로 환경이 악화되어 인식하는 위험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위험의 수준을 끌어내려 위험의 기준 수준을 유지하려고 한다. 즉, 인간의 신체가 생리적인 항성상을 유지하려고 하듯이 인간의 의식도 위험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비단 위험뿐만이 아니라 안전도 마찬가지라고 할수 있다. 안전한 행동으로 인해 기대되는 이익과 안전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비교하여 편익을 극대화 하기를 원한다. 대형 창고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경우 1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보험사에서 매년 1억씩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면 10년이면 투자비를 모두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보험계약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 이 경우 계약자는 당연히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고 할 것이다.
위험보상이론
사람은 일정한 행동을 취하면 그에 부합되는 대가를 받고 싶어 한다. 일반화를 신고 건설현장에 들어가면 못을 밟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게 행동하지만, 안전화를 신고 건설현장에 들어가면 조심성이 사라진다. 안전화에 투자한 비용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심리효과때문이다. 이처럼 어떠한 안전 장치를 설치했다면 그로 인한 편익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위험보상'이라 한다.
위험보상 이론은 언뜻 보면 위험항상성이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험항상성이론의 토대가 되는 것이 균형이라면, 위험보상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보상심리이다. 위험보상이론은 위험항상성이론에서 한 단계 진화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보상이론에 의하면 사람이 인지된 위험과 목표 위험 수준간에 균형을 맞추려 하는 이유는 항상성 때문이 아니라 보상심리 때문이다. 인간은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끼게 되면 더 위험을 즐기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느낄수록 더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되고, 반대로 위험하다고 느끼면 더 안전한 행동을 하려고 한다.
1990년 미국 몬태나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몬태나 주의 어느 지역은 인구가 별로 없고 한적한 곳이라 도로의 속도제한 표지가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도로에서 속도표지를 없애버리는 결정을 한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교통사고가 증가할까 걱정했지만, 속도표지를 없애자 사고율이 반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운전자들이 큰 사고가 날까봐 스스로 속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이다. 평생을 쪼들리게 살아온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어 큰 횡재를 하자, 그전에 없던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돈을 펑펑 쓰게 되었고, 그 결과 오히려 당첨 전보다 더 가난해진 경우가 있다. 또한 평소에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다가 생명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 보험사가 금전적 보상을 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행위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위험보상이론에 따르면 위험을 감소하기 위한 안전조치가 오히려 불안전한 행동을 유발한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여 임시조치로 문제를 처리한 경우, 위험요인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동종의 사고가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 고병원성 바이러스를 다루는 KF94마스크가 필요한 환경에서 KF80을 착용하고 안전조치를 다했다고 생각하여 발생하는 사고도 있다. 또 다른 예로는, 고층 높이의 비계에서 안전대를 착용하고 작업 중인 노동자가 안전대를 믿고 안전고리와 줄에 의지하여 위험한 작업을 하다가 추락할뻔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안전조치의 효과를 과신하여 작업장의 위험요인이 사라졌다고 잘못 판단한다면, 돌이킬수 없는 사고에 직면하게 된다. 안전은 다중의 보호장치를 필요로 한다. 어느 안전조치도 완벽한 것은 없다. 이중, 삼중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사고가 방지된다.
얼마전 로봇을 이용하여 포장작업을 하는 사업장에 간적이 있다. 산업용 로봇은 사고발생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방호펜스를 비롯하여, 레이저커튼, 출입구에 리미트 스위치 안전매트 등과 같은 다중의 방호장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사업장에는 방호펜스가 미설치되어 있었다. 왜 펜스가 없냐고 묻자, 레이저커튼이 사람의 침입을 감지하여 로봇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정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만약 레이저커튼에 이물질에 의해 간섭되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출입자의 안전은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복수의 방호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작업자들은 자신이 사용중인 안전장비 및 안전규정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방호장치와 여러가지 안전규정들이 작업자를 어느 정도까지는 보호해 줄수 있지만 100% 는 아니다. 질식위험이 있는 밀폐 공간 작업 시 산소농도를 측정하고 작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작업환경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업중에도 수시로 산소농도를 측정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또한 산소농도가 충분하다고 할지라도 유독성 가스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유독성 가스를 감지할수 있는 가스감지기가 있더라도 오작동의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작업을 할때 방심하거나 경각심을 늦추서는 아니된다.
방호장치과 안전보호구들은 제대로 관리되고, 정상적으로 사용할 때 만 효과가 있다. 산업현장에서 가장 사고가 많은 차량운반구가 지게차이다. 지게차에는 여러 종류의 안전을 위한 장치들이 부착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장지의 신뢰성을 과신하고, 신호음과 경고 장치를 장착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피할거라는 보상심리로 주의를 게을리 할 수있다. 그렇게 되면 사고가 발생한다. 바쁜 작업에 열중한 작업자들은 지게차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고, 지게차에 부착된 안전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수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사고가 발생한다.
안전을 위해 고안해낸 방법들이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손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한 안전장갑이 오히려 위험요인으로 작용할수도 있다. 선반, 밀링, 보링, 드릴링 등의 공작기계 작업시에는 보호 장갑이 오히려 기계속으로 손을 말려들게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사업자는 첨단안전장치를 설치했다고 안전을 과신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반대로 작업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안된 절차나 도구들이 오히려 없는 위험을 새로 만들어내지 않았는지, 이로 인해 작업자의 안전의식이 헤이해지지 않았는지 검토해야 한다.
안전은 규제와 제도 그리고 하드웨어만 가지고 구축되지 않는다. 그것을 사용하고 활용하는 작업자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팔요에 따라서는 안전장치나 표지가 없는 것이 더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도 있다.
언제나 안전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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