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13부-인생의 절망에 빠졌을 때 극복하는 방법

2022-09-12     김훈 자문 위원

 

할 수 없는 일천개의 일보다

 할 수 있는 구천개의 일에 집중할 때

절망은 없다

무기력이란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연속되는 실패의 경험이 쌓이면 무기력에 빠진다.

셀리그만은 우리에 갇힌 개에게 전기 고문을 가하는 실험을 하였다. 개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의 개는 코로 지렛대를 누르면 전기 고문을 멈출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다른 집단의 개는 몸을 꽁꽁 묶어 꼼짝 못하게 했다. 한동안 전기 고문을 가하니, 첫 번째 집단은 고문이 시작되면 바로 코로 지렛대를 눌러 고문을 멈추게 했다. 두 번째 집단은 꽁꽁 묶여 있었으므로 전기고문을 그대로 당해야만 했다.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두 집단의 개 모두 우리 문을 열어놓고 전기 고문을 가했다. 고문이 시작되자 첫 번째 집단의 개는 바로 문 밖으로 달아났지만 두 번째 집단의 개는 도망갈 수 있는 데도 그 자라에서 꼼짝 않고 전기 고문을 당했다. 이 현상을 셀리그만은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불렀다. 무기력도 학습된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이 상황이 개가 아니라고 인간이라면, 실험실의 개처럼 인간에게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랜기간 동안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우리도 실험 속의 개와 똑같은 병에 걸린다. 절망적 경험 때문에 도망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시도도 포기하고 고통을 그대로 받아드린다. 몸은 이미 자유로운 환경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절망적인 환경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모든 사람에게 절망적인 환경이란 없다. 그저 절망적인 마음 상태만 있을 뿐이다.

미군 해병대 퇴역 장교 콜먼 미첼은 비행사고로 피부의 65%가 손상되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16번이나 대수술을 받아야 했고, 수술 이후에는 포크를 들 수도 없었고, 전화를 받을 수도, 혼자서 화장실에 갈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재활치료를 시작했고, 6개월 후에는 다시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 후 그의 비행기가 활주로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33개의 척추뼈 중에서 12개가 모두 부서졌고, 하반신 마비가 왔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시련도 견뎌내었다. 그는 결국 절망을 딛고 버텨내었고, 수년동안 노력한 끝에 콜로라도 어느 마을의 대표가 되었고, 국회의원에도 출마했다. 그는 연설중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두번이나 큰 좌절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내 삶을 살펴보니 그리 큰 좌절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번의 좌절을 노력을 포기하는 구실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되기 전에는 만가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9,000가지의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1000가지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이제는 할수 있는 9000가지 일에만 집중하고자 합니다."

내가 지금 절망적인 환경에 빠져있다면 그것은 내가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빠져있는 것이다. 절망적인 환경은 없다. 절망적인 마음만 있을 뿐이다. 미첼이 두 번의 좌절을 인생을 포기하는 구실로 삼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인생에서의 좌절은 지금껏 앞만 보고 전진하던 걸음을 멈추고,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신의 섭리이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세상을 다시 보면 더 넓게 보이고, 더 넓게 생각할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때는 '이건 별것 아니네' 하고 쉽게 무시해 버릴수도 있을 만큼 용기도 생긴다. 인생에서 실패가 없을 수 없다. 성공하려면 실패에 직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실패의 연속으로 인해 학습된 무기력이 생겼다면 우리의 뇌를 그러한 자기 세뇌에서 끄집어 내어야만 한다. 우리의 뇌는 매우 단순해서 늘 하던 대로 관성이 이끄는 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도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에 걱정할 일이 전혀없다.

연속되는 실패를 통해 낙심하고, 큰 고통의 무게에 짖눌릴 때 우리의 마음은 병들게 된다. 미래가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걱정을 하는 것은 우리의 뇌가 정상이라는 증거이다. 걱정을 하는 이유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때 그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걱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부분이 미래를 위해서가 아닌, 걱정을 위한 걱정이다. 생산적인 걱정이 아니라 반복된 실패를 통한 학습된 무기력에 의해서 했던 생각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두려워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대비는 다르다. 젤린스키의 말대로 일어나지 않은 일로 현재를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전혀없다. 그래서 걱정이라는 것은 100% 쓸데없는 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을 못버리는 이유는 연속된 실패로 인해 내 고집과 집착이 고질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의 주제는 결말이 말해 주듯이 우리의 인생도 결말이 말해준다. 나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는 내 생각에 달려 있다. 그 결말이 어떠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살아온 인생길도 달라진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젊었을 때 어떻게 살았느냐보다는 마지막에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래서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자. 인생은 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나를 휘감아 내동댕이 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근심과 걱정도 돌아서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직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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