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작동하지 않는 '안전 관리 시스템',,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참사들

- 국내 압사 사고중 역대 최대 희생자 발생,, - 행안부, 이미 1년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메뉴얼' 배포했지만 강제성 없는 형식에 불과,, - 안전보건전문가들,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책임과 명확한 거버넌스 수립 강조,, - 안실련, 사고가 아닌 정부의 관심 부족, 관리 조치 미비에 따른 ‘사건’으로 즉시 전환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촉구,,

2022-10-31     김희경 안전보건 전문기자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지난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가 사전에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현장에서 '안전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면서, 재발방지를 위해 현장 실행력을 갖춘 범부처 차원의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참사는 일반 거리를 걷던 시민 154명이 압사로 사망하고, 149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국내 압사 사고로는 역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로 기록됐다. 특히 10대와 20대가 대거 피해를 당하면서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태원에서 진행된 할러윈 행사는 주최측이 없는 행사인 만큼 책임소재를 어디로 가릴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며, 노컷뉴스의 보도를 통해 경찰 내부에서도 주최측이 없는 다중 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 매뉴얼이 이제껏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진바 있다.

 

경찰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행사는 주최측이 있어 사전에 관련 자치단체와 경찰, 소방의료 등 유관기관들이 역할을 분담해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이번 사고는 주최측이 없어 대응이 미흡한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압사 사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압사 사고

국내 압사로 인한 시민재해는 지난 1959년 7월 18일에도 발생했다. 당시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시민들을 위로하는 야간 행사중 별안간 쏟아진 폭우를 피해 운동장을 빠져나가려던 시민들이 출입구로 몰리면서 67명이 숨지고 150명이 다쳤다.

 

1960년 서울역에서도 설 명절을 앞둔 1월 26일 오후 11시 45분 귀성길에 오른 시민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좁은 계단에 가득 찼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가 넘어지면서 31명이 숨지고 41명이 부상을 당했다.

 

ⓒ서울역 압사사고 현장 이미지/출처-나무위키

1992년 2월에는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미국 팝 그룹'뉴키즈 온더 블록' 내한공연을 관람하던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몰려, 여고생 1명이 인파에 깔려 사망하고 60명이 다치기도 했다. 

 

2005년 10월 3일에는 경북 상주시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가요콘서트 녹화 무대를 보기 위해 5,000명이 무대쪽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11명이 숨지고, 109명이 다쳤다. 당시엔 맨 앞줄에 서 있었던 노인과 어린이의 피해가 컸다.

 

매뉴얼은 정립돼 있지만, 실행력과 강제성은 없는 '안전관리 시스템'

행안부는 지난 21년 3월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메뉴얼'을 마련하고 행사전반에 걸쳐 안전에 필요한 부분을 상세히 정립했다. 개발 배경으로 2005년에 상주에서 발생했던 가요콘서트의 압사 사고가 계기가 됐지만, 이 매뉴얼은 법적인 강제성도 없고 실행력도 갖추지 못한 일종의 참고자료로서만 적용됐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 행사의 계획부터 시작전, 진행중, 종료시, 사고상황관리등 관련 내용들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출처- 행정안전부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 안내 내용의 일부 발췌>

1.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66조의11에 의거 작성되었습니다

2. 이 매뉴얼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민간 등이 개최하는 지역축제에 적용됩니다. ...... 생략.....

4. 이 매뉴얼은 다양한 지역 축제의 안전관리 및 사고예방을 위한 참고자료서 관련 법령보다 우선할 수 없으며, 축제장 내 각종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수 없습니다

 일부 안전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만약 행안부가 만든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메뉴얼'이 제대로 실행력과 강제성을 갖춘 매뉴얼로 작동되도록 만들고, 경찰과 소방청, 의료기관 등 유관기관의 협력 부분도 체계적으로 정립해 실행되도록 했다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충분히 막을수 있지 않았겠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00만명 몰려도 사고없는 일본의 핼러윈

일본 도쿄 시부야에도 핼러윈 기간에 하루 최대 100만 명의 인파가 몰리지만, 일본은 매년 100여 명의 경찰관과 1억엔 안팎의 예산으로 큰 사고 없이 행사를 치르고 있다.

 

ⓒ감시탑에서는  ‘DJ 폴리스’라 불리는 경찰관들이 “한 자리에 멈추지 말고 계속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통행을 유도한다.

경시청(일본 도쿄도를 관할하는 경찰본부)과 시부야구 모두 매년 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할러윈 기간동안에는 길거리 음주 금지 조례를 시행해서 할러윈 당일인 10월 30~31일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11월 1일은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노상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보행자 전용도로 지정 및 일방통행 전환하고, 보행자 전용도로로 지정되는 센터가 일대에는 10개 이상의 임시 감시탑을 설치해 인파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하도록 유도한다. 나머지 경찰관들은 바리케이트를 쳐서 통행을 유도하거나 인파가 뒤섞여 압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행을 유도한다.

 

재발방지 위한 근본적인 실효성 갖춘 대처 방안 제시

전문가들은 재발방지를 위해 이번 참사가 일회적이고 국지적인 문제로 발생한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원숙하고 근본적인 실효성을 갖춘 대처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번 참사 현장처럼 좁은 비탈골목 압사사고에 대비한 보행인 흐름 통제 등 예방 작전을 수행하지 않은 것은 오래된 안일함에서 발생한 문제임을 지적하며, 사회 안전을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지지된 전략이 평소에 수립되고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경찰이나 안전 인력의 투입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사전 예측과 계획이 없이 투입 숫자만 채우는 것은 제대로된 컨트롤타워 없이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이번 참사를 통해 잊어선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인파가 일시에 몰릴 수 있는 위험 장소(비탈 골목, 지하철 계단, 과밀 지하철, 경기장 및 공연장과 그 주변 등)에 대한 시설과 통제 양면의 체계를 정비하고 준수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또한, 특정 경우에 나타나는 군중의 충동성, 해당 장소의 지역적 약점 등이 고려되었는지, 만일의 사고시 필요한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평소의 체계가 있었는지 묻고, 그 시스템적 약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더불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책임과 명확한 거버넌스 수립을 강조하면서, 이번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에 대해 진정한 심층 요인들의 상호관계를 밝히고, 시스템 자체를 개선할 방향을 찾아낼 수 있는 비정치적이고 전문적인 사고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31일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에서도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성명서를 내고  “사고가 아닌 정부의 관심 부족, 관리 조치 미비에 따른 ‘사건’으로 즉시 전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며 정부의 신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안실련은 “헌법 제34조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국가의 책무를 방기한 자에 대해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혀 응분의 조치를 취하는 한편, 용산구청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치를 다하였는지 특별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후 약방문식의 임시 방편이 아니라 축제, 공연행사장 안전관리 실태를 철저히 진단하고 관련 법ㆍ제도의 정비, 대응매뉴얼 보완, 전문인력의 확충, 실전 같은 교육과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번 압사사고와 관련해 군중이 모인 장소에서 압사사고를 피하기 위한 개인 대처법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가 되고 있다. 해당 대처법에는 만약 군중속에끼여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먼저 두손을 가슴앞에 두고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후, 대각선으로 파고들어 가장자리쪽으로 이동해 붙잡을 수 있는 것을 잡고 버티라고 안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