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과연, '레밍효과(Leming effect)' 때문에 생긴 사고인가
노르웨이 북부 초원지대에 사는 레밍이라는 나그네 쥐가 있다. 이들은 번식력이 매우 뛰어나 1년에 두번의 새끼를 낳는데 한번 낳을 때마다 5마리에서 6마리까지 낳는다. 이렇게 몇 년만 지나면 개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개체수가 많아지만 포식자의 위협, 서식지의 부족, 식량의 문제 등으로 인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한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집단을 위한 전략적인 행동이다. 건강한 쥐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종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낯설고 위험한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하는 이타적인 행동인 것이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어리석고 맹목적인 무지몽매한 집단심리에 의한 죽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만, 집단 속에 있으면 군중심리에 지배를 받아 비이성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인간의 행동을 '레밍효과(Leming effect)' 또는 '레밍신드롬(Leming syndro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태학자들은 레밍의 집단폐사를 두고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주기적 변동의 작용이라고도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레밍 쥐들은 웬만한 정도의 강들은 쉽게 헤엄쳐서 건너갈수 있을 정도로 수영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이동을 하다가 강을 만나면 주저함 없이 강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바다를 강으로 착각하여 뛰어들게 되면 떼거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레밍쥐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우두머리의 잘못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하지만 이 참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 후진국도 이런 후진국이 없다. 정부는 이태원 핼로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군중통제에 관한 법적 근거가 없다며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태원 참사에서 군중을 밀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남성을 조사하며 희생양 찾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누가 군중을 밀치기 시작했다거나 군중몰림현상을 지적하는 정부의 처사는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전형적인 기만행위이다. 정부는 참사대신에 사고, 희생자 대신에 사망자라는 용어를 쓰기로 결정했다. 참사와 사고, 희생자와 사망자라는 단어 선택의 있어서도 정부의 책임회피 성향을 명백히 볼수 있다.
현재 대다수의 국민들 뿐만이 아니라 외신들까지도 사전대비가 충실했다면 충분히 피할수 있는 사고였다고 하며 한국 정부 책임론을 지적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K-pop 스타 BTS가 공연할 때 5만명의 관중이 모였을 때에도 안전을 위해 경찰인력 1300명을 배치했다. 용산구는 핼러윈 행사를 관리할 계획을 세우기 위해 사전에 모임을 가졌지만 코로나방지,술집과 식당의 안전 점검,쓰레기 관리,마약 단속, 성범죄 단속에 치중했을뿐 정작 중요했던 대규모 군중밀집에 대한 안전대책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 결과 10만명을 훌쩍 넘어 모이는 이태원에 마약,성범죄 단속을 위한 경찰 137명만 투입했을 뿐이다. 오히려 범죄단속을 위한 사복경찰을 투입하여 범법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했기 때문에 질서유지를 위한 정복경찰을 일부러 투입하지 않았다는 지적까지 일고 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11월 1일 1면 머리기사에서 “한국 정부 사고대책본부가 전날 기자회견에서 ‘(경찰 등이 절도·마약 등) 불법행위 방지와 적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말해 군중의 질서유지에 부족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무지몽매한 레밍쥐처럼 집단심리에 의한 '군중몰림 현상'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 사고는 군중몰림이 아니라 '군중압착'때문이었다.
군중몰림과 군중압착은 개념부터가 다르다. 군중몰림은 이성없는 동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군중의 비이성적 행동을 표현하는 반면 군중압착은 군중의 밀집도를 관리하지 못한 당국의 실수를 의미한다. 사람은 1㎡의 면적에 4명 이상이 모이면 정상적인 걸음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당시 1㎡에 6명이 초과하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참사가 발생한 사고현장은 양방통행으로 양쪽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2010년 7월 26일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테크노 음악축제인 러브 퍼레이드 행사에서는 100만명이 참가했고, 19명이 압사했다. 당시 참사는 하나뿐인 주요통로가 입구와 출구를 동시에 하는 바람에 나가려는 사람과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2021년 4월에 발생한 이스라엘 종교축제에서도 44명이 압사했는데 그 장소가 이태원 골목과 비슷한 좁은 비탈길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미끄러운 도로에서 넘어졌지만 워낙에 좁은 장소에 군중들이 밀집되어 있던 관계로 사람들은 앞에서 누가 넘어졌는지 알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즉 뒤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군중압착으로 인한 압사사고는 고도의 수리능력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수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경찰이 군중을 내려다 볼수 있는 높은 곳에서 군중의 이동을 살피면서 통제만 제대로 했더라면 능히 피할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재난이 수시로 발생하는 일본의 경우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당국의 경찰서장이 실제로 가장 높은 곳에서 군중의 이동경로를 관찰해가며 지상에 있는 경찰들에게 통제명령을 내린다. 영국은 1989년 4월 15일에 발생한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97명이 압사한 사고에 대하여 23년이 지난 2009년에 정부 당국의 잘못을 인정했다. 한국 정부가 이 사고에 대하여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시인하는데는 몇년이 걸릴까 걱정이 된다.
국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304명의 꽃다운 학생들이 죽어갈때 구경꾼 노릇만 했어야 했던 정부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한국의 국민들이 피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월을 감내해내었던 이유도,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했던 이유도 국민들을 보호해줄 강력한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가장 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재난은 정부와 고위 엘리트들이 구축해온 시스템의 견고함을 테스트하는 계기가 된다. 그 결함이 적나나하게 드러날 때 그들이 행사해온 권력의 정당성은 도전을 받게 된다. 그때 그 존재감을 증명하지 못하게 되면 국민들은 있으나 마나한 정부와 위정자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다.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가 그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부의 책임회피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참사의 사고원인을 어떻게 규정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느냐이다. 사고의 원인이 군중압착이 아니라 군중몰림현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결론이 나오면 그 재발방지대책 또한 제대로 구축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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